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북도 충주시 소태면의 넓은 농장 이곳에 천방지축 뛰어노는 소들이 있다. 거구의 몸으로 강아지처럼 농장을 뛰어다니며 풀을 뜯는 두 마리의 소는 순심이(11살)와 효리(6살). 둘은 모녀지간이다.
순심이와 효리를 애정 어린 손길로 쓰다듬는 엄수정 씨, 그녀는 어쩌다 소들과 가족이 되었을까. 수정 씨의 특별한 가족은 소뿐만이 아니다. 말과 견공, 다양한 동물들은 물론 법으로 묶여있지도 혈연으로 이루어지지도 않은 사람들과도 함께 살고 있다.
'공동체'라는 이름의 또 다른 가족이다. 수정 씨는 다양한 개체가 모여 가족의 이름으로 사는 이곳에서 같이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고 있다.
2010년 구제역 확산 당시 많은 동물이 무차별적으로 몰살되는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은 수정 씨는 버려질 예정이거나 이미 버려진 동물들을 농장에 데리고 왔다. 애견을 키워본 적도 없고 동물에 아무 관심이 없던 수정 씨에게는 큰 변화이자 용기였다.
적어도 내 농장에 들어온 동물들만큼은 인간으로부터 더 이상 위협을 받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생을 다할 수 있도록, 안전한 울타리를 만들어주고 싶다는 엄수정 씨. 소들도 이러한 수정 씨의 마음을 아는지 그녀의 곁에서 묵묵히 고마움을 전한다.
"너무 큰 얼굴과 뿔을 가지고 저한테 다가오니까 처음에는 놀랐는데 제 품에 안겨서 얼굴을 비빌 때, 저에게 고맙다고 말하는 게 느껴졌어요."
어머니가 돌아가시며 남긴 농장을 그대로 둘 수 없어서 유학도, 도시의 삶도 포기하고 자연에서의 삶을 선택한 수정 씨. 그녀는 어머니가 살아생전 왜 그렇게 시골에서 텃밭을 가꾸고 나물을 캐는 일을 좋아하셨는지 이해하고 싶었다.
작은 벌레에도 기겁하던 수정 씨였지만, 텃밭을 가꾸면서 자연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텃밭에 놀러 온 개구리나 곤충을 보며 이름이 무엇인지, 어디서 왔는지 궁금해졌고 그들과 마음의 대화를 나누다 보니 자연스레 그 존재들을 해치지 않을 방법을 고민했다.
나아가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농사를 지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농사는 그녀에게 큰 의미로 다가왔다.
농사를 지으며 비로소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알았다는 수정 씨. 본인이 먹을 것을 직접 키우는 과정에서 오는 정성과 사랑을 다시 본인에게 돌리기 때문에 농사가 진정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란다. 그녀는 오늘도 직접 키운 작물을 요리해 먹으며 '자기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동물들이 자유롭게 사는 모습을 보며 누군가의 기쁨을 보는 것 또한 좋은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 엄수정 씨에게는 한 가지 바람이 있다. 함께 살아가는 이 공간에서만큼은 모든 존재가 어떠한 틀에도 맞추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해주고 존중하며 서로 사랑하는 것.
동물이 사람에게 바라는 게 딱히 없는 것처럼 수정 씨도 이곳에서 동물들에게 바라는 것 없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하며 살아간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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