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0년 11월 열린 서울 G20 비즈니스 서밋 개막총회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김승연 한화 회장과 장남 김동관 차장. 연합뉴스 |
재계에서는 연말이 꽤 분주하다. 연말 결산에다 다음 연도 계획을 세워야 한다. 그런가 하면 대대적인 승진·전보 발령이 이뤄지는 인사 시즌이기도 하다. 각 대기업들의 인사가 발표되면 다른 쪽에서는 그 의미를 해석하느라 바쁘다. 이때마다 오너 자제들의 변동에 재계의 관심이 클 수밖에 없다. 지난 연말에도 이재용 사장과 정의선 부회장 등을 비롯한 주요 인사들의 승진이나 역할 변화 여부에 적지 않은 사람의 눈과 귀가 쏠려 있었다.
주요 대기업 인사의 특징 중 하나는 오너 자제, 그중에서도 재벌 3세들의 약진이었다. 한데 뜻밖에도 이재용 사장과 정의선 부회장은 배제돼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보다는 허창수 GS그룹 회장의 외아들 허윤홍 GS건설 상무,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장남 김동관 한화솔라원 기획실장,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의 장남 현승담 동양시멘트 상무, 박철완·박준경 금호석유화학 상무 등에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다.
#젊은 황태자들 임원 승진하며 속속 경영 일선으로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30대의 젊은 나이인데다 지난 연말 승진하거나 그룹의 핵심·전략 계열사로 보직이 변경됐다는 점이다. 이들은 그룹 오너인 아버지의 뒤를 이을 후계자로 평가받고 있다. 즉 아직은 미숙하지만 차근차근 경영수업을 받아온 이들이 임원으로 승진하면서 본격적으로 그룹 경영에 참여할 태세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한영외국어고등학교, 미국 세인트루이스대 국제경영학과, 워싱턴대 경영학 석사(MBA)를 받은 허윤홍 상무는 지난 2002년 LG칼텍스정유(현 GS칼텍스)의 평사원으로 입사해 경영수업을 받아왔다. 재벌 총수의 자제들이 보통 과장이나 차장부터 시작하는 것과 달리 허 상무는 평사원으로 시작해 ‘대리-강남지사 근무-해외 파견-부장-상무’라는 일반 월급쟁이와 비슷한 수순을 밟았다.
허윤홍 상무와 관련해 유명한 일화가 전한다. 2002년 사원으로 입사한 후 직영 주유소에서 3개월간 실제 주유원으로 일했다는 것. ‘밑바닥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허창수 회장의 생각에 따른 것으로서 사원부터 시작한 것도 그렇지만 재벌 총수의 외아들이 주유원으로 일했다는 것도 큰 화젯거리가 됐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장남 김동관 한화솔라원 기획실장(차장)은 지난 연말 다른 의미에서 주목받은 재벌 3세 중 한 명이다. 부장으로 승진할 것으로 예상됐던 김 실장이 승진 명단에서 제외된 까닭에서다. 미국 세인트폴고등학교와 하버드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김 실장은 미국 내에서도 명문 코스를 밟았다. 1983년생인 김 실장의 나이는 29세. 채 서른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김승연 회장은 지금의 김 실장 나이인 29세에 그룹 회장에 올랐다.
한화그룹의 신성장동력은 태양광사업. 앞으로 이를 주도해야 할 사람은 그룹의 후계자로 알려져 있는 김 실장이다. 김 실장은 일찍부터 태양광사업에 큰 관심을 갖고 공부해온 것으로 전해진다. 재계에서는 한화가 2010년 8월 세계 4위의 태양광 셀 모듈업체인 중국의 솔라펀파워홀딩스를 인수하기 전에도 김 실장이 이따금 태양광사업을 언급한 바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화는 현재 태양광사업에 사활을 걸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업황이 좋지 않아 주요 대기업들이 잇따라 철수하는 와중에서도 한화는 태양광사업에 대한 고삐를 늦출 생각이 없어 보인다. 지난 연말 김동관 실장이 한화솔라원의 기획실장으로 발령 난 것이 좋은 예다.
업황 침체에 따라 한화솔라원은 2010년 8월 인수 이후 줄곧 실적이 내리막길을 걸었고 지난해에는 큰 손실을 기록했다. 모 회사인 한화케미칼은 물론 한화그룹 전체에서 보더라도 ‘황금알을 낳는 거위에서 미운오리새끼’로 곤두박질친 셈이다. 김승연 회장은 회장비서실에만 있던 장남 김 실장을 위험을 감수하고 한화솔라원 기획실장으로 전진 배치했다. 김 실장으로서는 올해 경영수업이 혹독해 보이면서도 큰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어려움에 빠진 그룹 분위기 추스를 수 있을까
계열분리를 눈앞에 두고 있는 금호석유화학의 서른넷 동갑내기 사촌지간인 박철완·박준경 상무도 지난 연말 나란히 임원 명패를 받았다. 고 박정구 회장의 아들 박철완 상무와 박찬구 회장의 아들 박준경 상무는 경영능력을 보여주는 것 외에도 어수선한 그룹 분위기를 어떻게 추스를지 관심을 끄는 인물들이다.
특히 금호석유의 지분 중 9.98%를 보유하고 있어 박찬구 회장(6.51%), 박준경 상무(7.17%)보다 많은 박철완 상무가 계열분리를 앞두고 어떻게 움직일지도 관건이다. 현재 금호석유 측은 박철완 상무의 지분이나 움직임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할 정도로 우호지분으로 분류하고 있으나 결코 안심만 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박철완 상무가 보유하고 있는 지분이 워낙 많은 탓이다.
역시 사촌지간인 박삼구 회장 장남 박세창 금호타이어 전무(37)에 비해 크게 부각되지는 않았지만 금호그룹 ‘형제의 난’을 거치면서 박준경 상무의 이름도 적지 않은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됐다. 박 상무는 아버지와 큰아버지 간 싸움을 옆에서 똑똑히 지켜봤다. 특히 금호석유의 경우 자칫 경영권이 흔들릴 수 있는 처지에 놓여 있는 탓에 박 상무의 역할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또 박철완 상무가 훗날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금호석유 자체 내에서도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박준경 상무로서는 경영 능력을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융화와 소통의 능력을 발휘하는 것도 절실해 보인다.
1980년생인 현승담 상무는 스탠퍼드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부장 재직 중 다시 스탠퍼드대 MBA 과정을 밟았다. 그는 MBA를 마친 후 지난해 8월 동양시멘트 부장으로 복귀, 근무하기 시작했다. 어려움에 빠져 있는 동양그룹이 3세경영을 통해 어떤 변화를 모색할지 관심을 모은다.
이밖에 재벌 3세 중 가장 빨리 경영수업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진 최신원 SKC 회장의 장남 최성환 SKC 부장(31), 구본무 회장의 아들로 입적된 만큼 후계자가 확실해 보이는 구광모 LG전자 차장, 동부그룹의 ‘확실한 후계자’로 알려져 있는 김준기 회장의 장남 김남호 동부제철 차장 등도 새해 주목받는 30대 재벌 3세들이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
▲ 삼성가의 두 딸, 이부진(오른쪽)과 이서현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유장훈 기자 |
우리나라 재벌 중에는 아들 못지않게 딸들의 역할을 중요시하고, 그 영향으로 창업주 3세 딸이 핵심적인 위치에 있는 곳도 적지 않다. 삼성이 대표적이다.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이 삼성그룹이나 재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새삼 언급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범삼성가에서도 경영에 적극 참여하는 재벌 3세 딸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미경 CJ E&M 부회장, 정유경 신세계 부사장 등도 활동이 활발하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비록 가풍은 여성의 경영 참여를 배제하고 있지만 남편 정몽헌 회장의 죽음으로 경영 일선에 나선 경우다. 이것이 계기가 됐는지 현 회장의 딸 정지이 현대유엔아이 전무도 어머니의 뒤를 이을 재목으로 평가받고 있다.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친손녀인 정 전무는 현 회장과 함께 방북해 지난 연말 사망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도 면담하는 등 어머니의 여장부 기질을 이어받았다는 평가다.
신영자 롯데쇼핑 사장의 세 딸인 장혜선·선윤·정안 씨도 새해 주목할 만한 재벌가 3세 딸들이다. 선윤·정안 씨는 최근 어머니의 도움을 받아 경영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