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BS 의학드라마 <브레인>의 한 장면.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다. 사진제공=KBS |
A 사가 검찰조사를 받고 있다는 정보를 접한 기자는 다방면으로 수소문한 끝에 어렵게 내부 고발자와 접촉할 수 있었다. 내부 고발자들은 몇 번이나 만남을 거절하다 기자의 끈질긴 설득 끝에 전화 인터뷰에 응했다. 익명을 요구한 A 사 내부 관계자 B 씨는 1월 4~5일 양일에 걸친 통화에서 그간 A 사가 벌여온 리베이트 내막을 공개했다.
B 씨는 인터뷰 초반 기자에게 검찰 조사가 어느 정도 진행됐는지 물으며 “내가 듣기론 검찰 쪽은 업무가 바빠서 아직 구체적인 조사가 제대로 안 들어간 것 같다. 조사를 하고 있긴 한 건가. 벌써 사건이 접수된 지 두 달이 지났는데 착수도 안한 것 같다”며 이 사건이 유야무야 묻힐 것 같다는 의구심을 감추지 않았다.
기자가 ‘A 사에 대한 검찰 조사가 그대로 묻힐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냐’고 묻자 B 씨는 “아마도 그럴 것이다. 로비를 했을 수도 있고…. 여하튼 조사 들어오기 전에 A 사 쪽에서 관련 자료 같은 것을 다 없앴다. 수사가 두 달이나 지연됐으니 졸지에 시간을 벌게 된 A 사로서는 만반의 대비를 다 해놓았을 것이다”고 주장했다. ‘A 사처럼 임차료 명목으로 대학병원 측에 5000만 원 상당의 거금을 지급하는 게 흔한 일이냐’고 기자가 묻자 그는 “비단 A 사뿐만 아니라 다른 업체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며 몇몇 관련 업체의 명칭을 노골적으로 대기도 했다.
특히 그는 “A 사는 K 의료원뿐만 아니라 10여 개에 달하는 국내 유명 대형 병원에도 고액의 리베이트를 지급해왔다”는 다소 충격적인 주장을 펼쳤다. K 의료원 내부에서 리베이트를 두고 교수들 간에 다툼이 일어나는 바람에 K 의료원만 억울하게 걸린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업계 베테랑답게 A 사 말고도 어떤 업체가 어떤 병원에 리베이트를 해왔는지 여부를 상세히 파악하고 있었다.
‘임차료 리베이트가 일종의 관례냐’는 기자의 질문에 B 씨는 “리베이트라고 말할 수 없는 게 금액의 정도가 어찌됐든 정당한 임차를 했는지 여부가 불법과 합법을 나누는 기준이 될 것 같다”며 “다만 도매물량을 주는 것에 대한 대가성인 것은 맞다”고 조심스레 답했다.
B 씨 외에 또 다른 업계관계자에 따르면 A 사는 리베이트로 의심되는 임차료를 다른 대학병원 10여 곳에도 지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자가 ‘고액을 월마다 지급하는 것은 너무 과하지 않나. 손해 보는 장사 아닌가’라고 묻자 A 씨는 “구매대행을 하면 가격 네고(협상) 과정에서 파생된 이익에서 일정 부분을 대학병원 측에 떼어주는 것이다”고 말했다. 즉 고액의 리베이트를 지급해도 충분히 ‘남는 장사’를 유지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는 A 사와 대학병원 간의 매출 규모에서도 어느 정도 확인됐다. A 사 간부 출신인 C 씨는 “일반 대학병원의 경우 월 거래액이 30억~40억 원이고 이 가운데 영업이익은 5% 정도”라고 말했다.
업계의 ‘은밀한’ 관행을 털어놓던 B 씨는 “생각해보니 리베이트라고 말할 수도 없을 것 같다. 대학병원 측을 상대로 자신들을 통해 구매대행을 결정해준 것에 대한 일종의 고마움의 표시다”고 해명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비단 A 사 말고도 다른 유사 업체 대부분도 이 같은 고마움의 표시를 대학병원 측에 해오고 있다는 것이다. 리베이트건 아니건 병원 측에 뭔가를 쥐어주지 않으면 이상하게 보는 내부 시선이 있기 때문에 A 사를 무조건 비난할 수도 없다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대학병원 측에서 리베이트를 원하는 것인가. 리베이트를 안주면 어떻게 되느냐’고 묻자 B 씨는 “(리베이트) 안 주는 업체와는 거래를 안하겠죠”라고 단언했다. 이어 그는 “의사들도 여러 가지 약 중에 하나를 택하는 조건으로 리베이트 받는 것처럼 병원도 마찬가지다”고 덧붙였다.
아직 검찰수사 결과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A 사가 연루된 의혹을 받고 있는 이번 사건을 두고 ‘신종 리베이트’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B 씨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의료 유통업체들이 병원 측에 어떤 방식으로든지 은밀히 금품을 제공하고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적잖은 파장이 예상된다.
하지만 A 사 측과 K 의료원 측은 관련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A 사의 한 관계자는 ‘A 사가 검찰 내사를 받고 있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누가 그런 소리를 하느냐. 검찰 수사 안 받고 있다. 그런 사실이 없다”며 강하게 부인했다.
K 의료원 측 역시 A 사와 비슷한 답을 내놓았다. K 의료원 홍보담당자 엄 아무개 씨는 1월 3일 기자와 전화 통화에서 “그동안 K 의료원은 A 사를 비롯한 그 어떤 유사업체로부터 리베이트를 받은 적이 없다. 이번 사건도 교수들 간의 개인적인 다툼이었을 뿐인데 몇몇 기자들이 (리베이트 때문이라는) 뜬소문을 그대로 기사화하는 바람에 일이 커졌다. 검찰과 보건복지부도 아직 정확한 조사결과를 내놓지 못하고 있지 않느냐”고 주장했다.
‘그래도 A 사 측으로부터 임차료 명목으로 월 5000만 원가량을 받아온 것은 사실이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엄 씨는 “K 의료원 내부에 물건 보관을 해줄 만한 공간이 없다. 따라서 공간을 임대해주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고 반박했다. 그는 이어 “그런 임대를 해주는 병원은 따로 있다”며 리베이트를 받는 병원으로 다른 대형 대학병원을 지목하기도 했다.
이런 주장에 대해 A 사의 또 다른 내부 관계자는 “그게 무슨 소리냐. K 의료원 신관에 임차를 받는 창고가 분명히 있다. 얼마 전에 직접 가보았다”고 주장했다.
이번 사건을 담당하는 복지부 양정석 사무관은 1월 3일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아직은 수사단계에 있기 때문에 섣불리 말하기 곤란하다. 조사 결과에 따라서 결정할 것이다”라는 원론적인 입장을 보였다. ‘아무리 정당한 절차를 통해 지불된 임차료라 할지라도 얼마 크지도 않은 창고의 월 임차료가 5000만 원이나 된다는 것은 일반인의 시각에서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지 않겠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양 사무관은 “국민들이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공무원은 법에 따른 결과로만 판단해야 한다. 사무관 입장에서 일반인 시각으로 개인적인 의견을 내기 어렵다는 것을 기자가 더 잘 알지 않느냐”며 “K 의료원에 대해 어떤 조치를 내릴 것인지에 대해선 조사 결과가 나오고 나서야 생각해볼 문제다”라고 답했다.
그렇다면 국내 임차 시세는 어떨까. 대형 임차전문 공인중개사들을 만나 확인한 결과 서울, 경기권에서 월 5000만 원 상당의 임차료를 지급할 만한 곳으로는 강남, 분당 서현 등 역세권 10층 1485㎡(450평) 규모로 확인됐다. 이 지역에선 보증금 6억에 월 5500만 원을 지급하고 있었다. 비단 역세권이 아니더라도 보증금 5억 원에 4000만~5000만 원 상당의 임차료를 지급하려면 1650~1980㎡(500~600평) 상당의 층을 통째로 빌려야 한다. 이를 대학병원에 적용했을 시 한 층을 통째로 임대해야만 월 5000만 원가량을 병원 측에 건넬 수 있다.
하지만 그동안 대학병원으로부터 유통업체 측이 한 층 전부를 임차 명목으로 제공받은 경우는 거의 없었다. 보통 10평 남짓한 방 한 칸을 임대해주는 게 일반적이라는 게 병원 임대사업자의 귀띔이다.
이에 대해 한 의료전문 변호사는 “통상적인 임차료 시세나 거래관행에 따른 시중 임차료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높은 임차료가 지급되었다면 이는 임차료를 가장한 신종 리베이트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고 진단했다.
김포그니 기자 patronu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