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승연 회장. 일요신문 DB |
보통 코스닥기업의 경우 횡령혐의만 확인돼도 상장폐지 심사 대상이 된다. 그런데 (주)한화 같은 대기업의 공개된 횡령혐의 확인에도 불구하고 거래소는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다가 늑장공시를 보고서야 사실을 확인했다.
(주)한화 측의 대응도 교묘하다. 첫 횡령혐의 확인이 이뤄진 2011년 2월보다 이후에 거래소의 상장폐지 실질심사 기준이 강화돼 미처 몰랐다는 설명이다. 이와 관련, 경제개혁연대에서는 김 회장이 (주)한화 주식을 담보로 1230억여 원을 대출받았는데 만기일인 2월 8일 전에 횡령 문제가 불거져 담보가치가 떨어지는 점을 우려해 늑장공시를 했다는 의혹도 제기한 상태다.
이 같은 (주)한화의 대응에는 늑장공시로 처벌받아 봐야 ‘솜방망이’란 계산이 깔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 거래소 규정을 보면 (주)한화가 속한 유가증권시장에서는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돼 부과 받은 벌점이 5점 이상인 경우 하루 동안 거래정지 된다. 겨우 하루다. 거래소 측이 예고한 벌점은 6점이지만, 실제 부과되는 벌점은 이보다 작을 수도 있다.
▲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과 경제개혁연대 회원들이 지난 7일 여의도 한국거래소 서울사옥 앞에서 한화를 상장폐지 실질심사 대상에서 제외한 것은 재벌에 대한 특혜라고 비판하고 있다. 연합뉴스 |
그런데 문제는 2일 구형, 3일 공시에 이어 4일 경영개선안 제출 등 마치 예상한 듯한 행보를 보였다는 점이다. 한화 측과 거래소 측이 사전에 충분한 교감을 가진 게 아니냐는 의심을 자아내는 대목이다. 한화 측이 내놓은 경영개선추진사항이라는 것도 형식적인 내용이 대부분이라는 평가다.
한화 계열인 한화증권과 푸르덴셜증권이 한국거래소 최대주주(두 회사 지분율 합계 5.84%)인 점과, 한화그룹의 시장 내 위상 등을 감안할 때 의혹 제기 가능성이 충분하다. 거래소가 공공기관인 탓에 한화 측의 직접적인 압력행사가 어렵다 하더라도, 국내 10대 재벌이 가진 무형의 영향력을 감안할 때 ‘압력’ 행사의 여지를 완전 배제할 수 없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상장폐지 여부의 신속한 심사에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했을 수도 있다”고 추론했다.
코스닥 업체의 한 재무담당 임원은 “만약 코스닥 업체가 비슷한 경우였다면 며칠 동안 거래소에 시달렸을 것이다. 상장기업의 생사여탈권을 쥔 거래소가 이처럼 형평성에 어긋나는 행동을 해서야 독립성과 객관성을 인정받을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하며 “당장 올 봄, 12월 결산법인 감사보고서가 나올 때 또다시 상장폐지 실질심사가 이뤄질 텐데 그 결과에 대한 반발을 어떻게 할 것인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감추지 않았다.
현재 한국거래소는 회사 규모별로 상장폐지실질심사 기준을 차등화하고, 경영진의 횡령 배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새로운 기준을 만들고 있다. 아울러 횡령이나 배임 등 기업관련 사건에 대해서는 검찰 기소와 함께 거래소에 통보가 이뤄지는 시스템 구축방안도 검토 중이다.
최열희 언론인
검풍 몰아쳐도 기업은 쌩쌩
요즘 증시에서 ‘검풍’(檢風)에 휩싸인 SK그룹과 한화그룹의 닮은꼴이 화제다. 첫 상황은 199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30대 그룹 총수 가운데 사상 최초로 검찰에 구속된다. 외환관리법 위반이다. 1995년 김 회장은 사면된다. 김 회장은 2007년 ‘보복폭행’ 혐의로 구속됐지만 ‘부정’(父情)이 정상참작돼 선처를 받았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2003년 SK글로벌 분식회계 사태로 배임혐의가 입증돼 구속, 3년 형을 선고받았고 2008년 사면 복권된다. 2010년 사촌인 최철원 전 M&M 대표의 ‘맷값 폭행’ 사건이 터진다. 최 회장이나 회사와는 관련 없는 일이지만 2007년 김승연 회장의 보복폭행 사건을 새삼 떠올리게 하며 SK그룹에 적잖은 부담을 안겼다. 2011년 불거진 선물투자 관련 횡령 사건은 최 회장에게 불어 닥친 회사 관련 두 번째 검풍이다.
한화그룹은 잇단 인수·합병(M&A)으로 덩치를 불렸고, 2002년 말 생명보험업계 ‘빅3’ 가운데 하나인 대한생명을 인수, 규모를 두 배로 불렸다. SK그룹도 1980년 11월 대한석유공사(현 SK에너지)를 인수해 그룹 외형이 급성장한다. 1994년에는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을 인수해 석유화학과 통신부문에서 국내 1위의 기반을 다진다. 한화그룹의 주력은 금융(생명보험), 화학(케미칼), 레저(유통 등)이다. SK그룹은 통신, 정유다.
두 그룹 다 주력은 진입장벽이 높은 과점 내수시장이다. 총수가 몇 달쯤 자리를 비운다고 당장 어찌될 그런 사업도 아니다. 실제 분식회계 규모가 컸던 SK글로벌 사태를 빼면 SK그룹 주가가 총수의 횡령 또는 배임의혹으로 크게 움직인 경우는 없다. (주)한화 주가는 2월 6일 하루 급락한 것을 제외하고는 이후 줄곧 초강세를 이어가며 5주 연속 상승세다. [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