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7월 27일 SBS 김천홍 기자를 태운 택시가 은밀하게 달리고 있다. 목적지는 중국의 장백. 공안의 삼엄한 감시를 피해 가며 비밀리에 도착한 곳은 작은 시골 마을이었다.
캄캄한 골목길을 돌아 불 꺼진 허름한 집 앞에 선 김 기자. 좌우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문을 열자, 누군가 기다리고 있었다.
60대 남자와 갓난아기를 업은 여자였다. 남자의 이름은 이용운. 부녀는 김 기자를 만나기 위해 몰래 압록강을 건너왔다. 하지만 강 건너 저편에 아직 남아있는 가족이 더 있다고 말했다.
가족 모두가 다 함께 탈출할 수 있도록 도움을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간절한 표정으로 김 기자의 손을 잡은 부녀. 그날의 은밀한 만남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그땐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1989년 이용운 씨는 40년 전 죽은 줄 알았던 어머니가 자신을 찾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어느 날 어머니의 육성이 담긴 테이프를 비밀리에 전달받게 되는데 "한 사람도 떨어지지 말고 다 같이 강을 건너라."
죽기 전에 꼭 아들을 만나고 싶은 어머니는 엄청난 탈출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었다. 아들의 가족 10명 모두가 그곳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비밀 계획을 세운 것. 기회는 단 한 번. 가족의 운명을 건 위험천만한 여정이 시작된다.
누군가를 위해 다른 누구를 버려야 하는 최악의 상황. 어떤 선택도 하기 힘든 딜레마에 빠진 가족들. 검은 강을 사이에 두고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선택을 해야만 했던 그들의 이야기는 지금부터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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