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동현의 UFC 6승은 피나는 재활 끝에 얻은 승리이기에 더욱 값지다. 그는 추성훈과 술로 맞짱은 떠도 격투기로는 만나고 싶지 않다며 ‘절친’임을 인증했다.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원래는 저녁이나 먹을 생각이었는데, 막상 삼겹살집에 오니까 그냥 지나칠 수가 없네요. 소주 한 잔, 괜찮아요?
▲그럼요. 제가 술을 한 잔만 마셔도 얼굴이 빨개지는 타입이거든요. 사진 촬영하는 데 지장만 없다면 ‘취중토크’로 인터뷰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술 마시면서 인터뷰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거든요.
―술 잘하죠? 딱 보니까 ‘견적’이 소주 5병 이상은 될 것 같은데요?
▲하하, 얼굴은 빨개지지만 술 먹고 취한 적이 없어요. 제가 (추)성훈 형님하고 술을 자주 마신 편이었는데, 그 형과 둘이서 소주만 14병을 마신 적이 있었어요. 그 다음 맥주도 마시고, 막걸리도 마시고 그랬는데, 서로 안 취했던 것 같아요.
―소주 14병이요? 와, 대단하네요. 추성훈 선수도 주량이 엄청나죠?
▲성훈 형님이 술 취한 모습을 본 적이 없어요. 그 형님은 술자리를 아주 재미있게 만드는 재주가 있으세요. 동석한 사람들을 즐겁게 만들어 주세요. 한번은 가위바위보 게임을 하며 양주를 마셨는데 제가 매번 지는 바람에 양주 두 병을 거의 혼자 마시게 됐어요. 2차로 사케집을 갔다가 따뜻한 정종 한 잔에 모든 걸 쏟아냈었죠. 술 마시고 토한 게 그때가 처음이었어요.
―추성훈 선수랑 언제부터 친해진 거예요?
▲오래전부터 인사하면서 알고 지냈지만 가까워진 건 지난해 가을, 서울에서 만나면서부터였어요. 형님이 전화를 주셔서 인사드리러 갔다가 처음으로 술자리를 함께하게 됐던 거죠. 확실히 남자는 술을 마시면서 친해지는 것 같아요.
―아, 참! 곧 일본으로 가신다면서요? 추성훈 선수의 훈련을 도와주려고 출국할 예정이라고 들었어요.
▲네. 2월 초쯤에 떠날 거예요. 성훈 형님이 의외로 일본 현지에 도움받을 사람이 많지 않아요. 훈련 파트너가 없어 힘들어하실 것 같아 제가 가겠다고 말씀드렸어요. 세컨드가 없어서 고생하셨다는 얘기도 들었거든요. 만약 이번에 형님 훈련을 도와주다가 세컨드가 없다면 2월 일본에서 열리는 UFC대회에 제가 세컨드를 볼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성훈 형님이 오케이 하셔야 가능한 얘기지만요.
▲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전 그동안 맞는 게 두렵지는 않았어요. 그러나 KO에 대한 두려움은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KO 당했을 때 어떤 느낌인지를 모르니까 막연한 두려움이 생기더라고요. 콘딧한테 맞고 잠시 혼절했다가 눈을 떠선 ‘아, 이런 거구나’ ‘예상했던 것보다 별로네’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즉 KO를 당해보니까 앞으로 KO패 당하는 데 대한 두려움이 없어지더라고요. 그 결과가 지난 연말에 있었던 피어슨전이에요. 겁 없이 달려들었죠. 그라운드 기술이 아닌 타격 기술을 주로 쓰면서. 팬들은 KO승으로 이기지 못한 데 대해 아쉬움을 나타내지만, 전 타격으로 선수를 쓰러트렸다는 사실에 만족합니다.
―콘딧한테 지면서 연승 행진이 깨졌어요. 시원섭섭하지 않았나요?
▲ 5% 정도만 서운했고, 오히려 홀가분했어요. 서운했던 건 팬들이었죠. 제가 이기는 게 싫은가 봐요. 아니, 얄미운가 봐요. 한국 팬들은 화끈한 경기를 원하는데 제가 그런 기대감을 충족시켜드리지 못하니까 그 화살이 경기 결과와 상관없이 날아와요. 피어슨과 싸웠을 때는 타격 위주로 경기를 했고, 때리고 도망가는 전략을 잘 세워 승리를 거머쥔, 나름 만족스런 대회였거든요. 타격으로 이겼는데도 욕하는 분들이 계시더라고요. UFC는 일본 선수들도 어려워하는 무대예요. 대부분 1승밖에 못하거나 3패, 2패하는 선수들이 많아요. 일본보다 훨씬 늦게 UFC에 입문한 한국에서 5승까지 내달렸다는 건 정말 대단한 성과거든요. 조기축구회 선수가 1년 만에 프리미어리그 진출한 거나 마찬가지니까요. 이기고도 욕먹는 사람은 나밖에 없을 거예요.
―김동현 선수가 5연승하는 동안 타격전보다는 그라운드 기술을 통해 이긴 경기가 많아서 그럴 거예요.
▲저도 화끈하게 치고받는 경기를 하고 싶죠. 그러나 1패, 2패만 해도 퇴출되는 살벌한 세계에서 팬들을 위해 화끈한 경기만 추구하고 조기 퇴진한다면 누가 손해일까요? 전 격투기를 좋아했고, 우여곡절 끝에 옥타곤까지 서게 됐어요. 한국인 최초였잖아요. 밋밋한 경기를 보인다고 비난하고 손가락질하는 팬들을 대할 때는 ‘왜 사람들에게 욕까지 먹으면서 스트레스받고 운동을 해야 하나’ 싶을 때도 있었어요. 전 제가 좋아하는 운동만 하고 싶어요. 솔직히 인터뷰도 CF 촬영도 안 하고 싶어요. 그러나 그걸 안하면 제가 운동하는 데 지장을 받기 때문에 응하는 거예요. 유명세를 타야 CF를 찍고 광고를 찍어야 수입이 커지니까요.
―욕을 많이 먹어서 피어슨전에 타격을 들고 나온 거예요?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요?
▲팬들에게 잘 보이려 한 게 아니라 이기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었어요. 제 장기가 그라운드 기술이란 걸 UFC 선수들은 다 알아요. 똑같은 걸 갖고 나가면 콘딧 때처럼 또 당할 수가 있거든요. 일본과 달리 UFC에선 오랫동안 선수 생활을 하고 싶어요. 그래서 강자로 인정받으려면 무조건 승리뿐이라고 생각했어요. UFC 말고 더 이상 올라갈 무대가 없잖아요. 가장 오랫동안 승리를 하면서 강자로 인정받고 싶었죠.
―그동안 대회 앞두고선 주로 미국으로 전지훈련을 했었는데, 피어슨전을 준비하면서부턴 미국 대신 일본에서 훈련을 하셨더라고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미국은 짧고 굵게 훈련을 해요. 즉 훈련 시간은 짧고, 주어진 시간 동안 집중적인 훈련을 하게 되는 거죠. 그런데 그게 저랑 맞지 않았던 것 같아요. 더 오랫동안 훈련을 하고 싶은데 몸 좀 풀었다 싶으면 정리하고 집에 가라는 거예요.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서양 선수들의 훈련법은 동양 선수들한테 맞지 않겠더라고요. 외국 선수들은 운동량이 적어도 선천적인 체질상 좋은 경기를 펼칠 수 있지만 나 같은 동양 선수들은 운동량이 많아야 좋은 경기를 펼칠 수 있는 거죠. 그래서 일본에서 훈련을 하게 된 거예요.
▲ 김동현은 UFC 5연승 후 실신패라는 굴욕을 맛봤지만 지난해 마지막날, 숀 피어슨을 상대로 다시 승리를 낚는 데 성공했다. AP/연합뉴스 |
▲열 명 중에 예닐곱 명 이상은 모두 스테로이드제를 복용한다고 보시면 돼요. UFC는 소변 검사만 하거든요. 그래서 요즘 선수들은 소변 검사로도 잘 걸리지 않는 ‘EPO(erythropoietin 에리스로포이에틴)’라는 근육지구력 강화 약물을 복용해요. 몸 안에서 산소 공급을 원활히 해주는 적혈구 생성을 촉진시켜 운동 능력을 향상시키는 약물이죠. 즉 서양 선수들이 오토바이 타고 달려갈 때 전 자전거 타고 따라가는 셈이에요.
―그렇다면 김동현 선수도 힘들 때는 유혹을 받을 것 같은데요.
▲UFC에서 6승을 거둔 게 아까워서라도 안 할 거예요. 만약 복용했다가 걸리면 6승한 것까지 다 약 먹고 이긴 것으로 매도될 거잖아요. 특히 약물에 의지하다보면 선수 생활뿐만 아니라 인간다운 생활까지 망가질 것 같아 두렵기도 해요. 전 그런 약물 대신 홍삼을 먹어요. 홍삼은 도핑검사에 안 걸리거든요. 홍삼에다 비타민C를 매일 복용해요.
―‘코리안 좀비’ 정찬성 선수가 요즘 인기몰이를 하고 있어요. 정찬성 선수는 화끈한 경기 운영으로 더 큰 인기를 받고 있는 것 같아요.
▲정말 축하해줄 일이고, 개인적으로 그런 후배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격투기에선 혼자만 잘돼서 절대로 유명해질 수 없어요. 저를 포함해서 양동이, 정찬성 등 UFC 무대에 오르는 선수들이 더 많이 나와야 해요. 전 찬성이한테 오히려 고마움이 커요. 찬성이는 사람들의 욕구를 해소시켜줄 만한 화끈한 테크닉의 소유자이거든요. 찬성이 덕분에 전 좀 덜 주목받았으면 하는 마음도 있고요. 그리고 찬성이처럼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선수들이 많아야 격투기를 배우려는 사람들이 늘어나죠.
▲ 격투기 활성화를 위해서 양동이, 정찬성 같은 후배들이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김동현. 학원폭력 탓에 체육관이 호황인 현실에 대해선 안타까움을 표했다. 유장훈 기자 |
▲그럼요. 찬성이네 체육관 관장님하고 저희 관장님하고 잘 아는 사이예요. 팀매드랑 코리안탑팀이랑 형제 도장이라고 보시면 돼요. 격투기 초창기 때부터 같이 훈련하면서 찬성이의 기질을 일찌감치 알아봤어요. 격투기 선수로서 타고난 애예요. 언젠가 뭘 해도 크게 할 선수라고 생각했었죠. 제가 걱정하는 건, 만약 한두 번 패한다고 해서, 그래서 팬들이 등을 돌린다고 해도 휘둘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관심과 인기는 한번에 확 올라갔다가 확 내려갈 수 있어요. 그런 부분에서 대인배다운 성격을 나타냈으면 해요.
―격투기 흥행을 위해서 추성훈 선수와 맞대결을 펼쳐 보는 건 어떨까요? 가능한 시나리오일까요?
▲성훈 형님이 체급을 내리셔서 맞붙을 수 있는 상황이지만 둘이 싸우는 건 서로 손해예요. 그래서 절대 맞대결을 펼치진 않을 겁니다. 만약 형님이랑 축구 시합을 하는 거라면 얼마든지 환영이에요. 그런데 이건 때려서 피도 흘리게 하고 맞아서 기절도 해야 하는 격투기예요. 세상에 싸울 사람도 많은데 하필이면 제가 가장 좋아하는 형님과 대결을 펼쳐야 하는 거죠?
―그래도 두 사람이 대결을 펼쳐야 한다면요?
▲선수당 10억씩 준다면 생각해 볼게요. 대신 제가 12억을 받고, 성훈 형님이 8억을 받으셔야 해요. 왜냐고요? 제가 질 게 뻔하니까요(웃음). 형님과 같이 훈련을 해봤기 때문에 대충 감이 오잖아요. 전 그 형한테 안 돼요. 더욱이 제가 존경하는 분이라 이길 수도 없어요.
김동현은 추성훈을 존경했고 정찬성을 사랑했다. 선배로서, 그리고 아끼는 후배이기 때문에. 질투도 생기고 라이벌 의식도 느낄 만한데, 김동현은 같이 살아 나가야 격투기가 더 인기를 얻고 어린 선수들이 많이 생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종목에 대한 관심과 인기가 있어야 어린 아이들이 격투기에 대한 관심이 커진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그러면서 안타까운 얘기를 털어 놓는다.
“요즘 체육관이 남자 아이들로 붐벼요. 격투기 선수를 꿈꾸는 학생들이냐고요? 절대로요. 학원폭력 때문에 세상이 시끌벅적하니까 부모님들이 강한 남자를 만들어 달라며 체육관으로 보내시더라고요. 학원폭력 때문에 체육관이 때 아닌 호황을 누린다는 사실이 서글프지 않으세요?”
부산=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