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생에 인분 먹이고 몸에 ‘엘 주인님’ 새기고…2년간 텔레그램 활동, 확인된 대화방만 30여 곳
성착취물을 제작·유포한 박사방의 조주빈, n번방의 문형욱 등에 대한 형사처벌이 이어지는 가운데 이들이 운영한 텔레그램 대화방 이용자들에 대한 사법 처벌도 계속됐다. 과거에는 단순 이용자는 처벌을 피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 법원은 단순 시청자도 처벌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다만 아직 법원마다 판결이 다소 엇갈리고 있다. 한 박사방 무료 회원은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상 음란물 제작·배포 등의 방조죄와 음란물 소지죄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의 처벌을 받았다. 청주지방법원 제천지원은 다운로드를 받지 않고 스트리밍 등의 방식으로 단순 시청만 했음에도 이처럼 처벌했다. 의정부지법 역시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을 받아본 뒤 3시간 만에 삭제한 이용자에게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반면 무죄 사례도 있다. 울산지법은 텔레그렘 n번방에 접속해 아동·청소년 성 착취물 사진과 동영상 657개를 내려 받아 보관한 혐의로 기소된 이용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게다가 텔레그램의 특성상 성착취물 대화방 이용자 전체가 아닌 일부만 수사 대상이 됐다. 이 가운데 검찰 기소까지 이뤄진 이용자들만 재판을 받았고 여기서 다시 유죄와 무죄로 나뉘었다. 그렇게 상당수의 ‘이용자’들은 살아남았다. 그리고 그 이용자들은 여전히 또 다른 성착취물을 원하고 있다. n번방을 취재한 추적단불꽃의 일원으로 현재 대안 미디어 ‘얼룩소’ 소속인 원은지 에디터는 자신의 글에서 이용자인 ‘시청자와 소지자’를 ‘텔레그램 성착취 생태계의 뿌리와 몸통’이라며 ‘가해자’라고 지칭했다.
상당수의 가해자들이 건재한 상황에서 기존 양대산맥 박사방과 n번방의 몰락은 신진 세력에게는 기회가 됐다. 그렇게 등장한 이가 바로 엘이다. 엘에 대한 설명은 원은지 에디터의 ‘텔레그램은 또 갓갓을 만들었다’는 기사에서 소개한 2021년 한 익명 대화방에 올라온 글로 대신한다.
“올해 텔레 판을 뒤집어 놓은 장본인, 거느리는 직원 수만 2명, 여자 노예 11명, 남자 노예 3명. 초등학교 학생에게 인분을 먹이고 영상을 촬영시킨 극악무도한 인물, 악랄함이 조주빈급이라 텔레그램이 경찰에 협조할 시에 검거 대상 1위 ‘엘’”
2020년 상반기부터 2022년 상반기까지 2년가량 텔레그램에서 활동한 것으로 보이는 엘은 직접 성착취를 저지르며 제작한 영상과 사진을 유포했다. ‘OO녀’로 이름 짓는 ‘네임드 성착취’ 가해자다. 원은지 에디터는 취재 결과 확인된 성착취물이 이미 유포된 피해자는 최소 3명으로 모두 아동·청소년으로 보이며 OO녀라는 제목이 붙었다. 가해자들은 이를 ‘엘 노예 OO녀 시리즈’라고 불렀고 엘 자신은 이를 ‘개인작’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n번방 박사방 등의 자신의 대화명을 활용한 텔레그램 대화방에서 성착취물을 유포한 갓갓 문형욱이나 박사 조주빈과 달리 엘은 텔레그램에서 친목이 있던 일부에게 성착취물을 먼저 공개했다. 이를 본 가해자가 대화방을 개설하면 그 방 홍보를 위해 엘이 성착취물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활동했다.
이렇게 엘과 관련된 대화방은 확인된 것만 30개가 넘는데 심지어 무려 5000명이 상주하는 텔레그램 대화방까지 있었다고 한다. 이런 대화방에는 서열이 있어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방, 채팅·음란물 ‘공유’ 횟수 등의 조건을 충족해야 초대되는 방, 믿을 만한 사람끼리만 모이는 VIP 방이 있는데 방 서열에 따라 공유되는 영상의 수위가 달라진다.
이후 엘이 유포한 성착취물은 각종 텔레그램 대화방, 다크웹 한국인 채널, 불법 음란 사이트 등으로 유포됐다. 심지어 2021년 11월에는 일간베스트(일베)와 같은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엘의 성착취물이 올라왔다. 심지어 암호화폐 등으로 거래가 되기도 했다.
한 제보자가 원은지 에디터와 KBS에 보낸 350여 장의 사진과 영상들을 보면 피해자들의 몸에 ‘엘 주인님’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여기에는 아직 사진이나 영상이 유포가 되진 않은 피해자들도 포함돼 있는데 피해자는 최소 6명, 전원 아동 청소년으로 추정된다.
갓갓 문형욱과 박사 조주빈이 체포된 틈을 타 ‘텔레그램 성착취 생태계’의 지배자가 된 엘은 n번방 문제를 취재해 대대적인 경찰 수사가 이뤄지도록 주도한 추적단불꽃의 이름까지 악용했다. 엘은 새로운 피해자를 물색하기 위해 일탈계(성적인 게시물을 올리는 SNS 계정)를 운영하는 아동·청소년에게 위장 접근했는데 그 과정에서 자신을 ‘추적단불꽃 활동가’라고 속였다.
실제로 한 피해자는 페이스북 메시지로 추적단불꽃 활동가라는 이의 연락을 받았다. 그는 일탈계에 올린 사진과 개인 정보가 유출됐다며 유포를 막고 싶다면 가해자에게 텔레그램 대화를 걸라고 권유해 피해자와 엘의 대화가 시작되도록 했다. 그렇게 피해자는 도와주겠다고 다가온 추적단불꽃 활동가와 자신을 협박하는 엘, 이 두 개의 대화방을 오가며 대화를 이어갔다.
엘은 숨 막히는 협박을 이어갔고 추적단불꽃 활동가는 우선 엘이 시키는 대로 하라며 응원을 거듭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는 가운데 피해자는 추적단불꽃 활동가의 정체를 의심하기 시작했고 결국 추적단불꽃의 메일함에 ‘도와달라’는 SOS 메일을 보냈다. 그렇게 진짜 추적단불꽃의 엘에 대한 추적이 시작됐다.
엘의 행보가 갓갓, 박사 등과 가장 비슷한 지점은 절대 본인은 잡히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만만했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갓갓과 박사는 모두 검거됐고 결국 갓갓 문형욱은 징역 34년, 박사 조주빈은 징역 42년형이 확정됐다.
엘은 2022년 5월 닉네임과 아이디 그리고 프로필 사진을 세탁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해자 가운데 한 명이 그동안 엘의 범행 내용을 정리해 국내 언론사 20곳에 제보했다고 알려진 영향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텔레그램에 엘은 여전히 ‘최근에 접속함’으로 상태가 나온다. 여전히 그가 텔레그렘에 있다는 의미다.
경찰은 엘과 그를 도운 일당, 그리고 가해자로 통칭되는 엘 관련 대화방 이용자인 시청자와 소지자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에 돌입했다. 이번에는 경찰 수사와 법원의 판단이 엘과 그를 도운 일당에 대한 처벌에서 그치지 않고 ‘텔레그램 성착취 생태계의 뿌리와 몸통’인 가해자들까지 이어져야 한다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한편 철옹성 같은 텔레그램이 변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성착취물 범죄 근절을 위해서는 매우 반가운 소식이다. 지난 6월 보안 외신 ‘핵리드’는 텔레그램이 사용자의 개인정보를 독일 경찰과 공유했다고 보도했다. 어떤 정부 기관에도 개인정보를 넘기지 않는다고 주장해 왔던 텔래그램의 커다란 변화다. 공유한 개인정보는 테러와 아동학대 등 중요 범죄 용의자들의 것이라고 하는데 가장 치명적인 피해를 양산하는 성착취물 범죄에 대해 텔레그램이 사용자 정보를 한국 경찰과 공유할 가능성이 조금이나마 생긴 셈이다.
전동선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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