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일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회. 비대위에서 SNS 활용 능력을 공천 심사에 반영키로 하면서 이준석 위원이 제안한 복잡한 평가 산출 방식이 SNS 상에서 이야깃거리가 되기도 했다.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지난 1월 9일 새누리당 비상대책위(비대위) 산하 눈높이위원회는 19대 총선 공천 심사에 ‘SNS 역량지수’를 포함시키겠다고 발표했다. 눈높이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조현정 비트컴퓨터 대표는 회의 직후 “국민과의 소통을 활성화하기 위해 SNS 역량지수를 적게는 1~2%, 많게는 5%까지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회의에서는 당 소속 현역 의원 전원의 트위터를 모니터링한 뒤 그 결과를 매주 발표하는 방안까지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안은 내부 반발로 곧 사그라졌지만 대신 트위터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 그 선정 방식을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국내 550만 명의 사용자를 확보하고 있는 트위터는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위력을 발휘한 뒤부터 선거의 주요 변수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개개인마다 사용하는 방식이 달라 객관적인 지표를 만드는 것이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새누리당 비대위 회의에서는 전례 없는 수학 공식과 지수들이 등장했다. 특히 이준석 비대위원(28)이 제시한 트위터 평가 공식 ‘X={[log(팔로어 수+팔로잉 수)/1000]/10+1}×{∑[1+트윗 수+리트윗 수/100]}’을 두고 각종 해석이 난무했다. 역시 하버드대 출신답다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한 블로거는 “로그와 함수를 사용해 그럴듯하게 포장했지만 앞항은 팔로어 수를 늘리는 경우, 뒷항은 글을 많이 올리는 경우에 점수를 준다는 의미로 다른 평가 방법과 별반 차이가 없다”고 꼬집었다.
트위터 평가 수식에 대한 논란이 진행되는 동안 새누리당 의원들 역시 부랴부랴 트위터 이용에 나섰다. 하지만 국회 안팎에서는 진정한 소통을 위한 것이라기보다 공천을 받기 위한 ‘꼼수’에 지나지 않는다는 의견이 많다.
한 재선 의원의 보좌관은 “지금 새누리당 의원들은 공천 때 가산점을 받지는 못하더라도 점수를 깎아먹지 않으려고 트위터를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그는 “60대 이상 중진의원의 경우 SNS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들(보좌관)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돕기도 한다”고 전했다.
한 지역신문 기자는 “지역구 예비후보들이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트위터까지 찾아 맞팔(서로를 팔로잉하는 것)을 해 달라고 부탁해서 곤혹스럽다”고 털어놨다. 일부 매체에서는 의원들이 팔로어를 돈으로 거래하거나 아예 계정을 구매한다는 루머를 다루기도 했지만 확인 결과 새누리당 내부에서 적발된 사례는 없었다.
SNS ‘벼락치기’에 관한 비난 여론이 비등해지면서 눈높이위원회 측은 “SNS 역량지수가 국회의원의 대표 역량이 될 수는 없고 배점도 작기 때문에 공천 당락 여부를 크게 좌지우지하지는 않을 것이다”며 한발 물러섰다. 이준석 위원 역시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트위터 수식에 집착하는 사람들 때문에 짜증스럽다”고 밝히며 “이러한 평가를 통해 새누리당 내부에서 SNS 소통의 중요성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냈다는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전했다.
SNS 사용에 관해 양보다 질을 평가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LG CNS 이 아무개 씨는 “새누리당에서 발표한 지수는 정량평가 방식이기 때문에 연예인 인기 순위 조사에나 적합하다. 정치인이라면 타인의 이야기에 얼마나 귀 기울이고 자신의 발언이 얼마나 확산성이 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수 있게 정성평가(질을 평가하는 방식)로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씨는 또 “현재 SNS 역량이 가장 뛰어나다고 이야기되는 사람들은 대다수가 이름난 의원들이다. 이런 분들에게 공천 가산점이 돌아간다면 신선한 인물 공천을 통해 신뢰를 회복하겠다는 새누리당의 의지를 역행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그런가 하면 아예 자신들이 직접 의원을 평가하겠다고 나선 단체도 있다. 보수 성향의 시민단체들로 구성된 한국시민단체협의회는 지난 1월 31일 보수 진영 국회의원 182명을 대상으로 ‘SNS 소통 및 역량지수’를 매겨 그 순위를 공개했다. 이들이 공개한 순위에 따르면 진성호 의원이 1위를 차지했고 박근혜 비대위원장과 정몽준 의원이 그 뒤를 이었다.
한국시민단체협의회 최인식 집행위원장은 “이준석 위원이 들고 나온 공식 때문에 SNS 역량을 공천에 반영하겠다는 순수한 뜻이 퇴색되고 조롱거리로 전락했다”고 비난하며 “이번 조사는 공천 심사 여부와 상관없이 구태의연한 소통에서 벗어나라는 의미에서 만들었다”고 밝혔다.
조사를 총괄한 윤 아무개 씨는 “새누리당 의원들의 사용 패턴을 분석한 결과 지속적으로 소통하고 있는 의원들은 전체의 20%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윤 씨는 “나머지 80% 의원들은 총선이 끝나면 다시 ‘불통 모드’로 돌아설 것”이라며 “비대위에서 현역 의원의 25% 정도 공천 배제할 것이라고 했는데 SNS 역량지수를 적극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또 윤 씨는 의원들의 과열된 SNS 사용이나 보좌진이 대신 운영하는 것을 꼭 부정적으로 볼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는데 “미국 오바마 대통령도 2008년 대선 당시 자신이 직접 트위터를 운영하지 않았다. 대신 운영하는 게 문제가 된다면 박원순 서울시장처럼 자신이 쓴 것과 타인이 쓴 걸 구분해 활용하는 ‘투 트랙 전략’도 나쁘지 않다”고 조언했다.
이처럼 안팎의 우려가 터져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새누리당 공직후보자추천위원회(공추위)가 비대위 제안을 조용히 뭉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새누리당 홍보국 관계자는 “아직 공천 심사 기준은 아무 것도 확정된 안이 없다. 모든 사항은 앞으로 시작될 공추위 회의를 통해 결정될 것”이라고 밝혔다. 비대위가 야심차게 준비한 SNS 역량지수가 공추위에서 ‘말짱 도루묵’이 될 수도 있어 논란은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