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협위원장 물갈이 장악력 굳히기 나서, ‘복심’ 한동훈 조기 등판 가능성…“외연 확대 필요” 반대론도
윤석열 대통령이 이제는 심리적 거리도 대폭 좁히려는 모양새다. 2024년 총선 승리가 진정한 정권교체라고 생각하는 윤 대통령이 스킨십 강화를 통해 집권여당과 대통령실의 원팀 구축에 나서는 모습이 목격된다. 집권여당 내부에서는 전국 당협위원회 정비 작업이 원팀을 위한 사전정지작업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하지만 ‘윤석열 당’은 총선 필패라는 기류도 만만치 않다.
#윤석열 “우리는 동지들”
“윤석열” “윤석열” “윤석열”
10월 1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인근 국방컨벤션센터에서는 대통령의 이름이 세 번이나 연호됐다. 이날 행사는 국민의힘 원외 당협위원장과 당 지도부 등 100여 명을 윤 대통령이 초청해 마련된 오찬이었다. 원외 당협위원장 대표로 축사한 나경원 전 의원이 “대통령”이라고 외치며 분위기를 띄우자, 원외 당협위원장들이 “윤석열” 이름을 세 번씩이나 연거푸 연호하며 화답한 장면이었다.
참석자들이 윤 대통령을 한껏 띄우며 ‘원팀’ 분위기를 만든 가운데, 윤 대통령 역시 참석자들과 눈높이 맞추려는 시도를 적극적으로 폈다. 윤 대통령은 원외 당협위원장들에게 “동지들”이라고 불렀다고 이날 행사에 참석한 복수의 원외 당협위원장들이 전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대선 과정에서 노고에 대해 뒤늦은 감사의 뜻을 표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너무 반갑고 또 잘해줘서 고맙다. 여러분들 고생한 것 내가 안다. 이런 자리가 늦어졌다”고 말했다. 이어 윤 대통령은 이날 행사가 일회성은 아니라는 점도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이런 날은 소주도 한잔하면서 해야 하는데 상황이 이래서 간단히 점심으로 해서 미안하다. 지금은 짧게 뵙지만, 다음엔 여유 있게 저녁으로 모셔서 소주잔도 한잔 기울였으면 좋겠다”며 다시 자리를 마련하겠다는 뜻도 내놨다.
윤 대통령은 모든 테이블을 돌며 원외 당협위원장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인사를 했다. 식사 후에는 원외 당협위원장들과 각각의 기념사진을 찍기도 했다. 기념사진 촬영에 걸린 시간만 무려 30분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분초 단위로 쪼개지는 대통령 일정을 감안하면 이례적이다. 현직 대통령과의 사진 한 컷을 확보하기 위한 위원장들의 노력인 동시에, 윤 대통령 역시 이런 위원장들의 바람을 적극 수용하는 자세를 보여준 것으로 읽혔다.
이날 오찬 행사에 동석한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비어 있는 68개의 당협위원회를 채우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진석 비대위원장은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이른바 사고당협 68곳을 채우지 않고 전대를 치를 수는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조직 재정비가 명목상으로는 총선 승리를 위한 인적 경쟁력 조기 확보지만, ‘친윤’ 체제 구축을 위한 물갈이 시도라는 지적도 정면으로 맞닥뜨리고 있다. 조직 재정비 작업이 차기 당권 경쟁은 물론, 내후년 총선 공천에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10월 말 기준 국민의힘 전국 당협 253곳 중 당협위원장이 공석인 사고당협은 68곳에 이른다. 정 비대위원장 구상대로라면 국정감사가 끝나는 대로 사고당협의 위원장 선출을 위한 조직강화특별위원회(조강특위)가 가동될 전망이다. 이르면 내년 1월 전후로 새 위원장 인선이 가능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11월 초 시작될 당무감사에서 부정행위가 적발되는 당협위원장의 교체도 가능하다. 결국 사고당협을 채우고, 당무감사를 통한 인적 교체마저 이뤄진다면 ‘물갈이’ 규모가 100여 곳에 이를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이 과정에서 이준석 전 대표와 가까운 ‘비윤계’ 인사들은 배제되는 한편, 친윤계가 자리를 대체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한동훈 동원령까지?
당대표 선거를 코앞에 두고 당협 재정비를 통해 친윤계가 당에 대한 장악력을 높이려는 시도가 감지되면서 당권주자들과의 충돌이 불거지고 있다. 이른바 ‘친윤’ 정진석 비대위원장이 당권주자로 부상할 가능성도 있는 상황에서 특정 세력의 당권 장악 시도는 시비를 부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실제 일부 당권주자는 당협 재정비에 강한 견제구를 날리고 있다. 전당대회 출마가 거론되는 윤상현 의원은 자신의 SNS(소셜미디어)를 통해 “가처분 문제가 해소되자마자 마치 평온하고 정상적인 지도부인 듯이 당협 줄 세우기에 들어간 모양새”라며 당협 재정비 시도를 비판했다.
정치권에서는 여러 방법을 써도 견제구 난무로 인해 ‘윤심’이 집권여당에 적극적으로 투영되기 어려워진다면, 복심을 당 내부에 전격 투입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윤 대통령의 최측근이라 할 수 있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정치권 조기 진입설이다. 한동훈 장관이 만약 정치권에 투입된다면 그의 행보는 모든 단계를 뛰어넘고 당대표 선거로 직행하는 ‘전격전’, 법무부 장관으로서 무게감을 착실하게 쌓은 뒤 2024년 총선에 도전하는 ‘진지전’ 두 갈래 길로 나눠진다.
전격전이 된다면 한 장관은 국민의힘의 신예 간판이 돼 당대표에 도전하는 그림이 그려질 것으로 보인다. 보수진영에선 젊은 데다 다재다능한 면모, 게다가 야당의 거센 질타에 전혀 굴하지 않는 강골의 모습을 보여 온 한 장관의 등판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게다가 한 장관은 이미 팬덤층도 형성해 대중적 지지도 획득하면서, 당심이 아닌 일반 여론조사에서도 절대 밀리지 않는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 장관의 발언을 모은 책이 출간된다는 소식은 팬덤층 존재를 반영하는 것으로 읽힌다.
출판사 투나미스는 홈페이지를 통해 10월 15일부터 한 장관의 발언 등을 모은 책 ‘한동훈 스피치’를 출간하기 위한 크라우드 펀딩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출판사는 한 장관의 취임식 영상 조회수가 역대 장관 조회수를 합친 것보다 더 많고, 한때 대선주자 대열에까지 합류하는 등 이른바 ‘한동훈 신드롬’ 현상이 나타난 점을 프로젝트 추진의 배경으로 꼽았다.
한동훈 장관이 대중적 관심을 모으는 것은 맞지만, 그가 당대표라는 자리를 노리고 조기 등판하기 위해서는 물리적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는 반론도 나온다. 최대한 조기에 장관직을 내려놓아야 하는데, 현재 정치권 상황이 녹록지 않다는 것이다. 더욱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최측근 김용 민주연구원 부원장에 대한 검찰의 강제수사로 인해 제1야당 민주당이 사실상 전면전을 선언한 상황에서, 한 장관이 자리를 비우기가 어려워진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그렇다면 오는 2024년 총선 때 여권 성향 표가 많은 서울의 주요 지역구에 국회의원을 도전할 가능성이 커진다. 이를 통해 당에 들어온 뒤 대통령실과 당을 연결하는 역할을 할 가능성이 크다. 한 장관이 원내로 들어오면 윤 대통령의 복심으로서 당내 세력을 결집시키는 키맨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진지전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수도권을 파고들기 위한 신선한 바람”(조수진 의원), “정치권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는 데 도움”(김재원 전 최고위원),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40% 이상이면 출마 가능성 높다”(유상범 의원), “치어리더 같은 분이 나와서 선거 분위기를 확 이끌 것”(최형두 의원) 등 발언이 최근 당내에서 쏟아졌다.
한동훈 장관 내정 발표 당시 “오보인 줄 알았다”고 한 장관을 깎아내렸던 정치 원로 이재오 국민의힘 상임고문도 한 장관의 ‘위력’을 인정했다. 그는 10월 18일 MBC ‘뉴스외전’에 출연해 “내가 볼 땐 무조건 (총선에) 나갈 것”이라며 “본인이 안 나간다고 하더라도 당에서 내보낼 것”이라고 내다봤다.
#‘원팀’ 경로는 비포장 도로?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과 달리 확실한 지역적 지지 기반이 없는 데다 정치경력이 짧은 윤 대통령으로서는 친윤 일색의 원팀형 단일 유니폼보다는, 거꾸로 역진하는 편이 낫다는 주장도 나온다. 오히려 다양성을 더 가져가면서 윤 대통령이 화합형 리더십을 보여주는 것이 원활한 국정 운영을 불러오고 총선 승리도 이뤄낼 것이라는 ‘원팀 반대론’이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10월 19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친윤이 당대표가 돼서 총선이 뜻대로 되지 않을 것 같으면 그 다음에 정치적인 상황이라는 것은 우리가 이미 다 예측할 수 있지 않겠나”라며 “단순히 ‘이 사람이 내 편이다’해서 (당대표가 되길 바라는 건 안 된다)”라고 충고했다.
지난 대선에서 윤 대통령을 공개 지지한 것은 물론, 윤 대통령과 매우 가까운 사이인 신평 변호사 역시 10월 18일 자신의 SNS에 김종인 전 위원장과 만난 사실을 공개하면서 “중도층 표를 다수 끌어올 인물이 당대표가 돼야 한다”며 김 전 위원장과 견해가 일치했다고 밝혔다.
최근 윤 대통령을 향해 거침없이 쓴소리를 쏟아내며 차기 전대 출마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은 10월 17일 MBC ‘뉴스외전’에 출연해, 차기 당대표를 선출할 전당대회와 관련 “민심과 윤심의 대결로 가면 총선에서 국민의 외면을 받는 길”이라며 “다음 당대표의 사명은 총선 승리다. 민심에서 거부당하는, 민심과 거리 있는 당대표가 대표 되면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나”라고 되물었다.
이 연장선에서 당내에서는 9월 19일 치러진 국민의힘 원내대표 경선 결과를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경고도 나온다. 친윤이 미는 것으로 예측된 5선 중진 주호영 의원이 과반을 간신히 넘긴 61표를 얻는 데 그친 반면, 재선 이용호 의원이 예상을 뒤엎고 42표나 얻는 이변을 일으켰던 것이다.
국민의힘 한 다선 의원은 “대통령제지만 입법권이 센 한국의 정치구도에서 대통령은 강력한 입법 뒷받침을 원하기에 집권여당에 대한 장악력을 갖고 싶어 한다”며 “이른바 원팀 이론인데 2024년 총선 승리 전략과 직결돼 있기에 원팀 전략은 물론, 다른 선택지들도 함께 놓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최경철 매일신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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