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지난 5일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 전체회의에서 전 정책보좌역인 정용욱 씨의 금품수수 의혹과 관련해 “진위 여부를 떠나 심려를 끼쳐드린 데 대해 진심으로 죄송하다”며 사과했다. 연합뉴스 |
김 이사장을 구속한 검찰은 해외에 체류 중인 정 씨의 귀국을 종용하는 등 수사를 전방위로 확대하고 있다. 정 씨는 최 위원장의 양아들로 불릴 정도로 핵심 측근이자 방송통신업계와 관련된 대형 프로젝트를 실무라인에서 진두지휘했다는 점에서 그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될 경우 어떤 식으로든 최 위원장에게 불똥이 튈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실제로 검찰은 정 씨와 관련된 각종 비리 의혹에 대해 최 위원장이 얼마나 인지하고 있었는지, 알면서도 묵인한 것인지, 더 나아가 최 위원장도 직접 연루된 것인지 등에 대해 전방위 수사를 펼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사정당국 주변에서는 김 이사장과 정 씨는 깃털에 불과하고 최 위원장이 검찰 수사의 종착지가 될 것이란 관측이 나돌고 있다. 과연 검찰은 현 정권 3대주주이자 최고 실세인 최 위원장을 정조준할 수 있을까.
최위원장의 핵심측근인 정 씨는 현 정부 출범 이후 방송통신업계 황태자로 군림하며 각종 이권에 개입한 의혹을 받고 있다. 청와대 민정팀을 비롯해 검찰과 경찰, 국정원 등 사정당국은 그동안 정 씨와 관련된 각종 구설과 비리 정황을 포착하고 은밀히 내사를 벌여왔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하지만 청와대와 수사기관은 정 씨의 비리 의혹에 대해 적절히 대처하지 못했고 곪을대로 곪은 비리파일은 급기야 시한폭탄을 장착한 핵뇌관으로 진화하고 있다.
‘김학인 사태’ 이후 김 이사장으로부터 2억 원대의 금품을 수수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수면위로 급부상한 정 씨의 비리 파일은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는 형국이다. 검찰은 정 씨가 김 이사장 외에 방통위 재직시 케이블TV 채널 배정과 관련해 기업들로부터 골프 회원권을 포함해 수억 원대 금품을 수수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사실 관계를 파악하고 있다. 정 씨는 또 SK로부터 3억 원대에 달하는 돈을 수수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고, 지난 2010년 초에는 CJ헬로비전 최고위급 인사로부터 5억 원을 받았다는 의혹까지 불거지고 있다. 특히 정 씨는 숱한 뒷말과 논란을 야기했던 제4 이동통신사업과 종편 사업자 선정 등 방통위가 주관한 대형 프로젝트에 깊숙이 관여했다는 점에서 대형 게이트를 점화시킬 시한폭탄으로 부상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 씨는 이러한 금품수수 의혹 외에도 관련업계 관계자들로부터 수시로 술과 골프 등을 접대받는가 하면 집안 경조사비 명목으로 10억 원대의 금품을 수수한 정황도 포착되고 있다.
이처럼 정 씨가 수년간 권력을 남용하며 각종 비리행각을 저질러 온 것으로 확인되고 있는 가운데 정작 양아버지인 최 위원장이 정 씨의 비리를 인지했는지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에 대해 야권은 최 위원장이 인지했을 가능성이 높고, 최소한 알고도 묵인했을 것이란 의구심을 감추지 않고 있다. 민주통합당 ‘대통령 측근 진상조사위원회’ 위원장인 신건 의원은 “자신의 양아들로 불리며 방송통신업계에서 실세로 통한 정 씨의 비리를 최 위원장이 모를 리 없고, 관련이 없을 수 없다”며 최 위원장의 연루 의혹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국정원장 출신인 신 의원은 “국민은 이 정부를 ‘보좌관 정권’이라고 조롱하고 있다”며 “디도스 사건, 이상득 의원 보좌관 사건처럼 보좌관 선에서 꼬리 자르기만 한다면 국민이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주승용 민주통합당 정책위의장은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2010년 정 씨의 부친상 당시 업체로부터 받은 부의금이 억대가 넘었던 것으로 파악하고 뇌물성 여부를 조사했다. 지난해에는 정 씨가 재혼을 앞두고 사전에 축의금을 걷는다는 첩보를 입수해 탐문조사도 진행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주 의원은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민정수석실 조사가 중단됐고, 정 씨가 출국할 때까지 별다른 조치가 없었다”며 청와대 비호설을 강하게 제기했다.
나아가 최 위원장이 정 씨의 해외도피를 사주한 게 아니냐는 의혹도 불거졌다. SBS는 1월 10일 정 씨가 김학인 이사장에게 검찰 수사에 대비하라고 미리 알려준 데다 자신의 출국과 관련해 윗선에 보고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SBS는 태국에서 말레이시아로 도피 중인 정 씨가 자신의 비리에 대한 검찰수사를 피하기 위해 출국하기 전 249억 원 횡령 혐의로 구속된 김 이사장과 통화한 내용(녹음)을 확보해 공개했다.
정 씨와 김 이사장 간의 통화녹음은 검찰이 지난해 12월 중순 김 이사장을 압수수색하면서 확보한 휴대전화에 담긴 것이다. 정 씨는 통화를 통해 김 이사장에게 “서울중앙지검에서 수사가 시작될 것이고 압수수색이 들어 올 것이니 대비하라”고 경고했다. 정 씨는 또 “나는 윗선에 보고했고 곧 방통위 보좌역을 사직한 뒤 외국으로 갈 것”이라고도 말했다.
따라서 검찰은 정 씨가 도피성 해외출국 과정에서 윗선과의 사전공모했는지 여부에 주목하고, 정 씨가 보고한 윗선이 최 위원장일 가능성을 열어놓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또한 검찰은 정 씨의 출국일과 검찰의 압수수색 날짜가 일치하는 것과 관련해 수사 일정이 유출됐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은밀히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최민희 민주통합당 최고위원은 11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도대체 정 씨가 보고했다는 윗선이 누구인가. 최 위원장인가”라고 쏘아붙이면서 “하룻밤 자고 나면 비리가 터져 나온다. 전대미문의 비리 막장 서스펜스 드라마가 펼쳐지고 있다. 검찰 내부에 최소한으로 남아있을 정의감이 있다면 진실을 끝까지 밝혀 달라. 그리고 방송장악위원장님 은 즉시 물러나 달라”며 최 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하고 나섰다.
이처럼 정 씨의 비리 의혹 사건이 점차 최 위원장에게 불똥이 튀고 있는 와중에 김 이사장이 최 위원장에게 “1억 8000만 원 상당의 금품을 건넸다”는 내용의 진정서가 검찰에 접수된 것으로 알려져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이 진정서에는 김 이사장이 한예진 내부 측근인 김 아무개 씨를 거쳐, 유명 여성병원장인 임 아무개 씨(여·52)를 통해 최 위원장에게 금품을 전달한 것으로 돼 있다. 검찰은 현재 이 돈이 실제 최 위원장에게 전달됐는지 여부에 대해 확인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김 이사장의 측근인 김 씨는 한예진에 고문으로 이름을 올려두고 김 이사장의 사업확장 과정에 깊숙이 개입한 혐의 등으로 최근 검찰 조사를 받았다.
검찰은 임 씨가 사실상 김 이사장의 로비창구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이를 캐는 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임 씨는 김 이사장과 고려대 언론대학원 최고위과정을 2006년과 2008년 두 차례 함께 수료했고, 병원을 경영하며 최 위원장과 최 위원장 부인의 치료 등을 담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족 출신인 임 씨는 국내에 신분을 세탁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검찰은 임 씨가 최 위원장의 치료비 등을 지원해줬다는 진술 등도 확보된 상황이어서 임 씨와 최 위원장의 관계에 대한 의구심은 갈수록 증폭되고 있는 형국이다. 검찰은 조만간 임 씨를 소환해 사실 관계를 확인한다는 방침이어서 임 씨 소환이 수사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또 김 이사장이 최 위원장에게 선물이나 상품권 등 금품을 제공했다는 한예진 내부 관계자들의 진술을 확보하고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김 이사장의 횡령 사건을 기폭제로 수면위로 급부상한 ‘정용욱 게이트’는 정 씨의 개인비리를 넘어 현 정권 최고 실세인 최 위원장이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대형 권력형게이트로 확전될 조짐이 감지되고 있다. 파문이 확산되자 최 위원장은 사과의 뜻과 함께 자신과는 전혀 무관하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천명했다.
살아있는 권력의 최고 실세를 겨냥한 검찰의 거침없는 칼날이 이번에도 가신들의 목만 치는 꼬리자르기 식으로 끝날지 아니면 ‘왕의 남자’를 직접 정조준할지 세간의 이목이 검찰 청사로 쏠리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