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 강만수 산은금융 회장, 김석동 금융위원장, 이팔성 우리금융 회장. 일요신문 DB |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해인 2012년, 임진년 새해가 밝자마자 산은금융지주와 우리금융지주의 민영화에 대한 논쟁에 다시 불이 붙었다. ‘조속한 민영화’를 강조해오던 이팔성 우리금융 회장은 지난 1월 2일 신년사에서 “민영화가 올해 안에 반드시 달성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회장이 내건 신년 사자성어 ‘유지경성(有志竟成, 뜻이 있어 마침내 이루다)’도 민영화 달성 의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됐다.
강만수 산은금융 회장도 지난 1월 5일 산은금융 신년간담회에서 ‘선 기업공개, 후 민영화’ 방안을 제시하며 “연내 기업공개를 완료하겠다”고 밝혔다. 즉 기업공개를 완료하면 자연스레 민영화 절차를 밟겠다는 의미다.
민영화의 키를 쥐고 있는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양쪽 민영화에 대해 사뭇 다른 자세를 취하고 있다. 산은금융엔 우호적이지만 우리금융에는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는 듯하다.
김 위원장은 두 금융지주의 민영화에 동의하고 이를 성사시켜야 하는 지위에 있다. 그렇지만 민영화 방식에 대해서는 의견 조율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다. 강만수 회장과 이팔성 회장 간에도 큰 충돌이 있었다. 민영화에 대해 김 위원장을 중심으로 세 명이 서로 물고 물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지난 1월 17일 김석동 위원장은 우리카드 분사 승인에 대해 “지금 분위기와 맞지 않다”며 공개적으로 반대하기도 했다. 우리카드 분사는 이팔성 회장이 올해 상반기 중 꼭 이뤄내겠다고 밝힌 만큼 우리금융 민영화와 함께 이 회장이 강한 의지를 보인 사안. 김 위원장이 이처럼 공개적으로 반대하고 나서 과연 이 회장의 의지가 실현될지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우리금융 관계자는 “우리카드 분사와 우리금융 민영화가 불가분의 관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카드를 분사해 기업 가치를 높인다면 민영화에 유리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김석동 위원장과 이팔성 회장은 기본적으로 우리금융 민영화에 적극 동의한다. 그러나 그 방식에 대해서는 의견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팔성 회장은 국민주 방식을 통해서라도 하루 속히 우리금융 민영화를 성사시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김석동 위원장은 국민주 방식을 반대한다. 공적자금 회수 극대화와 우리금융의 발전을 위해 ‘확실한 주인에게 넘겨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우리금융은 지난 2010년과 2011년 두 차례에 걸쳐 민영화를 시도했지만 모두 무산됐다. 이팔성 회장은 “오매불망 우리금융 민영화를 바라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회장이 우리금융 회장으로 연임된 데는 민영화 염원을 풀기 위한 이유도 크다.
김석동 위원장 역시 지난해 우리금융 민영화가 실패하자 그 책임을 상당 부분 떠안으며 비판에 직면한 바 있다. 가뜩이나 우리금융 인수 의향을 밝힌 곳이 모두 사모펀드였던 데다 최종 참여한 곳도 MBK파트너스 한 곳뿐이었다. 사모펀드가 과연 우리금융 발전을 이끌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된 터에 공교롭게도 강만수 산은금융 회장을 밀어준다는 의혹까지 더해졌다.
지난해 우리금융이 매물로 나왔을 때 강만수 산은금융 회장은 인수 의향을 밝혔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시절부터 강 회장이 강조해온 ‘메가뱅크’를 실현하는 데 우리금융 인수·합병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 위원장은 우리금융 인수의향서 마감 전인 지난해 6월 “금융지주사법 시행령이 개정되지 않으면 우리금융지주 매각이 무산될 수 있다”며 “개정 작업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여기서 말하는 개정 작업이란 금융지주회사법 시행령 중 ‘금융지주회사가 다른 금융지주회사를 소유하려면 지분 95%를 취득해야 한다’를 지분 50% 취득으로 바꾸는 것을 말한다. 이는 산은금융이 50%만 취득해도 되도록 하는, 강 회장 밀어주기로 비쳤다.
이런 의혹에 직면하자 김 위원장은 결국 우리금융 인수전에서 산은금융을 배제시켜버렸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또 우리금융을 인수하려던 강 회장과 산은금융의 우리금융 인수를 적극 반대한 이팔성 회장 간 갈등을 폭발시키는 데 결정적인 작용을 했다.
이러한 대목으로 미뤄볼 때 김석동 위원장이 강만수 회장에게는 꽤 우호적인 자세를 취한다는 혐의를 지울 수 없다. 행정고시 선후배 관계인 강 회장과 김 위원장은 옛 재무부 시절부터 돈독한 사이로 전해진다. 또 같은 PK(부산경남, 강 회장은 경남 합천, 김 위원장은 부산) 출신에다 큰 틀에서 ‘메가뱅크론’에 동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 위원장은 산은금융의 우리금융 인수 편의를 봐주려 했다는 의혹 외에도 산은금융 민영화를 위해 강 회장과 마찬가지로 ‘선 기업공개’의 필요성에 동의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세간에서 세 사람 모두 같은 PK 출신 ‘MB맨’으로 묶지만 이 회장이 줄곧 은행에 몸담아온 것과 달리 김 위원장과 강 회장은 관료 출신이다. 이러한 점이 삼각관계의 배경으로 작용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세 사람 모두 우리금융과 산은금융의 민영화를 바라고 있지만 금융권에서는 올해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적지 않다. 정권 말기인 데다 총선과 대선이 이어져 있어 정치권의 움직임에서 자유롭지 못한 금융 민영화가 순조롭게 진행되지는 못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위 등이 키를 쥐고 있는 이상 우리금융이나 산은금융이나 민영화에 대해 적극적으로 왈가왈부할 수는 없을 것”이라면서 “금융위와 예금보험공사, 공적자금관리위원회 등과 의견을 조율하고 협력해나가는 일이 급선무”라고 말했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