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4일 찾아간 경기도 구리시에 있는 LG트윈스 챔피언스파크 야구장은 눈으로 덮여 있었다. 전영기 기자 yk000@ilyo.co.kr |
그러나 구리시가 2010년 12월 LG 선수들이 사용 중인 야구장을 축구장으로 원상복구하고, 무허가 시설인 휴게실·화장실·창고 등도 철거하라는 계고장을 보내며 LG와 구리시는 갈등을 빚었다. LG는 거듭된 구리시의 압박에 지난해 3월 구리시의 행정처분을 취소해달라며 의정부지법에 소송을 제기했고 올 들어 드디어 판결이 나왔다. 하지만 LG의 기대와 달리 법원은 구리시의 손을 들었다. 야구계는 이번 판결이 LG를 비롯해 전체 야구계에 악영향을 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1월17일 야구계의 관심이 의정부지방법원에 쏠렸다. 이날 법원은 ㈜LG 스포츠가 구리시장을 상대로 낸 시정명령 및 원상복구계고처분 취소 소송을 판결하기로 했다. LG는 “법원이 대의적인 차원에서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반면 구리시는 “법원이 법대로만 처리한다면 우리가 이길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판결 결과는 후자의 승리였다. 제1행정부(부장판사 김수천)는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원고(LG)의 야구장 부대시설은 컨테이너, 천막 등으로 대부분 쉽게 이동·철거가 가능해 원상복구 처분으로 생길 공익이 원고가 입을 사익 침해보다 결코 가볍지 않다”며 “LG는 시의 시정명령에 따라 부대시설을 철거하고 축구장으로 복구하라”고 판결했다.
구리시는 “LG가 당초 허가사항을 위반해 축구장을 야구장으로 사용한 데다 무허가로 휴게실과 창고 화장실 등을 설치해 이를 원상복구하라고 요구했으나, 지속해서 시의 요구를 거부했다”며 “이번 판결로 시의 요구가 정당했음이 증명됐다”고 강조했다. 패자인 LG는 “항소 여부를 고민하는 중”이라며 법원 판결에 순순히 따르기 힘들다는 반응을 보였다.
#LG와 구리시 누가 배신했나
그렇다면 어째서 구리시와 LG는 갈등을 빚은 걸까. 왜 구리시는 20년이나 넘게 야구장으로 사용해온 LG에 딴죽을 건 것일까. 이야기는 25년 전으로 흘러간다.
1984년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에서 한국 대표팀이 4강에 오르자 당시 대통령이던 전두환 씨는 대기업이 축구 활성화에 발 벗고 나설 것을 독려했다. 축구광이었던 전 씨는 주무부처에 대기업이 축구장을 만들 때 최대한 협조하라고 지시하며 대기업에 그린벨트에 축구장을 지을 수 있도록 특혜를 줬다.
당시 LG도 구리시 아천동 일대의 그린벨트를 불하받았다. LG는 이곳에 축구장 4면을 조성했고 럭키금성 축구단의 훈련장으로 활용했다. 그러던 1990년 LG가 프로야구단 MBC 청룡을 인수하며 구리 훈련장의 용도가 다소 변경됐다. LG가 축구장 4면 가운데 1면을 야구장으로 개조한 것이다. LG는 이를 ‘챔피언스파크’로 명명했다.
애초 LG는 별도의 야구단 훈련장을 만들 예정이었다. 하지만 홈구장인 잠실구장과 구리훈련장의 거리가 가깝고, 선수 대부분이 서울에 거주해 굳이 다른 곳에 훈련장을 지을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LG는 챔피언스파크의 효과를 톡톡히 봤다. 창단 첫해인 1990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고, 1994년에도 한국시리즈를 제패했기 때문이다. 1990년대 프로야구 강자로 우뚝 선 LG는 챔피언스 파크에 갖가지 부속시설을 지어 선수단의 편의를 도모했다. 야구 관계자들이 하나같이 “구단 훈련장 가운데 LG 챔피언스파크의 접근성이 가장 좋고 시설도 뛰어나다”고 평한 것도 LG가 그만큼 야구장 환경 조성에 정성을 다한 덕분이었다. 지난해까지 LG는 챔피언스 파크를 1, 2군 연습장으로 활용했다.
구리시도 이를 모를 리 없었다. 구리시는 LG가 챔피언스파크에서 주최한 각종 야구대회에 귀빈으로 참석하며 축구장의 야구장 용도 변경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구리시는 2009년까지 조용했다가 갑자기 2010년 10월 “LG가 축구장을 야구장으로 용도 변경했다”며 원상복구를 요구하고 나섰다. LG가 “20년 동안 묵인하다가 지금 와서 원상복구를 지시하는 배경이 뭔지 모르겠다”며 “지역발전에 누구보다 애쓴 우리를 구리시가 배신했다”라며 강하게 불만을 터트린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러나 구리시의 입장은 달랐다. “먼저 배신한 건 LG”라는 입장이다. 익명을 요구한 전직 LG 관계자는 “LG가 챔피언스파크를 시외로 이전하려 계획했다”고 말했다.
“챔피언스파크는 겉만 멋지지 속은 ‘영’ 아니다. 현 부지가 그린벨트로 묶여 건물 하나도 구단 마음대로 짓지 못한다. 특히나 숙소를 지을 수 없어 선수들은 챔피언스파크에서 차로 15분 거리에 있는 숙소에 머문다. 웨이트트레닝장 역시 챔피언스파크가 아닌 숙소에 있어 선수들이 매우 불편하다. 무엇보다 챔피언스파크와 숙소가 서울과 가까이 있어 선수들의 정신력을 훈련에만 집중시키기 힘들다. 이 같은 단점 때문에 챔피언스파크 부지를 건국대에 주고, 건국대가 사용하는 경기도 이천 야구장 부지를 받으려고 연구를 한 게 사실이다.”
문제는 LG와 건국대의 야구장 교환 협상을 구리시가 몰랐다는 데 있다. 시 관계자들은 “LG와 건국대의 야구장 부지 교환 논의와 시의 축구장 원상복구 명령과는 하등의 연관관계가 없다”고 주장하면서도 “그 소식을 들었을 때 서운한 감정을 느꼈다”고 털어놨다.
▲ LG 트윈스 선수들이 훈련하는 모습. |
법원 판결로 LG는 야구장을 축구장으로 원상복구할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LG는 “2014년까지 야구장으로 존속돼야 한다”며 항소 의사를 밝히고 있다. 야구계도 마찬가지 입장이다. 야구인들은 “올해 당장 잠실구장에서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와 한국, 일본, 타이완, 호주리그 챔피언이 참가하는 아시아시리즈가 열린다”며 “잠실구장 인근 훈련장이라곤 LG 챔피언스파크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곳까지 사라진다면 당장 외국 대표팀 선수들이 훈련할 공간이 없다”고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그렇다고 해결책이 없는 건 아니다. 구리시는 “지금껏 지역 야구발전을 위해 시가 여러 노력을 기울였다”며 “LG 훈련장 문제도 대화를 통해 합리적 방안을 모색하자는 게 시의 기본 방침”이라고 밝혔다. LG 역시 “더는 시를 자극할 필요가 없다”는 말로 대화로 문제를 해결할 뜻임을 밝혔다.
최근 양측은 물밑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허구연 KBO 야구실행위원장이 구리시장을 만나 야구계의 입장을 전달하며 원만한 사태해결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리에서 구리시장은 “문제 해결에 전향적으로 임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확인됐다.
구리시와 LG 관계자는 “다시 법원에서 맞서는 불행한 장면을 연출하지 않으려고 온힘을 다하고 있다”며 “서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만큼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잠실구장(왼쪽)과 사직구장. 일요신문 DB |
구장 사용을 놓고 지자체와 구단이 갈등을 빚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과거부터 지자체는 “프로야구단이 시 소유 야구장을 지나치게 싸게 이용한다”며 볼멘소릴 냈다. 반면 구단은 “지자체가 야구계 현실을 모른 채 야구장 임대료로 폭리를 취한다”고 반발했다.
대표적인 예가 있다. 지난해 연말 서울시는 “내년부터 잠실구장 사용료를 40% 이상 올리겠다”며 연고지 팀들인 LG와 두산에 “3년간 해마다 구장 사용료로 50억 원 이상을 내야 할 것”이라고 구두 통보했다. 이는 구단 수입이 증가하면 구장 사용료도 올려야 한다는 서울시 의회 조례를 반영한 통보였다.
지난해 서울시에 총 38억 3100만 원의 운동장 사용료를 낸 두 팀은 “해도 해도 너무하다”는 반응 일색이었다. 두 팀 가운데 한 팀의 관계자는 “지난해 홈경기 입장료로 40억 원가량을 벌었다”며 “서울시의 요구는 입장료 수입 가운데 60%를 운동장 사용료로 내라는 소리”라고 강력하게 반발했다.
이 관계자는 “지난해 서울시가 40억 원에 육박하는 운동장 사용료를 챙겼지만, 잠실구장 흙에선 석면이 검출됐다”며 “그 많은 돈을 챙기면서도 운동장 환경 개선엔 소극적인 서울시가 무슨 염치로 또 운동장 사용료를 인상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고 불쾌해했다.
서울시만이 아니다. 지난해 최다 홈관중(135만 8322명)을 기록한 롯데는 사직구장 사용료로 10억 8000만 원을 냈다. LG, 두산에 이어 3위다. 다행히 올해는 구장 사용료가 동결됐다. 인천시도 지난해 연고지팀 SK에게 5억 6200만 원의 구장 사용료를 받았다. 잠실과 사직구장보단 낮지만, 대전과 대구 그리고 광주구장에 비하면 5배나 높은 사용료였다.
하지만 지자체 사이에서 구장 사용료를 놓고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부산시가 가장 적극적인 변화를 꾀하는 중이다. 최근 부산시는 롯데에 구장 사용료를 받지 않는 조건으로 롯데가 기존 구장 사용료 10억 원을 기부금으로 내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부산시 관계자는 “프로스포츠단은 시민의 건전한 여가와 오락을 시 대신 제공하는 측면이 크다”며 “외국만 해도 많은 지자체가 시 소유 구장을 프로스포츠단에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고 말해 구장 사용료의 기부금 전환의 당위성을 설명했다.
만약 부산시의 방안이 현실화한다면 국내 지자체의 프로스포츠관은 획기적으로 바뀔 수 있다. 프로구단이 더는 현금 인출기가 아닌 시민의 여가생활을 책임지는 시의 파트너로 격상하기 때문이다.
#장기임대가 선행돼야
지난해 11월 10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박대해 의원(한나라당)은 지자체별 야구장 임대 현황 자료를 분석했다. 박 의원은 “일부 지자체가 야구장을 공공시설이 아닌 수익용으로 생각하고 있다”며 “이에 대한 적극적인 시정 없이 프로스포츠 발전도 기대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내놨다.
야구계는 박 의원의 지적이 정확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용철 KBS 해설위원은 “클리블랜드 주 정부가 홈 관중 185만 명 미만일 경우 구장 임대료를 받지 않겠다고 약속한 건 프로야구단과 구장을 일반 기업과 시 소유물이 아닌 공공기업과 공공재로 봤기 때문”이라며 “고속도로 건설 시 민간 기업이 예상된 수익보다 낮을 경우 정부가 손실액을 보존해주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설명했다.
부산 동명대 전용배 교수는 “한국 스포츠계도 하루빨리 구장 장기임대 계약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전 교수는 “시는 장기임대로 구장 보수비용을 지출하지 않아도 되고, 구단은 장기임대를 통해 장기적인 수익창출을 고민할 수 있다”며 “그러려면 지자체가 야구장이 시 소유물이 아니라 공공시설이자 지역민의 문화 공간 시설임을 깨달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
싼값 장기임대…‘파트너’ 관계
미 메이저리그에서 지자체와 구단은 파트너 관계다. 지자체는 구단이 오랫동안 연고지에 머물기 바라며 각종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따라서 구장 사용도 연간 단위가 아닌 20~30년씩 장기임대 형식으로 구단에 내준다. 임대료도 무척 싸게 책정한다. 애틀랜타 주 정부는 연고지 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 구장 장기임대 계약을 체결하며 20년간 1550만 달러를 받기로 했다. 연간 77만 달러(8억 6000만 원)밖에 안 되는 돈이었다.
클리블랜드 주 정부는 연고지 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 구장 장기임대 계약을 체결하며 더 획기적인 제안을 냈다. 바로 한 시즌 홈경기 티켓 판매가 185만 장에 미달할 때 임대료를 아예 받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지난해 클리블랜드는 홈경기 유료관중 184만 835명을 기록하며 2년 연속 임대료를 내지 않게 됐다. 일본도 구장 사용료 인하를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프로야구 인기 하락과 수입 감소로 몸살을 앓는 일본야구계는 적자 폭을 줄이려면 지자체의 구장 임대료 인하가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이에 많은 지자체도 야구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임대료 인하에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 알려졌다. [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