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진자 수 하향해도 사망·위중증 시차 두고 감소…‘감춰진 확진자’ 불안 속 개학과 추석 감염 확산 우려
사실상 대한민국이 1위인 셈인데, 오미크론 대유행에 이어 BA.5 유행에서도 또 다시 세계에서 가장 큰 유행 규모를 기록한 국가가 됐다. 2021년 가을까지만 해도 전세계를 선도하는 방역 선진국이던 대한민국이 이제 방역 후진국이 되고 말았다.
#또 다시 세계 최대 유행규모 기록 중
오미크론 대유행 당시의 기록적인 유행 규모(3월 15일 6662.30명)에 도달했을 당시에는 그나마 근거가 있었다. 오미크론 대유행 이전까지 매우 낮은 확진자 수를 유지하고 있던 ‘방역 선진국’ 대한민국은 오히려 감염을 통해 면역을 형성한 국민의 수가 매우 적다는 약점을 갖고 있었다. 백신 접종률은 높았지만 백신을 통한 면역 형성 효과는 감염을 통한 면역 형성 효과보다 낮은 수준이었다.
기존 변이에 비해 전염성이 강력한 오미크론 변이가 대유행하면서, 누적 확진자 비율이 매우 낮았던 한국은 확진자가 급증할 수밖에 없었다. 대신 높은 백신 접종률로 위중증률과 사망률은 낮게 유지됐다. 백신의 감염 방지 효과는 다소 미흡했지만 중증화 방지 효과는 탁월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기록적인 오미크론 대유행을 겪으며 누적 확진자 비율이 높아졌고 BA.5 유행에서 또 다시 세계 최대 유행 규모를 기록했다. 오미크론 대유행이 비교적 가볍게 지나간 일본도 이번 BA.5 대유행에선 한국과 동반 상승했는데 일본은 8월 11일 이후 상승세가 어느 정도 꺾이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8월 22일 기준 ‘100만 명당 일일 신규 확진자 수’가 1000명을 넘긴 국가는 6개국뿐인데 한국과 일본, 그리스를 제외하면 마셜 제도, 통가, 앵귈라 등 작은 섬나라들이다.
아무래도 BA.5 유행에서 한국과 일본이 가장 큰 유행 규모를 기록하는 원인은 강력한 방역 규제를 한 번에 풀어버렸기 때문으로 보인다. 한국은 이미 사회적 거리두기를 중단했으며 실외 마스크 규제 등 기존 방역 규제의 상당 부분을 해제했다.
오미크론 대유행 당시만 해도 강력한 방역 규제를 유지했던 일본도 최근 각종 방역 규제를 해제하고 있다. 현재 일본은 100만 명당 일일 신규 확진자 수를 기준으로 본 유행 규모는 한국보다 낮지만 인구가 더 많아 일일 신규 확진자 수는 전세계에서 가장 많다. 이렇게 상황이 심각하지만 일본은 확진자 전수조사 중단까지 검토할 만큼 방역 규제 해제에 적극적이다. ‘2류’ 감염병인 코로나19를 계절성 독감과 같은 ‘5류’ 감염병으로 낮추고 백신도 유료 접종을 검토하고 있다. 해외에서 일본으로 코로나19가 전파되는 것을 원천 봉쇄한다는 미즈기와 방역 정책도 폐지하고 입국 전 코로나19 검사를 중단하는 방안까지 검토 중이다.
#감춰진 확진자는 곧 숨겨진 감염원
더욱 무서운 부분은 통계로 드러나지 않는 ‘감춰진 확진자’ 규모다. 최근 들어 코로나 자가진단 키트로 양성 판정이 나왔지만 그 사실을 보건소 등에 통보하지 않는 시민들이 늘고 있다. 별다른 증상이 없거나 경미한 증상인 경우 보건소 등에 알리지 않고, 일주일 정도 스스로 조심하고 지내는 이들이 많아지는 것. 당연히 이런 확진자들은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
게다가 미증상 감염으로 확진된 사실을 모르고 지나가는 확진자들도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과거 확진됐던 이들의 재감염 사례도 늘어나는 추세인데 재감염 확진자 가운데에는 증상이 없거나 가벼운 감기로 오인할 만큼 증상이 미미한 경우도 많다고 한다. 물론 재감염으로 훨씬 더 심각한 증상이 발현되기도 하지만 항원을 기억하는 면역계 세포인 ‘T세포’로 인해 재감염시 증상이 없거나 가벼운 증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재감염 됐지만 증상이 가볍다 보니 감기라고 여겨 검사조차 받지 않고 넘어가는 경우도 늘 수밖에 없다.
이런 변화는 방역당국이 추적 관찰을 중단한 것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과거에는 방역당국이 확진자 동선 파악을 한 뒤 밀접접촉자에게 PCR(유전자증폭) 검사를 받도록 하는 등의 추적 관찰이 이뤄져 감춰진 확진자들을 찾아낼 수 있었다. 아무런 증상이 없음에도 보건소에서 연락을 받고 강제적으로 PCR 검사를 했다가 확진 사실을 알게 된 이들도 많았다. 그렇지만 오미크론 대유행 당시 방역당국의 추적 관찰이 사실상 불가능해지면서 결국 중단됐다.
통계에서 빠진, 감춰진 확진자 급증의 문제점은 단순한 통계 오류에 그치지 않는다. 정작 확진자 본인은 미증상 내지는 가벼운 증상으로 코로나를 무난하게 지나갈 수도 있지만 전염력은 이와 무관하게 유지되기 때문이다. 결국 ‘감춰진 확진자’는 곧 ‘숨겨진 감염원’이다.
#소아·청소년이 전체 확진자의 24.14%
BA.5 유행의 기세라 꺾이지 않은 상황에서 개학이 이뤄지면서 자칫 학교에서 단체 감염이 벌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 형성됐다. 그나마 소아·청소년은 코로나에 감염돼도 증상이 가벼운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망자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
중앙방역대책본부가 발표한 ‘만 18세 이하 소아·청소년 코로나19 사망자 추이 분석’에 따르면, 소아·청소년의 코로나 사망은 2021년 11월 첫 사례 이후 누적 44명으로 집계됐다. 9세 이하가 65.9%(29명)로 10~18세(34.1%·15명)보다 많았으며 성별 비율은 남(54.5%), 여(45.5%)가 비슷하다. 사망자 44명 가운데 52.3%(23명)는 기저질환 보유자였는데 뇌전증 등 신경계 질환(22.7%)이 가장 많았고, 내분비계 질환(11.4%), 선천성 기형(11.4%) 등도 있었다.
문제는 소아·청소년은 백신 접종률이 낮다는 데 있다. 8월 18일 0시 기준 만 12~17세 소아·청소년의 3차 접종률은 10.8%, 만 5~11세는 1차 2.1%, 2차 1.5%로 매우 낮다. 게다가 만 5세 미만의 경우 국내에는 접종 가능한 백신조차 없다. 미국 등 일부 국가에서만 6개월~만 5세에게 접종이 가능한 백신이 허가됐을 뿐이다.
전체 국민의 백신 접종률이 1차 접종 87.8%, 2차 접종 87.0%, 3차 접종 65.3%, 4차 접종 13.6%임을 감안하면 전체 국민의 백신 접종률은 전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소아·청소년 백신 접종률은 미국 등 주요 선진국에 비해 매우 낮다. 그렇지만 8월 24일 기준 10~19세 확진자는 전체의 12.82%이며 0~9세 확진자는 11.32%로 소아·청소년 확진자는 전체 확진자의 24.14%나 된다.
BA.5 유행이 한창인 상황에서 개학하면서 자칫 초·중·고교와 유치원, 그리고 각종 사교육 기관을 중심으로 감염이 확산될 위험이 커지면서 학부모들의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 게다가 개학하고 3주가량이 지나면 전국적으로 이동량이 급증하는 추석연휴다. 감춰진 확진자와 소아·청소년 확진자들을 통해 고연령층까지 감염 대상이 확대될 수도 있는 위기 상황인 셈이다.
#사망자와 위중증 환자는?
8월 24일 기준 사망자 수는 80세 이상이 1만 5432명으로 전체 사망자의 58.85%로 가장 많다. 80세 이상 확진자 수는 66만 5751명으로 전체의 2.95%에 불과하지만 전체 사망자의 절반 이상이 이 연령대에서 나오고 있다. 치명률이 무려 2.23%나 된다. 40대 치명률이 0.01%에 불과하고 30대 이하는 0.01%도 안 되는 낮은 수준임을 감안하면 매우 높은 수치다.
70~79세는 6026명(22.98%), 60~69세는 3084명(11.76%)로 그 뒤를 있고 있다. 60세 이상 고연령층의 확진자 비중은 18.21%로 낮지만 사망자 비중은 무려 93.59%나 된다. 70세 이상으로 보면 확진자 비중이 7.93%에 불과한데 사망자 비중은 81.83%나 된다. 방역당국이 코로나19 관련 방역 대책을 고연령층에 집중하고 있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BA.5 유행을 거치며 사망자와 위중증 환자 수가 계속 증가하고 있다. 8월 24일 위중증 환자 수는 573명으로 613명을 기록한 4월 26일 이후 120일 만에 가장 많았다. 위중증 확진자 역시 60세 이상 고연령층이 493명으로 전체의 86%나 된다. 8월 24일 기준 사망자 수도 63명으로 높게 유지되고 있다. 7월 25일 17명에 비해 3.7배 증가한 수치다. 그나마 8월 19일 84명을 기록하며 4월 29일 136명 이후 113일 만에 가장 많은 사망자가 발생한 뒤 조금 낮아진 수치다.
임숙영 중앙방역대책본부 상황총괄단장은 8월 23일 정례브리핑에서 “최근 유행 진행 속도가 둔화하면서 이번 주나 다음 주에 감소세로 전환할 가능성이 있다”며 “사망과 위중증은 확진자 증가와는 시차를 갖고 나타나 2~3주 정도 이후까지도 더 증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2~3주 정도 이후가 바로 추석연휴라는 점이다. 유행 흐름만 놓고 보면 정점에 도달해 하향 전환이 이뤄지기 직전에 개학을 했고, 신규 확진자 증가세가 하향 전환하고 2~3주가 지나 사망자와 위중증 환자도 감소하기 시작할 무렵에 추석연휴가 있다.
아무래도 가족들이 모두 모이는 추석연휴에는 고연령층이 감염에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이후 첫 명절인 이번 추석에는 민족 대이동이 불가피해 보이는데 감춰진 확진자들이 미처 확진됐다는 사실을 모르고 고연령층 가족과 만나 연휴를 함께 보낼 경우 고연령층 확진자가 증가하는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사망자와 위중증 환자도 다시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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