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요즘 축구계 최대 이슈인 대한축구협회와 지난해 12월 초 전격 경질된 조광래 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의 첨예한 대립은 단순한 의견 충돌이 아니다. 외형상 “2014브라질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에서 현재 조 1위를 하고 있는 상황이고, 대표팀 스태프와 선수단 내부 갈등이 없었는데 왜 잘랐느냐”는 조 전 감독의 주장과 “대표팀이 일본 원정과 레바논 원정에서 지는 등 경기력이 크게 떨어지고 있어 회장 직결 권한으로 경질을 결정했다”는 협회의 엇갈린 주장이 갈등과 대립으로 비춰지지만 내막을 좀 더 살필 필요가 있다. 넓은 시선으로 보면 2013년 1월 열릴 협회장 선거를 앞두고 이뤄지는 축구계 여당과 야당의 파워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예측은 딱 맞아 떨어졌다. 어차피 불편한 동거가 오래갈 것이라고 생각한 축구인들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생각보다 오래갔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조 전 감독이 대표팀 사령탑에 공식 부임한 게 2010년 7월이었으니, 1년 6개월이란 시간이 결코 짧았다고는 할 수 없다. 양측은 이토록 오랜(?) 시간을 함께할 수 없는 관계였다.
조 전 감독은 철저한 야당 인사다. 축구계 야당의 대부 격인 허승표 피플웍스 회장과 두터운 친분이 있다. 한국축구지도자협의회를 발족시킨 것도 사실 둘의 힘이었다.
조 전 감독은 협회 명예회장 직함을 가진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가 한국 축구 수장 직위에서 물러나고 현 조중연 회장이 집권했을 때였던 2009년 1월 협회장 선거에서도 조 회장의 대항마로 나섰던 허 회장을 지지했다.
▲ 정몽준 전 축구협회장(왼쪽)과 조중연 현 축구협회장. 조광래 감독 경질은 내년 1월 축구협회장 선거를 앞둔 사전준비라는 말이 나돌고 있다. 박은숙 기자 |
그러나 정 전 대표가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등 정황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결국 A 씨는 조 회장을 지지하기로 했다. 그리고 2010년. A 씨가 전략을 바꿔 야당 대표 격인 조 전 감독을 끌어안으려 했다. 운신의 폭을 넓히려는 선택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조 전 감독이 대표팀에 부임하기 전 협회에서는 많은 의견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협회 최상부의 최종 결심이 서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망설였고, 또 주저했다. 한 축구인은 “부회장단과 당시 기술위원회의 평가가 끝나고, 조 전 감독이 대표팀 지휘봉을 수락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결정이 떨어지기까지 4시간 이상 걸렸다”고 귀띔했다.
조 전 감독은 그렇게 적이 득실거리는 협회의 중심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하지만 금세 흔들거렸다. 여전히 야인일 뿐이었다. 드러나지 않은 마찰도 많았다. 사사건건 조 전 감독과 협회 수뇌부는 충돌했다. 여기에는 조 전 감독과 그리 나쁜 사이가 아닌 고향 선배인 B 부회장도 있었으나 각자 추구하고, 활동해온 기본 노선이 달랐기에 공존하기는 무리였다. 그리고 승자도 패자도 없는 물밑 싸움은 조 전 감독의 경질이라는 비극으로 막을 내렸다.
조 전 감독에 대한 검증은 여론이 악화일로를 걷기 시작한 8월 삿포로 원정으로 치러진 한일전(0-3 한국 패)이 끝난 뒤에 본격적으로 이뤄졌다. 일부 반대 의견도 있었으나 여기서 거의 감독 경질이 결정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11월 월드컵 3차 예선 레바논 원정 패배(1-2)는 결정타였고, 또 다른 빌미를 제공한 계기였다.
그러나 이는 차기 협회장 선거를 위한 사전 대비로 봐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전반적인 의견이 다른 조 전 감독이 남아있으면 축구계 내부 여론을 긍정적으로 만들기 어렵다는 것이다. 축구계의 한 인사는 “조 전 감독과 협회의 동거는 오래갈 수 없었다. 어차피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었던 싸움”이라고 맥을 짚었다.
조 전 감독의 경질 소식이 작년 12월 초 한 방송사 보도를 통해 흘러나오기 며칠 전, 협회 여당 인사들은 제주도에서 골프 회동을 가졌다. 여기서 사령탑 경질이란 강수를 두기로 마음을 모았다. 조 전 감독의 선임을 주도했던 A 씨도 다시 여당과 한 배를 탔다.
협회는 당시 조 전 감독의 경질 이유로 ▲성적 부진 ▲스태프와 불화 ▲선수단 내부 갈등 등을 들었다. 그리고는 황보관 기술위원장을 방패막이로 내세웠다. 마지막 순간까지 협회 수뇌부는 “황보 위원장의 의견이 절대적이었다. 조광래 체제로는 월드컵 본선 진출 확률이 10%에 불과했다는 판단”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협회가 아무리 반박을 해도 황보 위원장이 결정적인 의사 결정을 한 일은 없었다. 그저 윗선에서 결정한 걸 다른 기술위원들에게 통보하고 따른 것 뿐이었다. 황보 위원장이 경질 통보를 하기 위해 서울 강남 모처에서 개인적인 만남을 가졌을 때 조 전 감독은 의미심장한 한마디를 던졌다고 한다.
“그렇게 일방적으로 (경질 결정을) 하면 당신과 나의 싸움으로밖에 비쳐지지 않는다. 지금이라도 기술위원회를 열고, 다시 절차를 밟아라. 그래야만 여론의 이해를 구할 수 있다.”
당시 조 전 감독이 “정말 기술위원회의 판단이냐”고 물었을 때에도 황보 위원장은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협회의 선택은 ‘밀어붙이기’ 경질 강행이었다. 조 전 감독의 경질을 단독 보도했던 해당 방송사만 제외한, 대다수 언론과 팬심(心)을 모두 잃어버렸음은 당연했다.
여기서 한 가지 짚어볼 대목은 야당이 집권했을 때 이뤄질 축구계의 변화다. 그저 하나의 가정에 불과하고, (체제가 뒤바뀌는 건) 이변에 더 가깝겠지만 지금처럼 전체적인 여론이 여당에 고운 눈길을 주지 않는다면 현 체제가 그대로 유지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마냥 긍정적일까. 아무리 여당의 행동이 곱지 않았다고 해도 축구계는 전반적으로 ‘보류’ 쪽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야당도 결국 집권하는 순간, 비슷해지리라는 것이다. 정치권에서 신선한 인물이 야당의 대표 인사로 깜짝 등장해 한껏 기대를 모았지만 결국 ‘예전과 다를 바 없다’며 비판 받고 욕을 먹는 상황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순수한 스포츠인 축구를 자꾸 정치 논리로 빗대느냐”고 반박하지만 과거부터 지금까지 흘러온 방향이 그랬다. 축구가 일종의 권력처럼 위상이 오른 것도 분명하다.
▲ 지난 12월 9일 경남지역 축구팬 40여 명이 축구협회 앞에서 조광래 감독 경질에 대해 항의하며 기자회견을 가졌다. 연합뉴스 |
넓은 의미에서 여당 인사로 분류되지만 비교적 중립 노선에 가까운 모 유력 축구인은 이렇게 말했다. “야당이 집권한다고 해서 얼마나 달라질 것 같은가. 아마 초반부는 새롭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코드 인사와 줄 대기, 외압과 간섭, 시기 및 질투가 섞인 여느 집단과 다르진 않을 것이다. 야당이 집권하면 당연히 해당 노선을 지지해온 인물들을 끌어들일 수밖에 없다.” 조 전 감독의 사태에서 보듯이 의견 다른 상대를 보듬어주고 아우르는 탕평책이 나오기 어렵다는 의미다.
또 다른 인사도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최강희 신임 감독은 어려운 결단을 했다. 월드컵 본선 진출을 약속했지만 어떤 상황이 발생할지 아무도 모른다. 더욱이 협회장 선거가 다가오는 미묘한 시기에 어려움에 놓인 여당의 분위기를 끌어올려야 하는 특명을 부여 받은 셈이다. 그런 와중에 소신 있게 할 말을 하는 태도를 견지하는 건 당연하다. 외국인 감독이 필요하다는 견해를 주목해야 한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절대 흔들리지 않을 사람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지금 같은 시국이라면 국내 지도자는 결국 흔들릴 수밖에 없다”고 일갈했다.
더불어 여당에 대한 대안 없는 비판이 아닌, 발전적인 공약을 야당이 제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함께 나오는 실정이다. 여당과 야당 내부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조 전 감독이 경질된 이후 지속적으로 협회의 행보를 질타하는 목소리를 내는 것에도 싫증을 느끼는 일부가 분명 존재한다. “양극화가 이뤄졌다. 중립 노선이 없다.”
축구 팬들의 생각을 가장 잘 보여주는 협회 팬 게시판이나 각종 온라인 축구 게시판을 보면 여론은 거의 반반으로 구분돼 있다. 정말 복잡한 한국 축구 권력 구도의 헤게모니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
규정대로 했다간 대어 다 놓쳐유~
▲ 성남 김정우 |
전력 보강을 위한 각 구단들의 움직임도 치열하다. 물론 엄밀하게 따지자면 이미 우수한 선수 영입 작업은 2011시즌이 끝나면서 이뤄져왔다. 2012년 1월 1일에 시장이 개장됐을 뿐이다. 상당수 감독들과 스카우터들이 직접 현지를 방문해 외국인 선수들에 대한 시장 조사 및 접촉을 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용병 선정이 아니다. 국내 선수들, 특히 FA(자유계약) 선수들에 대한 영입 작업이다.
프로축구연맹 선수단 관리규칙 제4장(FA제도) 28조(교섭기간)을 보면 FA 선수의 경우, 12월 22일부터 31일까지 원 소속 구단과 우선 협상을 가진 뒤 재계약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에 이듬해 2월 마지막 날까지 소속 팀을 포함한 전체 구단들과 입단 교섭을 벌일 수 있다.
이러한 규정을 어길 시에는 사전 접촉으로 인정, 위반 구단에 5000만 원의 벌금을 물리고 해당 선수와 평생 계약을 할 수 없도록 돼 있다. 위반 선수에게도 5년간 K리그 등록이 금지된다.
그러나 사전 접촉은 만연화돼 있다. 오히려 안 하는 구단이 이상하게 비쳐질 정도다.
최근에는 국가대표 선수로 활약한 김정우(성남)가 화두에 올랐다. 얼마 전, ‘디펜딩 챔피언’ 전북에 안착했다는 소식이 한 스포츠지에 의해 알려져 파문을 일으켰다. 전북은 “접촉한 적 없다”고 펄쩍 뛰고, 김정우 측 역시 “아직 소속 팀은 성남”이라고 한발 뺐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을 이는 없다.
전북이 새 시즌 전력을 보강하기 위해 특급 미드필더를 영입한다는 소문은 오래전부터 나왔다. 다른 언론들이 김정우 이적을 몰라서 기사화하지 않은 게 아니라 서로 타이밍을 보다 속된 표현으로 ‘물 먹은’ 경우다. 2012년 1월 이전에 기사화되면 김정우 관련 사전 접촉 의혹이 불거질 것이 뻔했기 때문에 전북 입장을 최대한 고려해 기다렸다는 의미다. 성남 내부 소식에 정통한 관계자도 “김정우의 이적은 사실 시간이 문제였다”라고 지적했다.
그렇다고 김정우만 그런 건 아니다. 벌써 무수히 많은 선수들이 ‘사전 접촉’을 거쳐 이적 발표 시점만 기다리고 있다. 오히려 몇몇 선수들의 경우는 일찍 해외 전지훈련을 떠난 새로운 소속 팀 선수들과 함께 동계 훈련에 돌입했다.
해당 팀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규정대로 이적 건을 진행했다가는 접촉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선수를 놓치는 건 뻔하다. 더욱이 포스트시즌에 오르지 못한 대다수 팀들은 아예 12월을 즈음해 전지훈련을 떠난다. 선수단 정리 및 정비 작업도 12월 초면 끝난다. 전력을 보강하고, 전열을 가다듬기 위해서는 이듬해 1월부터 선수 영입 작업을 하라는 건 어불성설이나 다름없다. 차라리 필요 없는 규정이라면 아예 이번 기회에 없어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