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합뉴스 |
# 어떻게 변해 왔나
딕 아드보카트, 핌 베어벡 감독 등 외국인 사령탑 휘하에서 코치 직분을 맡아온 홍명보가 감독 타이틀을 달고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한 건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집트에서 열린 U-20 월드컵 무대였다. 흥미로운 사실은 당시나 킹스컵에 나섰던 지금이나 멤버 구성에는 큰 차이가 없다는 점이다. 대개가 비슷비슷했다. 60% 정도는 꾸준히 기존의 멤버들을 중용해 스쿼드를 짜 왔다. 일부 잊힌 선수들도 있지만 많은 이들이 생존하고 있다.
비록 4강 신화 재현에는 실패했지만 8강 진출로 인해 ‘8할 이상의 성공’으로 불리는 이집트 대회 출전 멤버 가운데 골키퍼는 이범영(부산) 김승규(울산)가 남아있고 디펜스에는 윤석영(전남) 홍정호(제주) 오재석(강원) 정동호(가이나레 돗토리) 등이, 미드필더에는 서정진(전북) 김보경(세레소 오사카) 김민우(사간토스), 공격수로는 김동섭(광주) 등이 살아남았다.
물론 여기서 끝은 아니다. 국가대표팀과 교집합, 그리고 유럽 진출로 인한 소속 팀에서의 차출 반발로 인해 잠시 선발을 유보(?) 중인 구자철(볼프스부르크)은 지금 이 순간도 할 수 있다면 반드시 합류시키고픈 멤버 중 하나다. 지금의 구자철은 홍 감독이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홍 감독은 틈날 때마다 “이집트에서 캡틴 완장을 찼던 자철이의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선수들이 꼭 필요하다. 여전히 난 그 친구(구자철)가 필요하다”고 하고 구자철 또한 “홍명보 선생님과 이집트에서부터 함께한 동료들과 보낸 시간들은 앞으로도 결코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추억이다. 가능하다면 올림픽에 벤치에만 앉아있는다고 해도 꼭 출전하고 싶다”는 속내를 숨기지 않는다.
따스한 감동을 준 건 광저우 아시안게임을 빼놓을 수 없다. 당초 금메달을 목표로 뛰었던 홍명보호는 연장전 종료 1분여를 남기고 내준 통한의 결승골로 아랍에미리트연합(UAE)에 밀려 3~4위 결정전으로 내몰렸으나 역시 불굴의 투혼을 발휘해 금메달 이상 의미가 있었던 동메달을 땄다.
광저우에 동행했던 이들 가운데 역시 상당수가 이집트 멤버였고, 또 현재 스쿼드의 일원이었다. 일부가 바뀌긴 했어도 대개가 기존 선수들이었다. 그리고 아시안게임에 출전했던 많은 이들이 역시 국가대표팀에 발탁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와일드카드로 합류했던 박주영(아스널)을 제외하고도 홍철, 윤빛가람(이상 성남), 지동원(선덜랜드), 김주영(서울) 등 성인 무대에서도 내로라하는 대어급 선수들이 대거 포함돼 있어 눈길을 끈다.
런던올림픽 아시아 지역 예선에서도 ‘내 자식들’을 향한 홍 감독의 강한(또는 무한) 애정을 확인할 수 있다. 다만 차이는 있다. 2011년 초 카타르 아시안컵이 열렸고, 2014브라질월드컵 아시아 예선 라운드가 본격화됨에 따라 일부 교집합에 놓였던 선수들을 차출하기가 매우 껄끄러워졌다는 사실이다. 이 과정에서 아시아축구연맹(AFC)이 주관하는 굵직한 연령별 대표팀의 예선전들이 겹치면서 국가대표팀과의 갈등설도 흘러나왔다. 물론 동일 선수 차출로 인한 충분히 나올 수 있을 법한 사안이었다.
여기서 홍 감독은 한 가지 결단을 내려야 했다. 아마추어 무대를 출장 다니면서 선수들의 실력을 꾸준히 체크했던 결과물을 뉴 페이스 발굴로 연결시켜야 했다.
홍명보호의 코칭스태프들은 전국을 돌아다니며 무려 50명 이상의 선수들 리스트를 확보하여 관리해왔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렇게 발품을 부지런히 판 결과, 주전부터 후보까지 고른 리스트가 만들어졌고 ‘위기에도 강한’ 지금의 홍명보호가 탄생할 수 있었다.
▲ 지난해 9월 오만과의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전을 앞두고 올림픽대표팀의 훈련에서 윤빛가람 선수(왼쪽)가 헤딩연습을 하고 있다. 뉴시스 |
주목할 만한 사안으로는 시기가 변할수록 일본파의 비중이 크게 늘었다는 점이다.
이집트 대회에 나섰던 출전 선수 최종 엔트리 21명 중 불과 4명만이 일본 J리그와 J2리그(2부 리그)를 누비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해외 무대에서 활약 중인 멤버들은 없었다. 이 중 K리거는 8명이었고, 고등학생 1명을 뺀 나머지가 대학생 신분이었다.
광저우 대회에는 유일한 유럽 리거였던 박주영(당시 AS모나코)을 합쳐 모두 20명이 출격했는데, 일본파 숫자는 줄어들지 않았다. 김민우 김보경 김영권 조영철 등 모두 4명으로 숫자는 같았으나 비율은 오히려 1년 전보다 늘어났다고 할 수 있다.
아마추어 선수들은 많이 줄었다. 차세대 공격수로 각광을 받아온 박희성(고려대)이 유일한 학생 선수였다. 나머지는 전원 K리그 소속이었고 대개가 팀 내 주전으로 이미 발돋움한 상태였다.
그렇게 1년이 또 지난 뒤 런던올림픽 아시아 예선을 통해 홍명보호는 대학 선수 차출이라는 새롭고도 모험을 걸어야 하는 부담스러운 국면을 맞이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A대표팀과의 선수 중복으로 인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으나 요즘에야 드러나고 있는 결과만으로 보면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장 활용해야 할 자원들이 부족했던 반면, 그만큼 대체 인력의 풀은 넓어졌기 때문이다.
킹스컵만 봐도 그렇다. 대학 선수는 역시 박용지(중앙대)가 전부였을 뿐, 나머지는 국내와 일본에서 배출됐다. 일본 오키나와 전지훈련부터 태국 방콕까지 함께한 선수들은 25명으로 이 중 9명이 일본에서 뛰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일본 내로의 수평 이동도 꽤 있었고 일본에서의 퇴출과 함께 K리그로 돌아온 경우도 나왔다.
요코하마FC를 거쳐 알비렉스 니가타에서 뛰다가 올해 초 오미야로 자리를 옮긴 조영철이 몸값을 크게 올려 받고 새로운 둥지를 받은 케이스라면 김동섭은 별다른 족적을 남기지 못하고 쓸쓸히 귀국길에 오른 경우다.
▲ 홍명보호의 주전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 지동원 선수(왼쪽)와 홍철 선수. 일요신문 DB |
홍 감독의 제자 사랑은 유별나다. 한 번 관심을 준 선수들을 어지간해서 내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사적인 자리에서나 공식 석상에서나 가장 많이 들을 수 있는 건 “우리 아이들, 내 선수들”이란 표현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잊힌’ 멤버들에게는 더욱 짙은 아쉬움과 서운함으로 남을 수도 있겠지만 ‘내 자식들’에 대한 홍 감독의 애착은 대단하다.
현장에서 만나는 복수의 축구인들은 “그저 차갑고 냉정하게 보이지만 홍 감독은 자신이 원하고, 또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는 선수들의 열정을 존중한다. 같은 연령대에 놓여 있을 때, 몇몇 선수들의 이름값이 다소 다른 이에 비해 떨어진다고 해도 먼저 필요 없다고 내치지 않는다. 네임 밸류는 외부 평가 요소일 뿐이다. 홍명보호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내부에서의 융화와 팀워크다. 이러한 기조를 깨뜨리려는 몇몇 이들이 있었으나 결국 한 순간 반짝했던 추억만을 남긴 채 사라졌다. 부상을 극복하고 다시 돌아온 김민우를 끝까지 믿는다는 사실은 정반대의 상황을 대변하는 셈”이라고 입을 모았다.
# 사연 많은 김동섭 스토리
사뭇 흥미진진한 사연이 숨겨져 있다. 킹스컵 1차전이었던 태국과의 대결에서 귀중한 선취 득점으로 홍명보호의 정상 등극을 진두지휘한 김동섭은 2009년부터 줄곧 홍 감독과 함께 해왔던 ‘프랜차이즈(?)’ 멤버 중 하나다. 홍명보 키즈라는 기분 좋은 닉네임도 갖고 있다.
그러나 기대에 비해 부침이 많았다. 굵직한 동료들에 밀려 빛을 보지 못했다. 출범 단계부터 홍 감독과 함께했으나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축구 팬들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었다. 광저우 아시안게임은 뼈저린 실패였다. 일본 무대 실패로 인한 귀결이었다. 올림픽호에서도 순탄치는 못했다. 잔부상에 시달리는 동안, 경쟁자들이 빠르게 성장했다. 작년 9월에도 허벅지 부상으로 파주NFC에 소집됐다가 중도 탈락하기까지 했다. 11월 올림픽 아시아 최종예선 카타르 원정 때는 느낌과 컨디션이 좋아 그럭저럭 괜찮았지만 오히려 벤치에만 머물렀다. 해마다 크리스마스 전후로 열려온 홍명보 자선축구 대회에 김동섭은 2010년 초청을 받았으나 작년에는 초대장을 받지 못했다.
김동섭은 지인에게 “내가 이대로 잊히는 게 아닌가 싶어 죽기 살기로 뛰었다. 광주에서 첫 시즌을 마치고 휴식이 주어졌을 때에도 개인 훈련을 하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털어놓았다고 한다.
무엇보다 노력을 강조하는 홍 감독이 이를 놓칠 리 없었다. 필요하다 싶을 때 회초리도 꺼내들지만 믿는 제자를 끝까지 기다려주는 스승,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라는 생각으로 포기하지 않으려는 제자의 도전 정신이 만든 작품이었다.
하지만 기뻐할 법도 한데 홍 감독은 여전히 특유의 포커페이스를 유지한다. 평정심을 위한 선택이다. 항상 그렇게 해왔고,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듯싶다.
“어떤 컨디션이 될지 잘 모른다. 예선전까지 시간이 있다. 앞으로 어떤 상황이 닥칠지도 예측하기 어렵다. 모든 걸 ‘제로(0)’ 베이스에서 시작하겠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