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톤치드 향으로 가득한 내소사 전나무길을 걷노라면 머리가 말끔해지는 기분이 든다. |
뭔가 정리하고 다시 시작해야 할 것이다. 버림을 위한 길, 그 비운 자리를 다시 채우기 위한 길을 떠나보는 게 어떨까. 어디로 향해야 하나 싶어 생각에 잠기는데, ‘바람의 도시’라는 부안이 떠올랐다. 여기서 ‘바람’은 그 ‘바람’이 아니다.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사용하는 단어다. 왜 그런 이름을 붙였는지는 내소사 길을 걷거나 솔섬의 낙조를 보노라면 알게 된다.
‘치유의 숲길’. 내소사 입구 전나무숲길을 이렇게 불러도 되지 않을까. 잃어버린 여유를 되찾게 해주는 길이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빠른 걸음으로 걷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느림의 미학’이 꽃 피는 곳이다. 머리가 가리키는 대로 몸이 따라 가는 것이 아니라 몸이 그저 길에 반응하는 것이다.
매표소에서 일주문까지 약 600m가량 이어진 전나무숲길은 생각을 정리하기에 딱 적당한 거리다. 전나무에서 나오는 피톤치드가 지끈지끈한 머리를 말끔히 낫게 한다. 바쁠 것 없는 걸음, 천천히 발길을 옮기며 숲의 향기를 만끽해본다.
▲ 내소사 전경. |
능가산 가선봉 기슭에 자리한 내소사는 백제 무왕(633년) 시절 창건한 절이다. 그 유구한 역사를 증명이라도 하듯 이 절에는 다양한 보물들이 있다. 고려시대 만들어진 동종과 3층석탑을 비롯해 대웅전 등이 모두 성보문화재다. 대웅전은 특히 꽃살무늬창으로 유명하다. 창에는 사시사철 연꽃과 국화꽃이 활짝 피어 있다.
▲ 변산반도 해안을 달리다보면 모항 쪽으로 바다를 내려다보는 전망 좋은 언덕이 나타난다. 이곳에서 바라본 변산반도 바다 풍경이 아름답다. |
▲ 솔섬 해거름. |
채석강에는 해식동굴이 여러 개 있다. 파도에 의해 뚫린 동굴이다. 절벽의 약한 부분에 파도가 계속 부딪히다보니 구멍이 생겼고, 그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커졌다. 제법 큰 동굴들은 20여m가량 깊이 뚫려 있다. 채석강의 해거름은 이 동굴 안에서 보는 것이 제일이다. 태양은 어두운 동굴을 환히 밝히며 바다로 들어간다. 그런데 이 동굴에서 해거름을 보려면 물때를 잘 맞춰야 한다. 밀물 때는 동굴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
채석강에서 약 1㎞ 정도 백사장을 따라 북쪽으로 가면 적벽강에 이른다. 붉은색 암반과 형형색색의 수석이 깔려 있고 높은 절벽과 동굴 등, 채석강 못지않은 절경지다.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세트장이 있기도 한데, 굳이 촬영지로서가 아니더라도 그 자체로도 훌륭한 여행지로 손색없다. 근처에는 또 조선시대 한양을 옮겨놓은 듯한 영상테마파크도 자리하고 있다.
복잡한 생각을 훌훌 털어버리기에는 격포에서 줄포로 내쳐 달려보는 것도 좋다. 궁항, 모항, 작당, 왕포…. 하나 같이 소박하면서도 아름다운 포구들이 자리하고 있다. 길은 대부분 그 포구들을 내려다볼 만큼 높이 있다. 길을 달리다보면 멀리 바다의 풍경이 가슴으로 들어와 안기는 곳들이 있다.
▲ 젓갈로 유명한 곰소염전. 작은 사진은 어린 갈치를 말리고 있는 모습. 여기서는 풀치라고 한다. |
곰소는 제법 넓은 항구다. 멀리 빨간 등대가 보이고 그 앞에 배들이 정박해 있는 모습이 평화롭다. 다만, 마치 황태덕장처럼 갈치 새끼인 풀치와 장어를 널어 말리느라 어부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내소사 숲길이나 솔섬과 채석강의 해거름 혹은 마치 흘림으로 써내려간 듯 굽이굽이 흐르는 해안을 달리며 마음을 정리했다면, 아마도 일상으로 돌아가서는 그 어부들의 손길처럼 우리도 잰걸음을 걷게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김동옥 여행작가 tour@ilyo.co.kr
▲길잡이: 서해안고속도로-부안IC 통과 후 바로 좌회전(부안군 관광안내소 사거리)-23번 국도(좌회전)-30번 국도-곰소-내소사-격포.
▲맛집: 곰소항에는 횟집들이 많지만, 회보다 더 사랑받는 게 젓갈이다. 젓갈가게에 들어가 젓갈정식을 잘하는 가게를 물으니 남도횟집(063-583-2895)을 추천한다. 갈치속젓, 꼴뚜기젓, 토하젓, 개불젓 등 10가지 젓갈이 한 상에 나온다.
▲숙박: 전망 좋은 모항 언덕에 모항레저(063-584-8867)은 전망이 좋다. 해거름이 아름다운 솔섬 옆에는 솔섬펜션(063-584-0550)이 있다. 채석강 근처에 대명리조트(1588-4888)도 있다. 객실에서 해거름을 감상할 수 있다.
▲문의: 부안군청 문화관광과(http://www.buan.go.kr) 063-580-41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