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가을이 왔다. 연일 마주하는 쾌청한 날씨와 청명한 하늘은 매일 아침 우리에게 상쾌함을 선사한다. 맑은 하늘로도 확인할 수 있듯 환경부에서 측정한 2022년 10월 17일 서울의 대기 미세먼지 농도는 8ug/m³로 '좋음' 단계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생활하는 공간의 미세먼지 농도는 어떨까.
미세먼지는 뿌연 하늘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요즘 같은 청명한 하늘 아래에서도 우리가 생활하는 공간 곳곳에 미세먼지가 가득하다. 인간의 건강을 위협하는 생활 속 미세먼지에 대해 알아본다.
퇴근 후 집에서 맛있는 음식 냄새가 나면 기분이 절로 좋아진다. 하지만 집 안의 미세먼지 상황은 결코 좋지 않다. 조리할 때는 고농도의 미세먼지가 발생한다. 이 미세먼지를 '조리흄' 이라 부른다.
가정집에서 조리 시 조리흄 농도를 직접 재어 보았다. 시금치 된장국을 끓일 때 초미세먼지(PM2.5) 농도 18ug/m³, 삼겹살을 구울 때는 무려 2033ug/m³까지 치솟았다. 이 수치는 세계보건기구(WHO)가 '매우 나쁨' 단계로 정한 기준 농도 51ug/m³의 약 400배에 달하는 수치다.
가정에서보다 훨씬 많은 양의 음식을 만드는 급식실 조리사의 경우 문제는 더 심각하다. 12년간 초등학교 급식실 조리사로 근무한 이순희 씨는 작년 폐암을 진단받았다.
대한폐암학회의 자료를 보면 여성 폐암 환자의 약 90%가 비흡연자이다. 전문가들이 주목하는 주요 발병원인 중 하나는 바로 ‘조리흄’이다. 국제암연구소에서는 조리흄을 1급 발암물질로 지정했다.
올해 7월 이순희 씨는 산재 승인을 받았다. 국가에서 이순희 씨의 폐암의 발병원인이 급식실 조리 근무와 연관이 있음을 인정한 것이다. 이순희 씨는 한 주에도 몇 번이고 1000인분이 넘는 양의 튀김을 조리했다.
튀김은 많은 양의 조리흄이 발생되는 음식 중 하나다. 조리흄의 발생량은 재료와 조리방법, 온도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재료에 지방이 많을수록, 튀김, 볶음과 같이 기름을 많이 사용하는 조리방법일수록, 고온에서 조리할수록 조리흄이 더 많이 발생된다.
미세먼지가 위협하는 것은 폐와 호흡기 건강뿐만이 아니다. 협심증을 앓고 있는 이종철 씨는 미세먼지가 심각했던 2019년 협심증 증세가 눈에 띄게 악화되었다. 호흡곤란과 가슴 통증으로 응급약을 섭취하는 빈도와 양이 늘었다. 미세먼지 상황이 좋았을 때는 단 한 번도 섭취하지 않던 약이었다.
폐포를 통해 혈관에 침투한 미세먼지는 혈관을 타고 이동하며 염증을 일으키기도 하고 혈액의 점도를 높여 혈관이 좁아지게 된다. 심혈관질환을 앓는 사람에게 미세먼지는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을 정도로 치명적이다.
최근 미세먼지가 혈관을 통해 뇌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미세먼지가 높은 지역에 사는 사람의 뇌를 관찰했는데 인지기능을 담당하는 전두엽, 청각시각정보를 처리하는 측두엽,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의 부피가 모두 감소했다.
그뿐만 아니라 초미세먼지 농도가 높은 날 우울증 환자의 자살 위험이 약 17%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세먼지는 생각보다 우리의 삶 가까이에 있다. 매일 지나치는 버스정류장과 길거리 흡연 구역도 미세먼지 농도가 높은 곳이다.
백해무익의 대명사로 잘 알려진 담배의 경우 믿을 수 없을 만큼 고농도의 미세먼지를 만들어낸다. 생로병사의 비밀은 흡연 구역에서 1m 떨어진 공간의 초미세먼지 농도를 측정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무려 8835ug/m³로 2022년 10월 17일 서울의 초미세먼지 평균 농도 8ug/m³ 의 1000배가 훨씬 넘는 수치이다.
흡연하지 않아도, 흡연 구역을 지나치게 된다면 여지없이 고농도의 미세먼지를 흡입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에도 보이지 않는 미세먼지는 여전히 우리의 건강을 노리고 있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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