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원 슈프리마 대표는 세계지문인식경연대회서 수차례 1위를 차지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미국 바이오인식 시장까지 노크하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제일 커트라인이 높으니까 왜 높은가 하는 관심과 함께 아무래도 적성이랑 좀 맞은 듯했어요. 제어계측이 로봇 미사일 등 뭔가를 컨트롤하는 거죠. 그 당시 새로운 분야라 많은 호기심을 자극했습니다.”
서울대학교 제어계측학과 87학번인 이재원 슈프리마 대표가 학과를 선택한 이유다. 서울 강남의 모범생이었던 그는 그러나 입학하며 학업보다는 연극 동아리 등 그동안 해보지 못했던 것에 심취했다. 이 대표는 학년이 올라가며 학계에 뜻을 두고 성적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고 석·박사과정을 거쳐 병역특례를 위해 1997년 삼성전자종합기술원에 들어간다. 삼성에서 그는 당시로서는 최첨단인 차선이탈경보시스템을 연구했지만 1999년 삼성이 자동차산업을 접으며 인생이 바뀐다.
“열심히 하고 결과도 좋았는데 나랑 상관없이 외부환경에 의해 완전히 뒤바뀌는 결과를 낳은 거죠. 제 스타일이 집중하면 계속 파서 들어가기 때문에 그런 일이 없었다면 아직 삼성에 남아있었을 수도 있었겠죠.”
2000년 그는 병역특례를 마치고 삼성을 나와 삼성전자 우리사주를 판 돈 2000만 원을 자본금 삼아 후배들과 회사를 차렸다. 당시엔 벤처 붐이 일던 시절이라 뭘 해도 될 듯싶었다. 회사명은 ‘달성할 수 없더라도 끊임없이 간다’는 의미로 슈프리멈(최대치)에서 따와 슈프리마로 지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대책 없는 창업이죠. 일단 IT 분야 기술용역으로 대기업 연구원 정도 돈벌이는 됐어요. 근데 그 사업이 마약과도 같아요. 돈은 벌지만 미래가 잘 안 보이는 거죠. 늙어서까지 그런 기술노동을 할 수밖에 없는 한계에 부딪힌 겁니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사업을 하자고 할 때 지문(바이오)인식과의 운명적 만남이 시작된다.
“벤처 버블 시기 돈으로 기술을 사서 펀딩하려는 회사의 지문인식 솔루션 기술용역을 받았죠. 하면서 보니까 전망이 좋아 보여요. 용역을 마치고 국내 경쟁업체 될 만한 곳의 연구인력 맨파워를 보니까 우리가 이길 수 있겠다는 자신감, 우리나라에선 1등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에게 용역을 줬던 회사도 펀딩이 안 돼 접었구요.”
그렇게 지문인식 분야에 뛰어들어 경쟁사보다 잘 만들었다고 판단할 즈음 국내에는 팔 곳이 없었다. 시장이 무너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배수의 진을 치고 해외로 나갔다. 2002년 국내 최고라고 자부하던 제품을 들고 해외 전시회에 나가 보니 우물 안 개구리였다.
“처음엔 정말 턱도 없이 떨어졌습니다. 2003년 첫 매출 7억 원을 올리고 나서부터 따라잡기 시작했어요. 여기서 실패하면 다시 취직해야 한다는 위기감 속에서 다들 열심히 했죠. 그리고 2004년 초 모듈(모델명 SFM3000)을 출시했는데 경쟁사들을 압도했습니다. 때마침 세계지문인식경연대회서 1등을 했어요. 사실 경연대회는 기술검증보다는 마케팅으로 활용할 만한 거, 뭔가 물건 팔려면 하나라도 내세울 게 있어야 하는데 돈도 없고 경험도 없고 한국이라는 나라는 잘 알지도 못하고…. 아, 저 대회에서 1등하면 비빌 수 있겠구나하고 나갔던 거였는데 딱 맞아떨어져 시너지효과가 났습니다.”
당시엔 획기적인 구글 검색 마케팅도 했다. 핑거프린트(Fingerprint)라고 치면 슈프리마가 뜨도록 한 것. 연매출 7억 원이던 시절 검색광고비만 4000만 원 가까이 들였다. 여기에 연구소장을 영업담당으로 전진배치, 타사는 며칠 걸리는 고객사의 자문에 실시간으로 대응하도록 조치했다. 한편에선 투자를 유치해 공격적 포트폴리오로 완제품 제작에 들어갔다.
“당시 카드 인식인 RF 방식과 경쟁하기 위해선 저가경쟁을 해야 했는데 역발상을 했어요. CPU 빵빵한 거 두 개 써 속도를 높이고 디자인 개념을 도입해 예쁘게 만들고 컬러 LCD를 도입하고…, 고급화 고가 전략을 썼죠. 그때까지 없던 출입통제·근태관리기 바이오스테이션을 내놓으니 빅 히트를 쳤습니다. 지금까지도 잘 팔려요. 직접 디자인도 하는 에스원이 이 제품만큼은 세콤 브랜드만 붙여서 그대로 써요.”
바이오스테이션이 나온 시기는 2006년 말. 2005년 30억 원대이던 슈프리마의 매출은 2006년 51억 원, 2007년 112억 원으로 뛰어오른다. 슈프리마의 질주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2007년 말 지문인식기(라이브스캐너) 전자여권 판독기 등 국내 공공부문을 독점하고 있던 회사(현 슈프리마비브이)를 인수, 공공부문으로 진출한 것. 위기는 기회고 기회는 다시 위기다. 국내를 거쳐 미국 공공시장에 막 진출하는 슈프리마의 발목을 그곳 터줏대감 크로스매치사가 잡았다.
“미국시장 진입을 막기 위한 특허소송이었죠. 구형 라이브스캐너의 경우 일부 특허 침해 판결 받았어요. 하지만 어차피 단가 때문에 폐기했던 제품입니다. 소송 중 개발한 신제품도 추가 소송을 당했는데 기술적 이노베이션으로 특허를 피해 자연스럽게 승소했습니다. 싸움은 지금부터죠. 보다 적극적인 가격 경쟁으로 공략해 고사작전을 펼 겁니다.”
여기에 ‘재스민혁명’ 중인 아프리카의 유권자 조사와 브라질 인도 등 신흥국의 인구조사까지 맞물리며 바이오인식 시장의 ‘빅뱅’이 진행 중이다. 그 한가운데 슈프리마가 있다.
이성로 기자 roilee@ilyo.co.kr
첫째도 둘째도 ‘조급증 버려라’
1. 성과는 빨리 나오지 않는다. 꿈을 크게 갖는 건 좋지만 그 원대한 꿈을 단기간에 이루려고 하기보다는 차근차근 낮은 데서부터 스텝바이스텝으로 밟아라.
2. 10년 안에 꿈을 이루겠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열심히 하다 보면 10년, 20년 뒤에 성공이 온다고 생각하라.
3. 젊을 때는 역경, 어려움이 없을 수 없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런 것들이 자양분이 된다고 생각하라. 다양한 경험과 시도를 하면서 절대 조급해 하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