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2월 8일 경기도 포천시. 산기슭 도로변 배수로에서 시신 한 구가 발견된다. 옷을 하나도 걸치지 않은 채 잔뜩 웅크린 여자의 시신.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참혹하게 훼손돼있었다.
사건을 맡은 포천경찰서 강력1반 채경환 형사는 한 아이를 떠올렸다. 석 달 전 귀갓길에 실종된 열 다섯 살 중학생 엄유정(가명) 양이었다.
그런데 시신에서 중학생의 것이라고 보기 힘든 것이 발견됐다. 스무 개의 손발톱에 발린 빨간색 매니큐어였다. 아이가 직접 발랐다기엔 다소 조잡하고 기괴한 모습이었는데 범인이 직접 남긴 강력한 단서였다.
형사들은 꼭 범인을 잡겠다고 아이의 부모에게 약속한다. 그리고 용의자들이 속속 등장하는데 의문점들이 꼬리를 물고 나타난다.
그리고 16년이 지난 2019년 3월의 어느 날 새벽 포천경찰서에 전화 한 통이 걸려온다. 유정이가 실종되기 불과 닷새 전 비슷한 장소에서 납치될 뻔했다는 35세 한아름 씨(가명)였다.
그녀는 놀라울 만큼 구체적으로 남자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다. 마음의 빚을 안고 살아온 제보자와 담당 형사들. 미치도록 잡고 싶었던 형사들의 생생하고 가슴 아픈 '그날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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