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건희 회장 손자에게 공짜밥을 주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민주당 무상복지 시리즈가 선거용 캐치프레이즈로는 의미 있을지 모르지만 ‘신뢰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는 전혀 도움이 안 된다. 운하나 열차가 생긴다고 국민이 행복해지는 게 아니다. 정책이 지나치게 한건주의 식으로 가는 것은 위험하다. 선거는 질 수도 있다. 어떻게 지느냐가 중요하다. 헌법이 보장한 의사표현 자유를 물리적으로 탄압할 때는 정당방위 차원에서 폭력도 가능하다. 군사 독재 시절에는 진실을 알리는 것이 범죄였고 용기를 전염시키는 것이 감옥에 가는 이유였다. 지금도 일부 그런 것 같다. 선전은 진실을 알리는 것이고 선동은 용기를 전염시키는 것이다. 방안 쓰레기부터 치워야 마당의 쓰레기도 치울 수 있다. 정치인과 지식인, 언론인들이 나를 대통령의 눈과 귀를 흐리는 간신배처럼 묘사했다. 내가 바라는 국가는 사람들 사이에 정의를 수립하는 국가, 국민을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대하는 국가다. ‘선행(善行) 국가론’이다. 국민들이 정권을 교체하고 대한민국을 자유로운 나라, 평화로운 나라, 정의로운 나라로 돌려놓으라는 소망을 제게 투사하는 것 같다.”
대중이 파악하는 이 정치인의 정체는 비교적 분명했다. 아니, 이 정치인은 이런 사람이라고 분명하게 느꼈다. 이 사람은 예민한 감수성과 혈기 넘치는 눈으로 세상의 부조리와 악을 판단하겠다는 기세를 보여준다. 하지만 ‘일의 결과가 수단을 정당화시킨다’는 믿음도 있다. ‘결과가 좋으면 그 과정도 옳다’는 개발 중심의 사고, 과거 독재시대, 현재 MB정부의 입장과 그리 다르지 않은 멘털리티다.
분명 우리 사회에서 진보나 야당 쪽의 사람인데, 주로 사용하는 방법은 편가르기를 통해 자신의 세를 확장 혹은 유지하려 한다. 대중이 가진 불만을 기회로 삼아, 현재의 상태를 뒤집고 자신의 세를 만들려는 또 다른 꼼수가 느껴진다. 과거 독재에 항거하여 싸우던 사람이 ‘미운 놈 싸우면서 닮는다’의 경우가 된 것 같다.
이 정치인은 바로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다. 정치인의 몇 마디 말로, 이런 추론까지 할 수 있는 대중의 눈은 매서웠다. 심지어 다음과 같은 쉽게 파악하기 힘든 그의 성향까지 추론해내었다.
“이 사람은 화려한 수사로 자신의 정당성, 고뇌 등을 드러낸다. 자기가 옳다는 것이 중요한 사람이다. 흑백논리, 대립구도, 편견, 소통불가, 승패, 중도 타협없음 등의 단어를 떠올리게 한다. 성찰, 포용, 상대에 대한 인정, 숙고 등이 느껴지지 않는다. 세상을 탓하는 것으로 마치 문제를 지적하고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심리다. 하지만 문제의 핵심을 정확히 짚어 해결할 것 같지는 않고 마치 ‘골목대장’같이 리더로 나서는 모습이다. 대중은 이런 그에게서 어떤 숨은 의도까지 느낀다. 이런 사람의 존재는 권력의 대척점에서 권력에 반대 입장에 있을 때 부각된다. 존경까지 받을 수 있다. 이 사람은 자신이 믿는 것을 행위로 실천하는 인물이지만, 냉정하게 현실을 쫓기보다 이상을 추종한다. 지성인의 감성과 더불어 파격을 통한 변화를 추구한다. 그렇기에 정치적 의견이 대립될 때는 잘 타협이 안 된다.”
정치인 유시민에 대한 대중의 일반적 인식이다. 이 정도까지 본다면 아마 그가 숨길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을 것 같다. 겉으로 보여주는 말이 그 사람의 속마음을 보여준 것이다. 우리 사회의 현실 문제를 지적하고 변화를 언급하는 정치인의 말 속에서 대중은 정치인 개인의 마음까지 읽어내었다. 정치 현안에 대해 대의적인 말만 하고 자신을 감추는 정치인의 마음을 파악한 것이다. 아니 ‘타협, 소통, 설득’보다 일방적 소통, 아니 통고에 익숙한 그 사람의 성향을 읽은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후 후계자가 될 것 같았던 유시민 전 장관이 어느 순간에 과거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이유다.
기존의 정치질서와 행태에 대한 대중의 무관심과 불만족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새로운 정치인 참신한 정치인에 대한 기대도 높아진다. 이런 상황에서 유시민 씨는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했다. 스스로 자신의 존재 이유를 설정하지 못했고, 본인이 지향하는 가치를 분명히 드러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과거에 성공했던 ‘이념’의 틀 속에서, 또는 시대의 악당과 같은 누군가를 통해 자신이 부각되기를 기대했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경기도지사 자리를 놓고, 김문수 지사와 격돌했을 때 그는 김 지사가 있었기에 부각될 수 있었다. 하지만 정치권 모두가 대중으로부터 거부의 대상이 될 때, 그 자신도 특별히 다른 인물이 되기 힘들게 된다. ‘이 편’, ‘저 편’들이 모두 버림 받은 상황이다. 이런 경우, 아무리 자신은 ‘다른 편’이라 주장해도 소용이 없다.
정치인 유시민이 답보 상태, 아니 매력을 상실한 ‘송년 트리’처럼 보이게 된 것은 그의 자질이나 성향의 문제만은 아니다. ‘이념’의 틀 속에서 거대담론이나 읊조리는 정치인은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다. 단순히 ‘문제’를 제기하고 현안을 ‘평가’하는 리더에 대중은 열광하지 않는다. 대중은 리더 그 사람이 어떻게 살고, 무엇을 위해 사는지를 알고 싶어 한다.
이제 유시민 자신을 위해, 자신이 지향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때가 됐다.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대중이 언제 자신에게 관심을 돌렸는지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더 이상 가르치고, 훈계하고, 선동하는 리더는 이 사회에 설 자리가 없다. 쉽게 공감할 수 있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내는 리더에게 대중은 끌린다. 무엇이 바람직한지 알 수 없지만, 우리 사회에서 일어난 변화다.
연세대 심리학 교수 황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