▲ 12월 26일 민주통합당대표 및 최고위원 선출을 위한 예비경선이 열렸다. 이날 당선된 9명이 축하를 받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민주통합당 지도부 선출을 위한 예비경선이 치러진 지난 12월 26일 오후 서울 양재동 교육문화회관. 선거관리위원장을 맡아 이날 예선 통과자를 발표한 홍재형 의원의 입에서 박용진 후보의 이름이 맨 먼저 호명되자 장내가 술렁였다. 박 후보와 지지자들의 환호 속에 여기저기서 놀라움의 감탄사와 당혹감이 배인 탄식이 흘러나왔다. 총 15명의 후보자 중 유일한 1970년대 생(1971년), 유일한 90년대 학번(90학번)으로 조직력 면에서도 진보신당 출신으로 최약체로 꼽혔던 박 후보였다. 그가 본선 못지않은 난관으로 여겨졌던 예선을 통과했다는 것은 이번 민주통합당 지도부 경선이 기존 정당의 문법이나 많은 이들의 전망과 달리 예측불허의 승부가 될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었다.
실제로 박용진 후보와 함께 이날 예선을 통과한 사람은 이강래 이인영 문성근 박지원 박영선 한명숙 이학영 김부겸 후보였다. 열린우리당 당의장 출신의 신기남 전 의원, 정동영 전 민주당 최고위원의 전폭적 지지를 받았던 이종걸 의원이 예상과 달리 고배를 마셨다.
‘이변’이라는 평가를 반영하듯 뒷말도 무성하다. 특히 박용진 후보의 예선통과를 놓고 각종 설이 난무하고 있다. 당초 시민통합당 출신으로 지도부 경선에 나선 4명의 후보 중 문성근, 이학영, 김기식 후보의 예선통과를 점치는 사람들이 많았다. 문 후보는 야권통합의 시발점이 된 ‘백만 민란 운동’의 주역으로 18만 명이 넘는 ‘국민의 명령’ 회원을 뒤에 업고 있다. 한국YMCA전국연맹 사무총장 출신의 이 후보도 12만 명에 달하는 YMCA 조직과 농민단체, 노동단체의 지원을 받는 것으로 전해졌다.
▲ 진보신당 출신으로, 최약체로 꼽혔던 90학번 박용진 후보가 예비경선에서 당선되는 이변이 연출됐다. |
이 때문에 박 후보의 예선 통과를 두고 ‘김기식 배제설’과 ‘전략적 선택설’이 흘러나온다. ‘김기식 배제설’은 야권통합 과정에서 김기식 후보 등 486세대 시민운동가들이 주축이 된 ‘내가 꿈꾸는 나라’ 인사들과 이학영 후보 등 선배 세대 시민운동가들 사이에 주도권 다툼이 벌어졌고, 이 과정에서 문성근 후보를 중심으로 한 친노(친노무현)그룹이 김 후보에 대해 배제투표를 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문 후보 측이나 김 후보 측 모두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시민통합당 출신의 한 인사는 “시민운동 출신으로 먼저 야권통합에 나섰던 주니어 그룹(김기식 남윤인순 민만기 등)과 뒤늦게 결합한 시니어 그룹(이학영 조성우 등) 사이에 주도권 경쟁이 벌어진 것은 사실”이라며 “주니어 그룹이 친노그룹과도 경쟁관계에 놓이면서 친노그룹이 시민운동 출신의 두 후보 중 이학영 후보를 밀었던 것”이라고 전했다.
이와 별도로 예선 투표권을 가졌던 중앙위원 762명 중 시민통합당 몫 300명의 배정 과정에서 이변이 예고됐다는 얘기도 나온다. 당초 120명을 한국노동조합총연맹 몫으로 배정해 뒀는데 한국노총이 중앙위원 명단을 제출하지 않는 바람에 공석이 생겼고, 박용진 후보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진보신당 출신들을 밀어 넣었다는 얘기다.
또 다른 이변인 이종걸 의원의 탈락을 두고는 ‘정동영 배신설’이 나온다. 대선주자인 정동영 전 최고위원이 겉으로는 이 의원을 밀어주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다른 후보를 지원함으로써 ‘보험’을 들었다는 얘기다. 26일 예선 탈락 후 이 의원이 정 전 최고위원에게 격하게 배신감을 토로했다는 소문까지 돌고 있다.
하지만 정 전 최고위원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한 인사는 “정 전 최고위원도 예선 결과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면서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은 이종걸이 아니라 정동영”이라고 반박했다.
이제 관심은 1월 15일 발표될 본선 결과로 쏠린다. 이변이 속출했던 예선 결과가 본선에도 그대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3강(한명숙, 박지원, 문성근) - 4중(이인영, 이학영, 박영선, 김부겸) - 2약(이강래, 박용진)’의 판세라는 분석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투표함 뚜껑을 열기 전에는 아무도 모른다”는 전망도 적지 않다. 누가 최다득표로 당대표에 오를지, 누가 6명(대표 포함)의 최고위원에 들어갈지 예측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후보들 간 경쟁의 저변에 흐르고 있는 몇 가지 기류가 예측을 더 어렵게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구민주당 내의 ‘친노 견제론’이다.
친노그룹으로 분류되는 한명숙 후보와 문성근 후보가 당대표 자리를 다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구민주당 출신들의 위기의식이 커지고 있다. 통합 과정에서 끝까지 ‘몽니’를 부려 “배제투표를 당할 것”이라는 얘기까지 들었던 박지원 후보가 다시 상승세를 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특히 민주당의 뿌리인 호남이 박 후보 중심으로 뭉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 같은 기류를 반영하듯 박 후보는 전국 순회 합동연설회 등에서 “호남만으로 정권교체를 할 수 없지만 호남을 빼고는 정권교체를 할 수 없다”, “김대중세력과 노무현세력이 합쳐야 정권교체도 할 수 있다” “특정 세력이 지도부를 다 차지해선 안된다”고 노골적으로 얘기하고 있다.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가 당초 예상과 달리 한명숙 후보를 지원하지 않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야권통합 과정에서 박지원 후보와 완전히 등을 돌린 손 전 대표는 자연스럽게 한 후보를 지원할 것으로 점쳐졌었다. 하지만 막상 경선이 시작되자 손 전 대표가 김부겸 이인영 등 세대교체론을 내건 후보들을 지원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실제로 손 전 대표의 한 측근은 “정치생명을 위협받을 정도로 모든 걸 다 바쳐서 통합을 이뤘는데 그 과실을 친노그룹이 다 따먹는 것 아니냐는 얘기들이 나오는 게 사실”이라고 전했다.
이런 점에서 77만 명의 조합원을 보유한 한국노총이 지난 4·27 분당을 보궐선거 당시 손 전 대표의 당선을 적극 돕는 등 손 전 대표와 돈독한 관계라는 사실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이번 지도부 경선에 자체 후보를 내지 않은 한국노총의 선택에 손 전 대표의 입김이 작용할 경우 선거판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본선 결과를 좌우할 또 다른 기류는 경륜론과 세대교체론의 충돌 양상이다. 내년 총선, 대선 승리를 위해선 경험 많고 검증된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경륜론과 간판 교체를 통해 변화와 혁신을 보여줘야 한다는 세대교체론의 충돌은 이미 후보들 간의 공방으로 표출되고 있다. 한명숙 박지원 이강래 후보가 경륜론을 펴는 반면 이인영 김부겸 박영선 후보가 세대교체론을 역설하고 있다. 이학영 박용진 후보는 한 발 더 나아가 이들을 싸잡아 비판하면서 세력교체론을 펴고 있다.
한 당내 인사는 “겉으로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으로 비쳐지고 있지만 기성 정치에 실망한 2040세대가 ‘간판 교체’에 공감할 경우 어느 누구도 당선을 장담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공헌 언론인
동원이든 자발이든 뚜껑 열어봐야
민주통합당 지도부 경선을 위한 선거인단 모집 결과 휴대전화를 이용한 ‘모바일 투표’ 희망자들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모바일 투표’가 경선 판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당내에선 ‘모바일 투표’ 희망자들의 성격을 놓고 양론이 맞서고 있다. 어차피 각 후보 진영이 선거인단 모집 경쟁을 벌이고 있는 만큼 이들 역시 ‘넓은 의미의 조직표’라는 시각이 있다. 반면 하루 수만 명씩 늘고 있는 선거인단 규모로 볼 때 이들 중 상당수는 새로운 정치를 바라는 ‘자발적 시민’이라는 시각도 있다.
‘모바일 투표’ 희망자들이 조직표라면 대선주자들과 현역 의원, 지역위원장 등의 지지를 받거나 한국노동조합총연맹, 한국YMCA전국연맹 등 ‘뭉치 표’의 지원을 업은 후보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한 후보 측 관계자는 “투표장에 직접 나오게 하는 것보다 휴대전화로 투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조직표를 모으기 더 쉬운 구조가 됐다”면서 “결국 이번 경선도 조직 싸움 양상으로 치러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투표장에 나오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질적으로 다르다는 주장도 나온다. 또 다른 후보 측 관계자는 “선거인단 모집이 후보 캠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 게 사실이지만 이들이 모아 오는 선거인단은 이전의 선거인단과는 질적으로 다르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투표장에 나오지 않는 사람은 투표장 동원이 가능한 사람들에 비해 후보에 대한 충성도가 낮을 수밖에 없다”며 “선거운동 과정에서 각 후보들이 대중들에게 얼마나 깊은 인상을 심어주느냐에 따라 예상치 못한 돌풍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