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일본에서 벌어진 AFC 챔피언스리그 FC서울과 나고야의 경기. 사진공동취재단 |
# 시스템이 낫다?
일단 냉정하게 살펴야 한다. 일본 프로축구 J리그는 예전에 비해 메리트가 많이 떨어진 게 사실이다. 국내 K리그의 그것보다 모든 면에서 낫다고 보기 어렵다.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의 최근 성적에서도 살필 수 있듯이 K리그가 오히려 우세하다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상당수 국내 축구인들은 “일본이 우리보다 모든 면에서 낫다”고 입을 모은다. 대체 왜 그럴까. 이유는 딱 한 가지다. 시스템이다. 여기서 A매치로 평가되는 국가대표팀은 언급할 필요가 없다. 선수를 키워낸다는 점에서, 환경과 축구 인프라에서 한국에 비해 일본이 훨씬 우수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온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거론되는 부분들이다.
축구 행정가의 꿈을 키우며 미국 메이저리그사커(MLS) 밴쿠버 화이트캡스 입단을 확정한 한국 축구의 베테랑 수비수 이영표도 “시스템에서 일본이 많이 앞선다는 느낌을 받고 있다. 계속 현 상태가 유지되면 점차 일본 축구와의 격차가 벌어질 수도 있다”는 경고의 메시지를 던지기도 했다.
일단 틀린 말은 아니다. 벌써 십 수년째 클럽하우스와 전용 훈련장 및 트레이닝 시설 확보 등 인프라 요소가 거론되는 K리그와는 달리 일본에서는 같은 문제를 놓고 고민하는 목소리는 없다. 적어도 선수가 마음 놓고 훈련하고 경기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은 완비돼 있다.
그러나 선수의 축구 외적인 부분까지 세심히 신경을 쓰고 배려하는 국내와 달리 일본은 선수들에게 철저히 프로 마인드를 요구한다. 철저히 규정된 훈련 시간을 지키고, 나머지 부분은 일절 터치하지 않는다. 홍명보 감독이 언젠가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사서 먹고 뛰는 J리그 환경이 마냥 좋을 수는 없다”고 한 얘기에는 분명 뼈가 있다.
문화와 언어적인 차이 외에도 훈련 시간이 부족해 따로 몸 관리를 해야 하므로 오히려 제대로 프로 의식을 갖추지 못한 선수들은 국내와 크게 다른 환경에 새로이 적응하느라 애를 먹는다고도 한다.
일본에서 활동하는 재외 한국 축구 인은 “K리그와 한국 아마추어 무대에서 뛴 선수들은 항상 일방적이고 수직적인 지도에 익숙하다. 자율적이고 개방적이며 축구 외에는 전혀 간섭 없는 일본 축구의 문화에 오히려 실력이 떨어지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지적했다.
# 생존율은 얼마나?
지난해 시즌, 북한 국적과 재일교포 선수들을 제외하고 순수 한국 선수들은 J리그에 18명, 2부 리그 격인 J2리그에 27명이 진출해 있었다. 그러나 절반가량은 기대이하의 성과만을 안은 채 2011년을 마쳤다.
20경기 이상 출전을 ‘그럭저럭 했다’는 마지노선으로 정할 때, J리그에서는 10명이었고 J2리그에서는 13명 정도였다. 그리고 지난해 12월 초, J리그 정규 시즌이 끝나고 6명의 선수들이 곧바로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는 구단 측의 통보를 받았다. 2012년 1월이 되면서 본격적인 겨울 선수 이적시장이 열린 만큼 앞으로 더 많은 선수들이 방출되거나 현지에서 새로운 팀을 물색해야 하는 처지에 놓일지 모른다. 더불어 국내 복귀 등 타 리그 진출을 모색하는 선수들도 꽤 많다. 한때 대표팀 유니폼을 입었던 몇몇 스타급 선수들도 K리그 유턴을 희망하고 있다.
여기에 K리그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일본행을 했던 선수들이 국내 무대로 돌아오기 위해선 신인 드래프트를 반드시 거쳐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갈 곳 없이 이도저도 아닌 ‘선수 출신’이라는 별 볼일 없는 타이틀만 달고 축구를 그만두는 최악의 상황에 놓이는 경우도 허다하다.
한국 출신에 대한 일본 현지의 반응이 좋은 것도 아니다. 일본의 한 축구 전문지는 얼마 전, “한국 선수들은 대표급 선수들과 유망주로 양분돼 일본행을 결정하는 경향이 큰데, 한국이나 일본이나 크게 득이 될 것이 없다”고 꼬집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예전에는 선수들의 기량이 빼어났지만 최근에는 질보다는 양만 늘어나는 추세”라는 것. 2010년에도 비슷한 내용의 보도들이 몇몇 일본 스포츠지에서 나온 바 있다.
사실 여기에는 학원 축구로 대변되는 아마추어 무대의 이기주의도 한몫한다는 지적이다. 대학(학교)에서 뛰었거나 고교를 졸업한 일부 선수들은 자유계약을 통해 곧장 일본 무대를 노크하는데, 이때 선수를 데려오는 구단들은 학교 측에 일종의 보상, 즉 지원금을 지급해야 한다. 대개 선수가 받을 연봉의 90~100%가 지원금으로 내놓는다고 한다.
대학 지도자들이나 학교 측이 일본 클럽 이적을 요구하는 선수들과 소속 에이전트들의 요구를 “미래를 가로막는다”는 나쁜 소리를 들어가며 반대할 필요 없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 처우가 다르다?
다시 한 번 K리그만의 이색적인(?) 선수 수급 제도인 신인 드래프트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1순위로 프로 무대에 데뷔하는 신인 선수들의 최고 연봉은 5000만 원. 지명 순위에 따라 연봉도 차등적으로 상한선을 정해놓았다.
그러나 일본은 다소 다르다. 선수들은 크게 A~C등급, 총 3단계로 나뉘어 연봉을 받는다. 한국에서 스타로 대접받았다고 해도 상당수는 C급 계약을 맺게 된다. 이때 연봉 상한선은 500만 엔으로 한화로 7400만 원이 채 안 된다. 물론 득점이나 어시스트, 출전 등 각종 수당은 제외했다.
다만 계약 옵션 조항에 따라 실력을 인정받으면 시즌 도중이라도 등급을 올려서 연봉 계약을 다시 체결할 수 있어 탄력적으로 운용된다.
일단 겉으로 보기에는 일본이 한국보다는 낫다. 하지만 여기에는 거품이 있다. 한국과 일본의 물가와 환율 변동은 무시할 수 없는 주요 변수가 된다. 기본적인 의식주가 해결되는 K리그에 반해 일본은 철저히 자율적인 생활을 한다. 여기에 출퇴근까지 해야 하므로 이래저래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한 에이전트는 “일본도 경제 위기에 놓여 있다. 예전보다 풍족하게 돈을 줄 수 없다. 몇몇 팀들은 도산 위기에 처해 있다고도 한다. 용병은 필요한데 경영 수지를 맞추고 적자폭을 줄이기 위해 싼 값에 쓸 수 있는 한국 유망주에 눈길을 주는 것이다. 일본 진출을 적극적으로 권장할 수만은 없다는 의미”라고 했다. 애초에 일본 구단이 한국 선수들을 영입했던 건 한류 붐과 맞물린 ‘라이벌 배우기’의 일환이었다. 하지만 이젠 그런 긍정적인 현상은 온데간데없다. 또 다른 에이전트는 “일본에서 더 이상 ‘한국을 배우자’는 요구는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오히려 유망주들이 계속 이탈해 라이벌에 대한 간접 견제 효과까지 일본이 얻고 있다”고 고개를 저었다.
각종 축구 게시판에는 한국의 어린 선수들이 일본행을 결정했다는 보도가 나올 때마다 “또 한 명이 일본으로 떠났다. 한국 축구가 무슨 일본의 선수 수급의 젖줄이냐”고 비판하는 축구 팬들의 목소리가 많다. 네임밸류가 상대적으로 높은 고참급 선수들의 일본행과는 다른 잣대에서 나온 평가다.
일본은 20대 초반 연령대의 유망주들이 유럽행을 적극적으로 타진한다. 물론 대개가 자국 J리그를 거치고 더욱 큰 도전을 꾀하는 경우이지만 한국 축구가 이래저래 위상이 많이 낮아졌음은 틀림없어 보인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
‘닥공 축구’ 접고 안전 운행
▲ 최강희 감독의 국가대표 운영이 조광래 전 감독과 어떤 차이점을 보일지 귀추가 주목된다. |
거물급 인사를 향한 스포츠 언론들의 신년 인터뷰 요청이 쇄도하는 연초라는 점이나, 조광래 전 감독을 대표팀 사령탑에서 전격 경질하면서 여론이 들끓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사실 두 사령탑의 만남은 대한축구협회가 내놓을 수 있는 최고의 흥행 카드였다.
당장의 핵심은 새로이 출범할 최강희호의 구상이다. 대한축구협회가 단판을 위한 선임이 아니라고 누차 강조해도 2월 29일 예정된 쿠웨이트와 2014브라질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 최종전 상황에 따라 최 감독은 ‘원 포인트 릴리프’ 사령탑으로 여정을 허무하게 마무리할 수도 있다.
조광래호 때와는 많이 다르다. 대표적인 게 K리거 중용이다. 젊은 선수들이나 해외파가 콧노래를 불렀던 시절은 끝났다. 물론 유럽파를 무시하는 건 아니다. 그만큼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였기에 벤치가 가장 잘 아는 선수들로 기본 골격을 짜겠다는 의중이다. 최 감독은 이미 “일부를 제외하고 상당수 유럽파가 부진한 건 사실이다. 다양한 변수가 있지만 일단 가장 잘 아는 국내 무대를 위주로 (선수들을) 선발하겠다는 계획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베테랑과 풍부한 경험이 선발 1순위다. 전북 시절, 최 감독과 한솥밥을 먹었던 공격수 이동국과 수비형 미드필더 김상식, 수비 듀오 조성환과 박원재 등이 물망에 오른다. 군 문제 해결을 위해 J리그에서 K리그 유턴을 결정한 이근호(울산)와 김정우(전북) 등도 대상자로 꼽을 만하다.
그러나 전북에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닥공(닥치고 공격) 축구’ 기조는 유지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져도 만회할 기회가 주어지는 프로 리그와 ‘패배는 곧 탈락’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대표팀에 같은 잣대를 들이댈 수 없다. 흔히 약팀이 강팀을 상대로 하는 ‘선 수비-후 역습’ 전략을 쿠웨이트와 홈 대결에서 시도할 가능성은 적지만 조심스러운 플레이 패턴은 충분히 예견할 수 있다.
어차피 지휘봉을 잡은 사령관이 바뀌면 가장 밑바닥부터 맨 위까지 모든 풍토가 바뀌기 마련이다. 닮은 구석이라고는 눈 씻고도 찾아보기 어렵듯 조광래호와 전혀 다른 최강희호를 지켜보는 건 2012년 한국 축구를 바라보는 또 다른 포인트다. [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