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권상정·패스트트랙 거론 강경모드…최고위원들은 대여 공세, 대표는 협치 메시지 ‘역할 분담’
8·28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를 통해 이재명 의원이 신임 당대표로 선출됐다. 이 대표와 함께 뽑힌 최고위원 역시 ‘친명계(친이재명계)’가 다수 포진했다. 정치권에서는 정부여당에 맞서는 강한 야당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재명 대표는 수락연설에서 “국민 삶이 반보라도 전진할 수 있다면 내가 먼저 정부여당에 협력하겠다. 영수회담을 요청해 머리를 맞대고 해법을 만들겠다”면서도 “그러나 민생과 경제, 민주주의와 평화의 가치를 훼손하고 역사를 되돌리는 퇴행과 독주에는 결연히 맞서겠다. 국민의 뜻이라면, 민생에 필요하다면, 국민이 부여한 권한을 망설임 없이 최대한 적극적으로 행사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와 관련된 각종 의혹을 집중 파헤치겠다는 전략이다. 앞서 민주당 등 야권은 8월 17일 국회에 ‘윤석열 대통령 집무실·관저 관련 의혹 및 사적채용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요구서’를 제출했다. 요구서에는 민주당 의원 전원과 야권 성향 무소속 의원,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 등 175명의 서명이 담겼다.
조사 대상에는 △용산 대통령실 이전에 따른 안보 재난대책 공백 △대통령실 집무실·관저 공사 업체 선정 과정 △공사 과정에서 김건희 여사와 사적 친분이 있는 업체에 특혜 제공 의혹 △지인 아들과 친척 등 대통령실 사적채용 의혹이 포함됐다.
이어 김용민 민주당 의원은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연루 의혹 및 허위경력 의혹 등에 대한 특별검사 임명을 추진하는 ‘김건희 특검법’을 발의했다. 이 법안에는 김 의원을 비롯해 이번에 최고위원으로 선출된 정청래 서영교 장경태 최고위원과 ‘처럼회’ 소속 황운하 김승원 민형배 의원 등 12명의 이름이 담겼다.
법률안에서는 김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허위경력 △대통령실 공사 특혜 의혹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용민 의원은 “검찰은 대통령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시간끌기 봐주기 수사를 반복하면서 김건희 여사의 위법 행위에 눈감고 있다”며 “이에 정치적으로 중립적이고 공정한 특검 임명을 통해 윤석열 대통령 가족에 대한 각종 의혹을 엄정히 조사해 진상을 신속하고 철저히 규명하고자 한다”고 제안 이유를 설명했다.
민주당 신임 지도부는 출범 첫날부터 윤 대통령과 김 여사에 공세 수위를 높였다. 8월 29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서영교 최고위원은 “윤석열 정권에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한동훈 법무부 장관, 윤핵관(윤석열 핵심관계자), 김핵관(김건희 핵심관계자)이 헌법과 법률, 국민을 조롱하고 있다”며 “특검을 통해 중립적이고 공정한 수사와 함께 대통령실 사적 채용, 리모델링 특혜 이권 개입에 관한 국정조사가 확실히 이뤄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장경태 최고위원도 “김건희 특검법이 필요하다. 검찰과 경찰이 제대로 된 수사를 하는지 지켜보겠다”고 덧붙였다.
대통령 취임 100여 일 만에 국정조사·특검 추진은 유례가 없는 일이다. 1야당이 수적 위에 있더라도 실제 이뤄질지에 대해선 회의적 견해가 많긴 하다. 국민의힘에서 국정조사와 특검 요구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기 때문.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8월 30일 원내대책회의에서 “민주당 새 지도부의 첫 일성은 김건희 여사 특검 주장이었다”며 “이재명 부부가 검·경 수사를 받고 있을 때 가야 하는 바른 길은 수사에 성실히 협조하는 것이지 ‘물타기 특검’이 아니다. 민주당은 도 넘은 정치공세를 중단하라”고 비판했다.
국정조사에 국민의힘이 협조하지 않으면 김진표 국회의장이 직권상정하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김 의장이 직권상정할지 확신할 수 없다. 앞서 김 의장은 국정조사 요구서가 제출된 직후인 8월 19일 직권상정 요청이 들어오면 받아들일지에 대해 “처음 들었으니 생각해보겠다”고 말을 아꼈다. 입법부의 수반으로 행정부의 대통령과 그 가족을 겨냥한 국정조사를 강행하는 데 부담감을 느끼고 있다는 분석이다.
김건희 여사 특검의 경우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야 하는데, 법사위원장직이 국민의힘으로 넘어간 만큼 난항이 예상된다. 이에 민주당 내부에서는 김도읍 법사위원장이 ‘김건희 특검법’ 심의 및 상정을 하지 않고 시간을 끌 경우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해 처리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 안팎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관철이 쉽지 않은 국정조사·특검을 무리하게 밀어붙이다가 일반 여론의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과거 문재인 정부 청와대에 몸담았던 민주당 한 관계자는 “9월 정기국회가 시작되면 국정감사가 진행된다. 여기서 윤석열 정부의 문제를 지적해도 된다. 민주당 강경파 지도부가 국정조사와 특검을 요구하면 여야가 대치국면이 되고 정기국회는 또 다시 공회전한다. 그럼 국민적 비판은 민주당에 쏠릴 수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민주당 관계자는 “이재명 대표는 친명 지도부 체제를 구축해 역대 가장 강력한 야당 대표가 될 것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데 그러한 힘을 가지고도 난관에 부딪쳐 국정조사를 통과시키지 못한다면 임기 초기부터 개혁성·추진력에 흠집이 갈 것이다. 이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에선 특검과 국정조사 시행이 쉽지 않은 상황이긴 하지만 계속 메시지를 낼 필요는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정국의 주도권을 쥘 수 있고, 사정정국을 조성하려는 윤석열 정부를 상대로 반격 카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친명계’로 평가 받는 야권의 한 관계자는 “김건희 여사 특검은 안 될 거다. 특검 임명은 대통령 권한이다. 설사 특검이 이뤄진다 해도 정권 초기인데 수사 성과가 나올 수 있겠느냐. 그럼에도 계속 주장해야 한다. 패스트트랙에 태워도 최대 8개월은 소요된다. 그 사이 윤 정부에 대한 국민적 지지율이 더 떨어질 수도 있다. 정치권 상황을 보며 기다리면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지는 이 관계자의 말이다.
“국정조사를 요구해야 한다. 윤 대통령 취임 이후 대통령실과 김 여사를 둘러싼 논란 중 무엇 하나 명확히 실체가 규명된 것이 있느냐. 법적 문제가 될 만한 국정농단·국기문란 내용들을 계속 축적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 들어 문재인 정부의 ‘탈북어민 북송사건’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등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이재명 대표에 대해서도 ‘백현동 관련 발언’을 선거법 위반으로 검찰에 송치했고, ‘법인카드 유용 의혹’ ‘성남 FC 후원금’ 등은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민주당에 대한 사정의 칼날이 들어오면 민주당은 국정조사로 맞서야 한다.”
다만 이재명 대표는 국정조사나 특검 논의에서 한 발자국 떨어질 필요가 있다는 충고도 적지 않다. 당대표는 정부여당과의 투쟁보다는 민생을 챙기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첫 최고위원회의에서도 최고위원들은 윤 정부를 향해 국정조사·특검 추진 등 강한 목소리를 냈지만, 이 대표는 ‘민생을 위한 대여 협치’ 메시지를 밝혔다. 지도부 내에 대표와 최고위원 간 역할 분담이 이뤄진 것으로 읽힌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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