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영표를 밴쿠버 화이트캡스의 전지훈련지인 미국 애리조나 카사 그란데에서 만났다. 그는 벌써 소속 팀 선수들과 허물없이 지내고 있었다. 홍순국 사진전문기자 |
―이영표 선수를 미국에서 만나게 되네요. 밴쿠버가 추워서 여기 애리조나로 전지훈련을 오게 된 거죠?
▲그렇죠. 거긴 영상 4~5도를 나타내니까 훈련하기가 힘들어요. 이곳 날씨가 아주 좋네요. 덥지도 춥지도 않아서. 여러 팀을 옮겨 다녀봐서 그런지 화이트캡스가 새로운 팀이지만 아주 낯설지가 않아요. ‘고수’들만 느낄 수 있는 기분이랄까(웃음)? 분위기가 좋아서 훈련하는 게 재미있네요.
―이영표 선수가 화이트캡스에 입단하면서 밴쿠버 한인사회가 들썩거린다는 얘길 들었어요. 교민들 반응이 장난 아니었다면서요?
▲화이트캡스가 지난 시즌 처음으로 1군 무대에 올라섰고 리그 꼴찌로 시즌을 마무리했어요. 그런데도 평균 관중이 2만 명이 넘는대요. 그런데 밴쿠버에 워낙 한국 분들이 많이 살고 계시고, 제가 입단한 후에는 더 많은 분들이 축구장을 찾을 거라고 구단 측에선 기대를 하시더라고요. 팀 분위기가 아주 좋아요. 선수들도 저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었고요. 어떤 방법으로 소식을 접했는지 모르지만, 절 반갑게 맞아주고 뭘 해도 색다르게 봐주니까 살짝 부담도 되고 기분도 좋고 그러네요. 그런데 너무 편해서 걱정되는 부분도 있어요.
―어떤 부분 때문에 그렇죠?
▲적응하는 게 너무 자연스러워진 거예요. 새로운 무대에 대한 긴장감이나 두려움도 없어진 것 같고. 갑자기 열정을 잃은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었어요. 제가 편한 것만을 추구하는 스타일이 아니거든요.
―각국의 리그 경험이 많다 보니 그 차이점에 대해서도 명확한 판단이 서 있을 것 같아요.
▲해외 진출 첫 무대였던 네덜란드는 당시 치열하게 경쟁하고 싸웠지만 가장 축구를 재미있게 했던 것 같아요. 그때는 이기는 경기가 많아서 그 재미에 푹 빠진 나머지 심판이 종료 휘슬을 부는 게 싫었어요. 모든 관중들이 날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정도였죠. 가장 신나게 축구를 했던 시간이었어요. 영국 프리미어리그는 어떻게 하면 가장 빠르게 득점할 수 있는지, 그리고 이기는 축구를 할 수 있는지를 터득하게 해준 무대였습니다. 독일 분데스리가도 짧게 경험했지만 매 경기마다 8만3000명이 가득 찬 경기장에서 축구를 할 수 있다는 행복감을 맛보게 해줬고 사우디아라비아의 알 힐랄은 2년 동안 네 차례의 우승을 경험했는데 그곳 축구팬들의 50%가 알 힐랄 팬이라 원정경기를 가도 마치 홈경기처럼 치렀던 장면들이 기억에 남아 있어요. 어디를 가도 ‘우리 팬’들이 경기장을 가득 메웠던 것이죠.
―팀을 옮길 때마다 선택과 결정을 해야 하는 상황의 반복들이었는데요, 어느 상황이 가장 힘든 결정이었을까요?
▲FC서울에서 네덜란드 에인트호벤으로 이적할 때가 가장 많이 힘들었어요. 아무래도 첫 해외 진출팀이었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을 거예요. 독일 도르트문트와 재계약을 한 상태에서 사우디아라비아로 옮기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죠. 이번에 미국으로 오는 것 또한 오랫동안 고민했던 부분입니다. 어느 팀으로 가느냐보단 은퇴냐 선수생활 지속이냐를 놓고 6개월가량 고민을 했으니까요. 사실 사우디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선수생활보다는 은퇴에 더 무게를 두고 있었어요. 공부를 하고 싶었거든요. 부족한 부분이 너무 많아서 그걸 좀 채우고 싶었는데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제 의견에 반대하더라고요(웃음). 그래서 계속 선수생활을 해가기로 했던 거죠.
―많은 팬들은 이영표 선수가 프로야구의 박찬호, 김병현처럼 K리그로 복귀하길 바랐어요.
▲잘 알고 있습니다. 사실 한국으로 돌아와서 FC서울 선수단에 합류해 훈련을 같이 했거든요. 그때 느낌이 너무 좋았어요. 마음이 따뜻해지고 마구 편해지고…. 에인트호벤으로 진출하기 전에 3년 동안 K리그를 경험했던 부분이 되살아나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그냥 이렇게 정서와 말이 통하는 K리그에서 뛸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FC서울에서도 절 강하게 원했으니까요. 그런데 지금 그렇게 쉽게 가는 방법을 택한다면 내 축구인생의 마지막이 편함만을 추구하다 끝날 것 같았어요. 지금은 좀 더 고생할 시기이지, 편하게 생활하는 건 아니라는 판단이 선 거죠.
―‘이제야 말할 수 있다’식의 질문입니다. AS로마와 계약 직전에 파기한 진짜 이유가 뭔가요? 항간에는 이영표 선수가 자신의 진로를 놓고 기도 중에 신의 응답을 받고 ‘대박’ 계약을 거절한 거란 소문도 있었어요.
▲그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사실이 아니에요. 축구인생에서 중요한 건 ‘어디서’ 하느냐보다는 ‘어떻게’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명성만 갖고 판단하고 싶지 않았고, 고심 끝에 계약서 사인 직전에 방향을 틀게 된 겁니다. 사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 또다시 6개월 후에 AS로마로부터 오퍼가 들어왔어요. 제가 만약 이전에 거절했던 걸 후회했더라면 그때 덥석 오케이를 했었겠죠. 그러나 그때도 정중히 거절하는 걸로 결론 내렸어요. AS로마와 전 인연이 아니었던 겁니다.
▲ 이영표가 팀 훈련 중 중국인 동료 롱탄과 볼 경합을 벌이고 있다. 홍순국 사진전문기자 |
▲누구보다 아내가 다시 떠나고 싶어하지 않았어요. FC서울 훈련장이 있는 구리와 우리 집이 가까우니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조건을 버리고 괜히 미국 가서 고생할 필요가 있느냐고 은근히 부추기더라고요. 어쩌겠어요. 제가 이런 길을 택했는데. 아내한테 제일 미안했어요.
―얼마 전에 안정환 선수가 은퇴 발표를 했어요. 내심 K리그에서 그를 볼 수 있기를 기대했는데, 기자 이전에 개인적으로도 아쉬움이 많이 남아요.
▲저도 그랬어요. 좀 더 뛸 수 있는데, 정환이 형답게 깔끔히 정리를 하시더라고요. 전 정환이 형을 안양공고 시절 아주대와 연습 경기를 하면서 처음 만나게 됐어요. 아주대와 건국대끼리 맞붙었을 때도 그 형 덕분에(?) 처절한 패배를 경험했었고요. 대표팀에서 만나 같이 축구를 하면서 그 형의 기술과 드리블이 너무 예술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뒤에서 형이 뛰는 걸 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올 정도로 예술로 공을 차는 거예요. 아시아권에서 가장 공을 멋지게 차는 축구선수라고 생각했고, 제 우상이었습니다. 그런 형을 더 이상 그라운드에서 볼 수 없다는 게 참으로 안타까워요.
―이영표 선수한테 ‘월드컵’이란 단어는 어떤 의미로 남아 있을까요?
▲전 2002년보다 2010년이 더 인상적이었어요. 2002년에 4강 신화를 이뤘을 때 유럽에서 만난 축구선수들은 한국팀의 성적을 운으로 보더라고요. 그래서 꼭 다시 한 번 그 비슷한 성적을 내야겠다는 오기가 생겼습니다. 그런 점에서 남아공월드컵에서 이룬 한국의 16강 진출은 저한테 마지막 월드컵이자, 원정에서 이룬 최고의 성적이었어요.
―혹시 축구가 너무 힘들고 어려워서 중간에 그만두고 싶었던 적이 있었나요?
▲건국대 2학년 때 이상하게 축구를 하는데 한계점에 다다른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계속 뛰다가는 제 축구 실력이 다 들통 날 것만 같은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당시 정종덕 감독님께 ‘감히’ 휴가를 달라고 부탁드렸었죠. 감독님께서 제 마음을 읽으셨는지, 쉽게 허락을 하시더라고요. 원래는 한 달 정도를 예상했는데, 일주일 정도 지나니까 감독님께서 쉴 만큼 쉬었으면 빨리 나와서 게임이나 뛰라고 전화를 하셨더라고요.
▲ 네덜란드 에인트호벤 시절(왼쪽)과 2010 남아공월드컵 16강 진출이 결정된 뒤 기뻐하는 모습.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연합뉴스 |
▲축구는 11명이 뛰잖아요. 그중에서 제가 좋아하는 선수랑 같이 뛴다는 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일인 거죠. 지성이는 팀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줄 아는 선수예요. 개인의 이익이 아닌 팀을 위해 더 많은 걸 버릴 줄 아는 선수다보니 맨유에서 롱런할 수 있는 겁니다. 일부 축구팬들은 지성이의 능력을 의심하는데 그런 생각 가지시면 절대 안 돼요. 능력과 실력이 없는 선수가 맨유에서 살아남을 수는 없거든요.
―이영표와 박지성 선수의 대표팀 복귀론이 나올 때마다 어떤 생각이 들어요?
▲선수가 은퇴를 결심하는 건 몇 년 동안 많은 고심 끝에 결정한 부분이거든요. 흔히 대표팀이 위기라고 말하면서 저랑 지성이를 거론하시는데, 위기일수록 좋은 선수가 나오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전 대표팀이 위기라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대표팀의 시스템이 문제인 거죠. 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대표팀 은퇴를 후회해 본 적도 없고, 대표팀이 부른다고 해서 다시 복귀할 생각도 없어요. 더 이상 저를 비롯해서 지성이 이름도 거론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서로 미안하고 불편해지니까요.
―아끼는 후배니까 사적인 질문을 해볼게요. 박지성 선수의 결혼설, 열애설이 자꾸 나오는 이유가 뭘까요?
▲결혼을 안 했으니까 그렇죠(웃음). 지성이도 빨리 결혼해야죠. 그래야 기자분들도 마음 편히 쉬시죠(웃음). 이전에 지성이 아버님이 지성이한테 제 와이프 같은 여자를 만나야 한다고 말씀하셨거든요. 그런데 세상에 와이프 같은 여자는 단 한 명밖에 없는 터라 심히 걱정되기도 합니다.
이영표와 인터뷰를 진행하는데 미디어 담당자가 지켜보다가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유를 물었더니, 약속된 인터뷰 시간이 지난 데다가 곧 저녁도 먹어야 하고 선수가 힘들어 할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 얘기를 듣고 있던 이영표가 오히려 ‘괜찮다’고 말하면서 인터뷰를 이어나갔다. 화이트캡스는 대부분 나이 어린 선수들로 구성돼 있고 이영표처럼 프로필이 화려한 선수가 거의 없다 보니 훈련할 때 많은 선수들이 이영표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는 장면을 자주 목격할 수 있었다. 이영표가 공을 잡고 드리블만 해도 여기저기서 감탄사를 연발할 만큼 이영표를 ‘우상화’하는 모습이었다. 그들한테는 ‘대스타’나 다름없는 이영표가 고개를 숙이고 손을 먼저 내밀며 친절한 미소를 짓는 부분들이 굉장한 친근함으로 전달되는 모양이다. 인터뷰를 하고 있는데도 지나가는 선수들마다 ‘LEE’를 외치며 장난을 걸어왔다.
인터뷰 내내 이영표의 현란한 말솜씨에 푹 빠져 있던 기자에게 이영표가 이런 메시지를 전한다.
“축구를 좋아하는 분들은 많지만 재미있게 즐길 줄 아는 분들은 많지 않은 것 같아요. 축구가 재미있는 이유는 항상 질 수 있다는 가능성으로 인해 우리를 흥분시키고 긴장시키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거든요. 이겼을 때 기분 좋은 건 당연한 일이죠. 그런데 더 중요한 부분은 졌을 때 그 현실을 어떻게 승화시키느냐 하는 점이에요. 선수들도 열심히 해야 하지만, 축구팬들도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있는 올림픽대표팀과 축구대표팀에 따뜻한 격려와 응원의 시선을 보내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미국 애리조나=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