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예산 전액 삭감 계획…지자체 “소상공인 매출 하락시킬 것” 난색
윤석열 정부는 내년도 지역화폐 지원 예산을 전액 삭감하겠다는 계획이다. 지난 8월 30일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2023년도 예산안에는 지역사랑상품권(지역화폐) 예산이 반영되지 않았다. 본예산 기준 지역사랑상품권 예산은 2021년 1조 522억 원, 올해 6050억 원이었지만 내년에는 없다.
정부는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한시적으로 이뤄진 사업인 만큼 이젠 국고 지원을 중단한다는 방침이다. 김완섭 기재부 예산실장은 예산안 발표 브리핑에서 “지역사랑상품권은 효과가 특정 지역에 한정되는 온전한 지역사업”이라면서 “코로나 이후 지역 상권과 소비가 살아나는 상황에서 긴급한 저소득‧취약계층을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데 우선순위가 있다고 생각해 정부 예산안에 담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지방자치단체들의 입장은 다르다. 전국에서 지역화폐 발행액이 가장 많은 경기도는 즉각 난색을 보였다. 김동연 경기지사는 8월 31일 도정 열린회의에서 “지역화폐는 소상공인 매출 증진에 기여해왔고 전통시장 상인들을 만날 때마다 긍정적 반응과 확대 건의를 들었는데 (국비 삭감은) 경제와 민생이 어려운 상황에서 소상공인의 매출 하락과 민생 어려움이 가중시킬 게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경기도의 지역화폐 총 발행 규모는 올해 4조 9992억 원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은 28.5%를 차지한다. 올해 기준 경기도 지역화폐 인센티브 예산 중 국비는 약 1060억 원 수준인데(도비 1841억 원, 시군비 1969억 원) 내년에 이 예산이 중단되면 지역화폐 할인 혜택 및 발행 규모를 축소하거나 도비 또는 시군의 부담을 늘려야 하는 상황이다.
김동연 지사는 여러 차례 지역화폐의 효과를 강조해왔다. 경기도지사 후보이던 지난 5월에는 “지역화폐 할인율을 상시 10%로 확대해 민생경제 회복에 나서겠다”고 했고, 10월 8일 양평 용문천년시장서 열린 경기도 우수시장 박람회에서도 “전통시장은 지역 경제의 뿌리이자 기둥”이라며 “민생경제와 밀접한 지역화폐를 다시 활성화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아직은 정부의 태도가 완고하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10월 18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굉장히 비판받고 있지만 지역화폐에 대해 7000억~8000억 원 삭감했다. 지역화폐는 지자체가 할 일이지 중앙정부가 할 것이 아니다”라며 “지역화폐 삭감과 정부 예산으로 이뤄진 일자리 창출을 민간으로 전환하는 등 재정지출을 줄이는 데 최선을 다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역화폐 예산을 되살릴 가능성을 일축한 것이다.
다만 정부도 지역화폐의 효용성에 대해 부정하는 입장은 아니다. 지역화폐는 할인율과 해당 지역에서만 사용해야 하는 특성으로 인해 소비자에게는 할인율만큼의 이득을, 지역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에게는 안정적인 매출을 올리게 한다. 그래서 정부는 지역화폐 무용론을 꺼내기보다 더 힘든 저소득‧취약계층에 대한 집중지원을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경기도 일각에서는 저소득층 지원을 위해서 지역화폐 예산을 줄였다기보다 현 정부가 전 정부 시절 대폭 확대된 지역화폐 정책을 축소하는 방식으로 민주당 흔적 지우기에 나선 게 아니냐는 얘기도 심심찮게 들린다. 민생을 생각한다면서 어떻게 지역화폐 예산을 줄일 수 있느냐는 것.
경기도민들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경기도가 한국능률협회컨설팅에 의뢰해 지난 9월 15일부터 26일까지 만 18세 이상 경기도민 2000명을 대상으로 조사(인터넷 방식 조사, 95% 신뢰 수준에서 표본오차 ±2.2%p)한 바에 따르면 경기도민의 77%는 경기지역화폐 사업이 앞으로도 계속돼야 한다고 답했다.
도민들은 할인율과 같은 지역화폐 혜택에 대해서도 ‘혜택이 유지되도록 기존 예산을 유지하는 것이 좋다’(50%), ‘혜택이 늘어나도록 예산을 증액하는 것이 좋다’(23%)라고 응답했다. ‘혜택이 줄더라도 예산을 감액하는 것이 좋다’라는 응답은 15%에 그쳤다.
경기지역화폐를 사용하는 이유로는 ‘충전 시 6~10% 인센티브‧할인 혜택이 있어서’라는 응답이 69%로 가장 높았다. 지역 경제에 보탬이 돼서라는 응답은 26%였다. 지역화폐 할인율이 주는 효과를 체감하고 있다는 얘기다. 경기지역화폐에 대한 이용자 만족도는 79%에 달했다. 만족하지 않는다는 응답 6%와 비교하면 현격한 차이다.
김동연 경기지사는 18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경기도 국정감사에서 “전통시장 한번 나가서 보시면 지역화폐의 효과를 금방 체험하실 것"이라며 "민생을 위해 정기국회에서 예산에 반영해 달라”고 거듭 당부했다.
김창의 경인본부 기자 ilyo22@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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