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정치인의 출판기념회 모습.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지난 2004년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만든 정치자금법은 국내·외 법인이나 단체와 관련된 자금을 국회의원에게 기부할 수 없도록 명시했다. 개인의 경우에도 기부금이 100만 원이 넘을 경우 고액기부자로 등록된다. 하지만 출판기념회는 누가 얼마를 내든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는 정치자금법의 구멍이다. 다만 총선 90일 이전부터 출마자들이 출판기념회를 갖지 못하도록 금지시키고 있을 뿐이다.
출판기념회 금지 조치를 하루 앞둔 지난 10일.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한나라당 전여옥 의원(서울 영등포 갑)의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회의실 입구는 영등포 지역 주민들과 한나라당 의원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영등포 관내 인사들은 일찌감치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고 한나라당 이상득 의원과 정몽준 의원의 모습도 보였다.
안쪽에서는 행사 열기가 무르익는 동안 밖에서는 돈봉투를 열심히 걷고 있었다. 지역 주민의 경우 대부분 5만~10만 원이 주를 이뤘다. 한 영등포 주민은 “전 의원이 잘 되기를 바라는 순수한 마음에서 왔다”고 말했지만 구체적인 액수를 묻는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유관기관 관계자의 경우 액수는 더욱 커진다. 현재 전 의원은 국토해양위원회에 소속돼 있는 만큼 교통개발연구원, 한국건설기술평가원 등 국토해양부 산하 기관이나 관련 기관의 화환이 눈에 띄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유관 기관의 임원은 “한 번 갈 때마다 30만 원씩 내고 ‘실세 의원’의 경우 50만 원까지 내기도 한다”고 밝혔다. 그는 “같은 당 의원들 간에는 100(만 원)으로 고정돼 있는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유관기관인 한국건설기술평가원 이 아무개 연구원은 “국토해양위 의원들 행사의 경우 빠짐없이 참석하는 편인데 요즘 많이 몰리긴 하더라”고 털어놨다. 구체적인 횟수와 금액을 묻는 질문에 그는 “대외협력실을 통해 콜(초청)이 들어오는 경우가 많고 임원들이 개인적으로 참석하는 경우도 있어 정확한 집계는 어렵다”고 밝혔다. 기업이나 단체의 경우 수백만 원을 내고 액수대로 책을 받아가지 않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출판기념회를 통해 모인 돈은 정치자금에 해당되지 않기에 선관위에 신고하거나 액수를 대중에 공개하지 않는다. 전여옥 의원실 관계자는 “정확한 집계는 힘들지만 방명록에 기재된 수만 보면 700~800명 정도 오신 것 같다”고 전했다. 한 사람이 10만 원을 냈다고 가정해도 7000만~8000만 원선. 그 이상을 냈거나 방명록을 쓰지 않은 사람까지 포함하면 억 단위를 훌쩍 넘겼을 것이라는 예상이 가능하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초·재선 의원의 경우 1억 원 이상, 3선 이상 현역 의원의 경우 2억 원을 넘으면 흥행에 성공한 것으로 점친다.
다음날인 11일 국회의원회관에서 마지막 출판기념회를 가진 사람은 민주통합당 소속 A 씨(여·47)였다. A 씨는 현역 의원이 아니기에 다른 출판기념회보다 ‘화력’이 약했지만 “비례대표 선출을 앞두고 실속 만점 행사”라는 평가가 많았다.
A 씨의 ‘모금 활동’은 어땠을까. 민주통합당 지지자라고 밝힌 한 여성은 “그래도 한 장은 해야지”라며 오만 원권 지폐 한 장을 봉투에 담았다. 이 여성은 “매년 하는 게 아니니 크게 부담스럽지는 않다”며 더 큰 금액을 하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또 다른 여성은 “A 씨는 18대 때 국회의원이 됐었어야 할 분”이라며 20만~30만 원은 넘어 보이는 금액을 담았다. 일부는 모금함에 돈 봉투만 넣고 책은 가져가지 않은 채 기념회장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참여연대 황영민 간사는 “음성적으로 이뤄지는 정치자금 모금 활동을 양성화하고 그 액수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며 정치관계법 개정안을 입법청원한 상태라고 밝혔다. 황 간사는 “출판기념회를 통해 모인 돈 역시 정치자금으로 소모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이고 상한선을 두는 등의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