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사의 제품을 베꼈다는 논란이 일고 있는 롯데칠성음료의 아침헛개와 황금보리. 작은 사진은 CJ제일제당의 컨디션헛개수와 웅진식품의 하늘보리. |
이재혁 사장이 이끄는 롯데칠성음료의 화려한 기록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그 뒤에 ‘베끼기 선수’라는 수식어를 붙이곤 한다. 더욱이 지난해 3월 취임한 이 사장은 첫 작품부터 베끼기 논란을 겪더니 최근 출시한 ‘아침헛개’와 ‘황금보리’까지 연이어 업계의 눈총을 받고 있다. 여기에 가격 인상과 철회 해프닝까지 겹쳤다. 각종 논란에 시달리고 있는 롯데칠성의 ‘뚜껑’을 따봤다.‘미투’(Me-too) 마케팅이란 시장에서 성공한 제품을 모방하는 전략이다. 이러한 마케팅은 신제품 개발을 위한 연구비용을 줄일 수 있으며 실패 위험도 낮다. 때문에 적은 투자비용으로 손쉽게 매출을 올릴 수 있어 기업들로서는 상당한 매력을 느낄 수밖에 없다. 대표적으로 광동제약의 ‘비타500’이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자 여러 제약·음료 회사에서 비슷한 제품을 출시한 사례가 있다. 문제는 이 같은 미투 제품은 별다른 어려움 없이 선발 업체의 인기를 이용한다는 점에서 ‘비도덕적 상술’이라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이다.
12월 15일 시장에 등장한 롯데칠성의 ‘아침헛개’와 ‘황금보리’도 출시되자마자 업계로부터 미투 상품이란 지적을 받았다. 아침헛개는 최근 간 기능 개선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인기를 끌고 있는 헛개나무 열매를 사용한 차 음료. 하지만 이미 광동제약의 ‘힘찬하루 헛개차’와 CJ제일제당의 ‘컨디션 헛개수’가 소비자들의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상황. 황금보리도 2000년 출시 이후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 웅진식품의 ‘하늘보리’를 닮은 모습이다.
롯데칠성은 ‘베끼기’를 부인한다. 출시 시점이 달랐을 뿐 이미 준비를 하고 있던 제품이라는 것. 롯데칠성 측은 “시장을 뺏길까 걱정하는 마음은 이해한다. 하지만 이번에 출시된 아침헛개와 황금보리는 미투 제품도 아닌데 논란이 일어 당혹스럽다”며 “황금보리의 경우 ‘오늘의 차’ 3종 중 하나를 리뉴얼한 것이고 아침헛개도 마찬가지다. 정관장에서 홍삼과 헛개열매를 넣은 음료가 있었는데 이번에 헛개열매만 따로 빼 출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롯데칠성 관계자는 “원래 음료업계는 새로운 소재를 찾기 어렵다. 트렌드를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한 제품이 인기를 끌면 너도나도 유사한 제품을 내놓는다”며 “때문에 미투 마케팅 논란이 일어나기도 하는데 이는 특정 회사만의 문제는 아니다. 우리가 먼저 내놓은 상품이 인기를 끌면 다른 업체에서도 내놓는다. 업계 1위이다 보니 유독 우리만 여러 말들이 나오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무임승차’를 바라보는 경쟁업체들의 시선은 다르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헛개수의 경우 2008년부터 2년에 걸친 준비 끝에 출시한 제품이다. 당시 국내산 헛개열매 수급이 원활하지 않아 전국으로 발로 뛰며 고생해 탄생시킨 제품인데 유사 제품들이 나오니 씁쓸하긴 하다”고 응수했다. 웅진식품 관계자 역시 “롯데칠성은 업계 1위 기업으로 시장을 이끌어 나가야 할 위치에 있다. 그런데 계속해서 미투 제품 논란에 시달리고 있어 음료업계 전체에 있어서도 좋은 모습이 아니라 아쉽다”고 지적했다.
롯데칠성의 미투 논란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재혁 사장이 취임 후 처음으로 내놓은 ‘데일리C 비타민워터’는 3년 앞서 출시된 코카콜라의 ‘글라소 비타민워터’와 콘셉트, 색깔, 디자인까지 비슷했다. 또 지난 8월, 생수 ‘아이시스’를 리뉴얼한 ‘아이시스 8.0’은 프랑스의 ‘에비앙’과 유사한 분홍색 포장으로 바꿔 소비자들을 혼란스럽게 했다. 게다가 에비앙은 롯데칠성이 공식 수입한다는 점에서 더욱 논란이 됐다.
물론 롯데칠성만 미투 제품을 내놓는 것은 아니다. 하나하나 따지고 들면 국내 대형 식음료 업체 누구도 미투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롯데칠성이 업계 1위 기업이기 때문에 비난의 화살이 집중되는 셈이다. 김성택 경희대 교수(경영학)는 “자유경쟁 시장에서 따라 하기 마케팅은 누가 제지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 한편으로는 경쟁을 더 부추겨 가격의 거품을 빼 소비자들에게 이익을 가져다 줄 수도 있다. 신제품을 내는 업체 측에서도 상표등록을 통해 권리를 지키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롯데칠성은 지난 11월 가격 인상과 철회 해프닝으로도 여론의 화살을 맞았다. 롯데칠성은 지난 11월 18일 ‘칠성사이다’를 비롯해 ‘펩시콜라’ ‘게토레이’ ‘레쓰비’ ‘칸타타’ 등 30개 제품의 가격 인상을 단행했다. 갑작스런 가격 인상에 소비자들의 불만이 터져 나왔다. 가격 인상 제품이 대부분 롯데칠성의 대표 음료였고 인상폭도 5~9%로 높은 편이었기 때문이다. 업계 1위 기업이 가격을 올리면 다른 업체들도 자연히 따라 올릴 것이기에 물가 상승을 부추긴다는 지적도 나왔다.
각종 비난이 쏟아지자 롯데칠성은 열흘 만에 이를 철회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소비자들의 반발도 있었지만 일각에서는 물가 안정을 위한 정부의 압력도 있었다는 말도 흘러나왔다. 당시 롯데칠성 측은 “가격 인상 이후 국민들이 음료 소비에 많은 어려움을 느껴 이를 해소하고자 한다”면서 “물가 관리에 주력하는 한편 정부 정책에도 적극적으로 호응하기 위해 고통 분담 차원에서도 가격을 다시 내리기로 했다”는 공식입장을 발표했다.
하지만 논란이 수그러들기는커녕 더욱 시끄러워졌다. 소리 소문 없이 가격인상을 단행할 때완 달리 대대적으로 생색내는 분위기를 연출한 것이 첫 번째 이유였다. 적잖은 소비자들은 가격인상 소식은 모른 채 인하 소식만 접해 혼동이 왔던 것. 회사원 신 아무개 씨(26)는 “가격 인하 뉴스만 봐서 처음엔 물가안정을 위해 솔선수범하는 줄 알았는데 가격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고는 속은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게다가 가격 인상 당시에는 30개 품목을 올렸으나 인하 때는 5개 품목만 포함시킨 사실이 들통 나 ‘꼼수’를 부렸다는 비난까지 받게 됐다. 롯데칠성 측은 “가격을 인하한 5개 제품은 매출의 80%를 차지해 소비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제품”이고 설명했으나 여론을 잠재우지는 못했다. 롯데칠성은 결국 12월 6일 가격을 인상했던 음료 전 제품의 출고가를 환원하며 해프닝은 마무리됐다. 이처럼 취임 1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 여러 논란에 시달린 이재혁 사장이 새해엔 어떻게 업계 1위의 위상을 드높일지 주목된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