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농사꾼의 운명을 거부하고 서울 상고에 진학한 소년 노학영은 꿈을 품었다. 그러나 고교를 졸업한 그의 현실은 샐러리맨이었다. 1979년 해운회사에 입사한 청년 노학영은 1984년 컴퓨터 자회사로 옮겨 소프트웨어 개발 전산시스템 구축 등 ‘IT 신세계’에 빠진다. 운명의 1990년. 본사는 경영상 이유로 자회사 폐업을 결정했다.
“위기가 기회, 창의성이 발휘된다고 하죠. 본사로 다시 돌아갈 수 있었지만 마흔이 되기 전에 꿈을 이루고 싶어 퇴직금 다 쓸어 넣고 창업으로 돌파구를 마련했습니다.”
노 대표가 세운 컴텍코리아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그룹웨어를 내놓았다. 전자결제 전자게시판 이메일을 함께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1991년 말 대기업 계열사에 첫 납품도 성사됐다. 매출은 2억 원. 흥분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거 대박이다 싶었죠. 사람도 뽑고 투자도 늘렸습니다. 한데 그 뒤로 수요가 없는 거예요. 수출해보려고 해외도 돌아다녔습니다만 허사였습니다. 결국 그룹웨어를 접었는데 한 3년 뒤 한 회사가 비슷한 프로그램으로 붐을 일으켰습니다. 제가 너무 빨랐던 거죠.”
이후 노 대표는 컴퓨터 대리점을 운영하면서 경영정보시스템을 개발, 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하드·소프트웨어를 동시에 설치해주는 회사로 탈바꿈했다. 당시 중소기업에 랜이 활성화되며 거래선이 늘기 시작했다. 그러다 1990년대 말 MBC 보도 전산시스템 입찰에 참여, 대기업을 제치고 수주에 성공한다. 이후 디지털 방송 솔루션 전문 회사로 2002년 코스닥 상장까지 승승장구했다. 그런데 상장하고 나니 뭔가 부족했다.
“상장회사는 지속적 성장 모델이 필요해요. 매출, 이익률도 증가돼야 하는데, 방송 사업이 수주가 적은 해에는 매출이 급격히 떨어지죠. 들쭉날쭉. 시장에서 불안하게 보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렇게 고민하던 와중에 지인이 패션가방 사업을 해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해요. 처음엔 해본 적도 없고 자신도 없었지만 ‘지속 경영을 위해 반드시 보완적인 아이템이 있어야 한다’는 자문그룹의 강권에 결단을 내렸습니다.”
그는 자신과 같은 월급을 주고 전임 대표를 1년간 유임시키며 어깨너머로 패션 경영을 배워 ‘소프트랜딩’에 성공했다. 당시 70억 원 수준이던 키플링의 매출은 현재 500억 원을 넘기며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그렇게 키플링 매출이 올라갈 즈음 노 대표에게 다른 고민거리가 생겼다. 방송부문 매출이 침체기에 들어간 것이다. 그가 처음부터 몸담았던 분야. 다시 활성화시켜야만 했다.
“중장기 전략 차원에서 방송과 통신이 융합되는 시대가 올 거라고 봤습니다. 그래서 통신 시장을 보니 유선·이동통신은 기존 업체들 꽉 잡고 있어요. 무선통신 중 자가망 통신을 독점하다시피 하는 에이피테크놀로지를 눈여겨봤죠. 마침 이원규 대표가 저와 30대 초반부터 친하게 지내던 사이고…. 둘이 힘을 합치기로 결정했습니다.”
2006년 11월. 컴텍코리아와 에이피테크놀로지가 합병, 두 회사 대표의 성을 딴 리노스가 탄생했다.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곧 일생일대의 위기가 닥친다. 무선통신사업에 필수적인 중계기 생산을 수직계열화고자 새로운 원천 기술을 가진 유비크론을 인수한 게 화근이었다.
“시장이 포화상태가 됐다고 판단한 통신사들이 투자를 안 해요. 수십억 원씩 손실이 났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08년 금융위기로 환율이 올라가 해외 전환사채(BW) 환손실이 150억 원이나 났어요. 아 이렇게 망하는구나 싶었습니다.”
그렇게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유비크론은 150억 원의 손실을 떠안으며 구조조정을 단행했고 해외 투자자와 ‘벼랑 끝 담판’을 통해 BW를 정리했다. 노 대표의 ‘쾌도난마’로 리노스는 2008년 316억 원 적자에서 2009년 48억 원 흑자로 턴어라운드에 성공, 2010년부터는 정상화됐다. 빠르면 올해 적어도 내년에는 매출 1000억 클럽에 가입할 것으로 노 대표는 전망한다. 물론 그의 시선은 그보다 훨씬 더 높은 곳을 보고 있다.
“무선통신 분야에서 국내뿐 아니라 세계로 뻗는 글로벌 컴퍼니, 패션 쪽은 의류를 제외한 액세서리 분야에 최고가 되고자 합니다.”
늘 시장 변화에 맞춰 능동적으로 사업 모델을 바꿔 온 노 대표. 앞으로 그가 만들어갈 ‘강소기업 모델’이 궁금해지는 이유다.
이성로 기자 roilee@ilyo.co.kr
▲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상장회사 CEO(최고경영자) 평가를 시가총액이나 주가로 하죠. 그런 의미에서 코스닥지수로 코스닥협회장을 평가한다면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코스닥 기업들이 국민생산에 미치는 영향이 8%에서 10% 넘게 성장했어요. 퇴출되는 기업도 지난해엔 과거 3년보단 현격히 줄었고 점점 줄 겁니다. 성장하며 ‘클린 코스닥’으로 가면 협회나 시장이 좋아진 거 아니냐. 그런 측면으론 협회장으로서 감히 긍지를 느낍니다.”
곧 취임 1주년을 맞는 노학영 코스닥협회장에게 지난 임기 평가를 부탁하자 돌아온 답이다. 이제 남은 임기는 1년여. 횡령 주가조작 등 코스닥 기업들의 스캔들, 오는 4월 시행을 앞둔 준법지원인제도 적용 기준 논란 등 현안은 넘쳐난다.
“기업은 지속 성장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 경영전략이 제일 중요합니다. 스캔들도 그게 없어서 터지는 거죠. 이를 위해 협회가 도와줄 건 뭔지, 코스닥 기업들의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퇴치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머릿속이 꽉 차 있습니다.”
노 회장은 취임하며 ‘점프업 코스닥’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다. 내년 이맘때쯤 한 단계 도약한 코스닥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