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학인 재단 이사장의 비리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서울 서대문구 소재 한국방송예술교육진흥원 본관 건물 내부와 입구 전경.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지난 1월 11일 기자는 서울 대현동에 위치한 한예진을 직접 찾았다. 김학인 이사장이 240억 원의 교비를 횡령하고 53억 원을 탈루한 혐의로 검찰에 의해 구속된 상태지만 학교는 어찌된 일인지 매우 잠잠해 보였다. 교비 횡령이라는 민감한 사태가 발생한 곳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조용했다.
▲ 김학인 이사장 |
학교 내부에서는 큰 사태에도 불구하고 수업이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기자는 학교 관계자와 직접 만나 현 사태에 대한 입장을 들어볼 수 있었다. 이미 학교 측은 홈페이지를 통해 “언론사의 보도 내용은 사실과 다르고 김학인 이사장의 금품수수 의혹과 교비 횡령 혐의도 사실과 다르다”라는 입장을 밝힌 상태다.
기자와 만난 학교 측 관계자의 반응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들의 피해상황을 알리는 데 급급했다. 학교 관계자는 “최근 언론사의 추측성 보도 때문에 학교가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 영향으로 신입생 원서도 줄었다. 피해가 크다”라고 하소연했다. 이어 그는 구속된 김 이사장에 대한 학교 측의 입장에 대해서는 “그런 큰 규모의 횡령이 이루어질 수 있는 곳이 절대 아니다. 학교는 철저히 법적으로 대응해 나가겠다. 조사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좀 더 지켜봐 달라”며 말을 아꼈다. 그러면서도 연간 교비예산 및 외부 회계감사 여부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는 “잘 모르겠다. 나중에 알아보고 알려 주겠다”며 즉답을 회피했다.
사실 이번 사태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것은 당연히 교내 학생들이다. 학교 이사장이 횡령한 것은 학생들의 등록금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자가 처음 학교를 찾았을 때부터 교내는 피켓시위 하나 없이 조용했다. 거기엔 다 이유가 있었다.
교내에는 학교 측에 불만을 제기하거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공식창구가 전무했다. 학생회는커녕 그와 유사한 모임조차 없었다. 그렇다면 학생들은 정말 불만이 없는 것일까. 그것은 절대 아니었다. 학교가 운영하고 있는 인터넷 카페에는 김 이사장의 횡령 혐의와 숨기기만 급급한 학교의 행태에 대해 불만을 쏟아내는 학생들의 댓글이 즐비했다. 익명성이 보장되는 인터넷 공간에서는 이미 ‘등록금 내역공개’ ‘이사장 사퇴’와 같은 항의성 댓글들도 수두룩했다.
기자는 어렵게 학교 근처에서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자신의 신분이 노출될까 두려워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었다. 기자와 만난 재학생 K 씨 역시 익명보도를 전제로 인터뷰에 응했다.
K 씨는 처음부터 하소연을 시작했다. 사건 이후 재학생들의 분위기에 대해서 그는 “나를 포함해 학생들 대부분 정신적인 충격이 크다. 학교를 그만두느니, 편입을 하겠다느니 하는 친구들이 많다. 부모님들도 상처가 깊다. 이사장 때문에 학교 자체가 놀림거리로 전락했다”라고 하소연했다.
그러면서도 K 씨는 “학생들 모두 불만이 크지만 선뜻 나설 수도 없다. 교내에는 대화창구로 활용할 수 있는 학생회 자체가 없다. 또 학생들 대부분 취업이 목적이다. 방송업계 자체가 워낙 좁다. 섣불리 나서다 찍힐 수 있다는 두려움이 크다. 답답한 상황이다”라는 속내를 드러냈다.
이어 이번 사태에 대해서 그는 “학기 등록금이 450만 원이다. 일반 4년제 대학과 비슷하다. 하지만 수업의 질이 현격히 떨어진다. 리니어와 같은 방송장비는 습기가 차면 못 쓸 정도고 컴퓨터도 부실하다. 정품 소프트웨어를 써야 하지만 돈을 아끼려 크랙을 쓰고 있다. 학교식당이나 도서관 같은 복지시설도 없다. 도대체 우리 돈이 어디로 들어가는지 모르겠다. 최근 교비 횡령사태를 접하고서야 다 이유가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최근 학교를 졸업한 졸업생들도 분을 삭이지 못했다. 제작을 전공했다는 08학번 김 아무개 씨는 “후배들을 보고 있자니 무척이나 답답하다. 내가 재학했을 당시에도 들어간 등록금에 비해 수업 내용이 형편 없었다. 영상편집기조차 부족해서 수업시간에 활용할 수도 없었다. 카메라도 부족해서 결국 내 돈을 주고 샀을 정도다. 불만이 많았지만 마땅히 이야기할 수 있는 곳도 없었다. 이사장이 그러한 일을 저질렀다면 마땅히 보상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졸업생 장 아무개 씨는 “학교는 돈벌이에 급급했다. 학생 수와 건물확장에만 신경 썼다. 수업의 질은 뒷전이었다. 거액의 수업료를 내고도 매 수업마다 비싼 교재를 사야 하는가 하면 테이프도 자비로 해결해야 했다. 그러면서도 동아리 활동비와 같은 기본적인 혜택도 없었다. 학교를 졸업한 선배지만 예비학생들에겐 진학을 말리고 싶다. 취업을 미끼로 방송지망생들을 홀리고 있는데 그것도 과장이 심하다. 학교 홈페이지에는 내가 유명방송사 A 사의 조연출로 취업했다고 선전되고 있지만 난 외주업체에서 그 프로그램을 맡아 일하고 있을 뿐이다. 이렇듯 취업현황 상당수는 꾸며진 것이다. 이런 식으로 운영될 바에야 차라리 문을 닫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학생 K 씨는 “무엇보다 학교가 등록금 사용내역을 공개해야 한다. 학생들과 언론을 상대로 공개적인 회견자리를 마련해 명확히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한예진은 사실상 존폐 위기에 서 있다. 평생교육시설의 특성상 이사장이 금고형 이상의 형이 확정될 경우 폐쇄가 불가피하다. 2012년 2월 25일은 한예진 등록금 반환기간이다. 이 기간 동안 신입생들과 재학생들의 등록금 환불 및 자퇴 러시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교육청은 지난 1월 12일부터 한예진 운영 실태에 대한 점검에 착수한 상태다. 김 이사장의 혐의에 대한 엄격한 수사는 물론 재학생들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여러 방안들을 심각히 고려해 볼 시점이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