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찬구 금호석유 회장. 작은 사진은 박삼구 회장.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지난 12월 말 금호석유 채권단은 금호석유가 보유하고 있는 아시아나항공 지분 13.43%를 매각할 것을 요구했다. 채권단은 이 같은 요구에 대해 “금호아시아나그룹의 계열분리를 앞당기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그런데 환호할 것 같았던 금호석유 측이 의외로 “당장 매각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계열분리는 누구보다 박찬구 금호석유 회장이 바라던 바다. 박찬구 회장은 지난해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 지분을 매각했고 금호석유는 공정위에 계열분리를 신청하기도 했다. 이를 거부당하자 공정위를 대상으로 법원에 행정소송까지 제기하며 계열분리에 대한 의지를 강하게 피력했다.
금호석유 측은 “물리적으로 보면 아시아나항공 지분을 정리해야 완전한 계열분리가 된다. 문제는 박삼구 회장이 금호석유 지분 매각 자금을 어디에 쓸지 아직 모른다는 점”이라며 “박삼구 회장이 금호석유 지분을 다시 살 경우도 고려해야 한다. 금호산업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것을 확인한 후 아시아나항공 지분을 정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시 말해 박삼구 회장이 금호석유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는 ‘확인 도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금호석유 측의 태도에 대해 너무 조심스러워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심지어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나 피해의식이 있어 보인다’는 얘기도 들린다. 금호석유 측은 ‘오죽하면 그러겠느냐’는 입장이다. 금호석유 관계자는 “일일이 말로 다하기 민망할 정도로 (박삼구 회장에게) 당한 것이 많다”고 털어놨다.
이처럼 금호석유 측이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는 박삼구 회장의 금호석유 지분 매각 자금은 금호산업 유상증자에 쓰일 것으로 보인다. 박삼구 회장의 금호아시아나그룹 관계자는 “증자 가격 문제로 채권단과 협의 중”이라며 “협의가 끝나면 증자에 참여할 것”이라고 전했다.
재계 일각에서는 박삼구 회장이 금호산업 유상증자에 참여한다 하더라도 금호석유 측이 아시아나항공 지분을 곧바로 팔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미 박삼구 회장이 금호석유 지분을 모두 정리했고 박찬구 회장에 대한 검찰 수사도 ‘불구속 기소’로 마무리된 터여서 계열분리는 기정사실화된 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지난 11월 말 박찬구 회장도 “계열분리가 80%쯤 온 것 같다”며 홀가분해 했다.
금호석유 측도 지난해와 달리 한 발 빼는 모양새다. 금호석유 관계자는 “당초 우리가 바란 것은 금호아시아나그룹에서 우리를 빼달라는 것이 아니라 박삼구 회장의 영향력을 없애달라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금호아시아나 측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다. 두 회사는 비록 같은 사옥 내에 있지만 이미 각자 경영하고 있고 내선전화도 따로 쓰고 있는 실정이다. 금호아시아나 관계자는 “아무쪼록 원만히 해결돼 각자 제 갈 길을 잘 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박찬구 회장이 이제 신경 써야 할 부분은 안정적인 지분을 확보하는 일이다. 지난 12월 27일 현재 금호석유 지분을 보면 박찬구 회장이 6.50%, 이번에 임원으로 승진한 아들 박준경 상무가 7.17%로 박찬구 회장 부자 지분은 13.67%에 불과하다. 여기에 자사주가 18.36%가 있고 역시 이번에 임원이 된 고 박정구 금호그룹 회장의 아들 박철완 상무가 9.78%를 보유하고 있다.
금호석유 측은 “그럴 일 없다”고 부인하고 있지만 지분율만 보면 박찬구 회장 부자는 언제든 경영권을 위협받을 가능성이 짙다. 금호석유 측이 전전긍긍하는 까닭도 취약한 지분에 기인할지 모른다. 이것이 아시아나항공 지분을 쉽게 내놓지 않는 이유가 될 수 있다. 더 비싸게 매각하면 그만큼 금호석유 지분을 매입할 수 있는 자금이 늘어나는 측면도 있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