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진출 이후 방황했지만 내겐 뿌듯했던 시간…강원 FC 성적에 자부심 느껴”
20년의 시간, 그 중간 지점에는 또 하나의 큰 사건이 있었다. 2012 런던 올림픽에서 대표팀이 동메달을 따냈다. 올림픽이라는 대회에서 한국 축구가 일군 최상의 결과였다. 동메달 이후 10년, 모든 선수가 현역에서 물러난 20년 전의 월드컵 대표팀과 달리 올림픽 동메달리스트들은 여전히 그라운드 위를 달리고 있다. 10년 전 올림픽 동메달의 주역, 강원 FC 소속 윤석영을 만나 당시 이야기를 들어봤다.
#월드컵 4강 이후 최고 성과
윤석영은 올림픽에 앞서 월드컵을 먼저 언급했다. "한일 월드컵이 벌써 20년이 됐다. 당연히 축하할 일이지만 올림픽 동메달도 조금은 언급이 됐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벌써 10년이 지났다니 놀랍다"며 웃었다.
역대 최고의 성과를 거둔 올림픽 대표팀, 윤석영은 대회 이전에는 불안한 마음이 컸다고 말한다. 그는 "대회를 앞두고 부상자가 계속해서 나왔다. 홍정호, 장현수, 한국영 등이 연속적으로 팀을 떠났다. 오랫동안 손발을 맞춘 동료가 빠졌기에 팀 분위기도 가라앉고 전력 또한 약해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당시 23명의 선수단이 구성되던 월드컵과 달리 올림픽 엔트리는 18명이었다. 윤석영은 엔트리 선발 경쟁만으로도 스트레스가 적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대회 전 친선전을 치르는데 국내파 위주로 팀이 꾸려졌다. 20명 이상이 소집됐는데 그때 선수들끼리 본선에 참가할 선수들을 꼽아봤다. (구)자철이 형 같은 해외에서 뛰는 선수들이 들어오고 와일드카드 형들이 들어온다고 가정하면 20여 명의 선수 중 본선에 갈 수 있는 선수는 단 2명뿐이더라. 결과적으로 당시 팀에서 그보단 많은 인원이 선발됐지만 그만큼 올림픽 본선에 가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홍명보 감독이 이끌었던 올림픽 대표팀은 조별리그에서 멕시코, 스위스, 가봉을 만나 토너먼트로 진출했다. 8강에서는 영국을 상대로 승부차기 끝에 극적으로 준결승에 올랐다. 비록 브라질에 패했지만 3, 4위전에서 숙적 일본에 승리를 거두며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역시나 윤석영의 머릿속에 가장 강렬한 기억은 마지막 한일전이었다.
"경기를 앞두고 일본 대표팀을 분석했는데 너무나도 경기력이 좋았다. 우리도 강한 팀이었지만 일본의 기세가 너무 좋았다. 결국 홍명보 감독님이 기존 우리 플레이 스타일을 좀 내려놓고 과거의 한국스러운 플레이를 하자고 주문하셨다. 그러면서 그 유명한 '공중볼 뜨면 부숴버려'라는 말씀도 하셨다(웃음). 평소 그런 과격한 표현을 하시는 분이 아니다. 자연스레 선수들도 전쟁터를 나가는 심정으로 준비했다."
치열했던 한일전은 축구선수 윤석영 개인에게도 전환점이 됐다. 그는 "이전까지 '너무 공을 예쁘게 차려고만 한다, 몸 사린다'는 평가를 많이 받았었다"며 "한일전을 치르며 이후부터 그런 부분을 보완하게 됐다"고 말했다.
2012 런던 올림픽은 스포츠 다큐멘터리로도 주목을 받았다. 대회를 준비하는 예선 과정에서 홍명보 감독이 화를 내는 모습 등 라커룸 내부까지 속속들이 카메라가 따라다니며 다큐멘터리 '공간과 압박'이 제작, 방영됐고 큰 호응이 이어졌다. 당시 스포츠팀의 내부 사정까지 공개되는 방송은 많지 않았다. 윤석영은 당시를 떠올리며 "처음엔 정말 어색했다. 요즘은 그런 다큐 촬영이 많지만 그때는 생소했다. '이래도 되나?'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면서 "결국 나중엔 익숙해졌다. 촬영팀이 마치 팀 스태프처럼 한 팀이 된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동메달과 이어진 축제
대한민국의 최초 올림픽 축구 동메달 획득 과정에서 윤석영은 큰 역할을 했다. 올림픽 본선 6경기에서 모두 풀타임을 소화했다. 수비적 단단함은 물론 공격적으로도 상대 진영을 헤집어놨다. 단숨에 한국축구에서 가장 주목받는 선수로 떠올랐다.
"그런 큰 사랑을 받는 느낌이 처음이었다. 귀국길부터 달랐다. 공항에 너무 많은 팬이 몰려 1층을 다 채우고 위층까지 꽉 찼다. 돌아와서 리그 경기를 치르는데도 메달 획득 축하 행사 같은 것들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때론 피곤하기도 했지만 행복한 시간이었다. 올림픽 멤버들이 대거 참여했던 연말 '홍명보 자선축구경기'도 기억에 남는다. 그때 잠시만큼은 인기가 괜찮았다. 지금 우리 팀 스타인 김대원, 양현준은 더 열심히 해야 한다(웃음)."
당시 K리그에서 활약하던 윤석영은 연말 시상식에서 축하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K리그 선수를 대표해 당시 인기 아이돌과 공연에 나선 것이다. 그는 "지우고 싶은 기억이다(웃음). 시상식 일주일 전 한국프로축구연맹에서 제안이 왔다. '절대 못 한다'고 사양했는데 설득에 넘어갔다. '노래를 듣고 싶은 선수'와 같은 설문 조사에서 1등을 했다고 하더라. 일주일 사이 함께 무대에 올라갈 가수도 계속 바뀌고 곡도 계속 바뀌었다. 무대에서 노래할 땐 가사도 헷갈리고 정신이 없었다. 결론은 하나였다. '축구가 가장 쉽구나'"며 웃었다.
올림픽 동메달을 목에 건 이후 이어진 겨울에는 해외무대를 밟았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퀸즈파크레인저스(QPR) 유니폼을 입었다. 당시 QPR은 박지성이 주장을 맡던 팀이었다. 연령별 대표를 넘어 A대표팀에도 이름을 올렸다.
#갑작스레 겪은 성장통
하지만 이후 윤석영의 활약상과 성장세는 팬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스스로도 당시를 돌아보며 "냉정하게 봤을 때 나의 해외 생활은 성공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축구를 하면서 가장 어려운 시기였다. QPR은 내가 가고 싶은 팀이 아니었다. 포지션 경쟁도 치열했고 이미 강등권에 있던 팀이었다. 하지만 당시 소속팀이던 전남 구단에서는 QPR 아니면 안 보내주겠다고 했다. '안 가면 임의탈퇴 하겠다'는 말도 들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너무 가고 싶지 않아서 영국으로 넘어가고 나서도 사인하기 전까지 QPR에서 제공해준 호텔에서 도망을 나올 정도였다."
그의 예상대로 QPR 생활은 순탄치 못했다. 당시 감독은 윤석영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았고 출전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다. 결국 윤석영 합류 시즌 팀은 2부리그로 강등이 됐다. 그는 '축구를 그만두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마음이 너무 힘들었다. 나의 선택이 아닌 결정으로 어려운 상황에 놓이니 견디기 어려웠다. 때로는 분노가 올라오기도 했다. 당시는 어린 나이이기도 했다. QPR과의 계약이 끝나면 선수 생활을 마치려 했다. 영어공부 열심히 해서 다른 분야의 일을 하려고 했다. 자연스레 훈련도 대충했다."
하지만 계약 기간 3년 반은 긴 시간이었다. 윤석영은 "포기하는 마음에 훈련에도 집중하지 못하는 시간이 이어지다 갑자기 정신이 들었다. 또 다른 한국인 선수가 이 무대에 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나쁜 선례를 남길 수는 없다는 생각에 다시 훈련에 열중했다"며 "결국 2부리그에 있던 시즌 말미에 기회를 받기 시작했고 승격 이후 주전급으로 뛰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영국 생활에 대해 '실패한 해외 생활'이라는 평가가 뒤따른다. 그럼에도 나 자신은 굉장히 뿌듯했던 시간들이었다"고 덧붙였다.
이적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은 윤석영은 현재 한국프로축구선수협회(KPFA) 이사로 활동 중이다. 선수협은 일종의 로컬룰인 '임의탈퇴' 제도를 폐지하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그는 "선수협회의 필요성을 잘 알고 있기에 자연스레 활동하게 됐다. 싸우는 단체가 아니라 리그와 선수들이 상생하기 위해 존재하는 단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굴곡진 해외 커리어가 이어지며 대표팀에서도 멀어지기 시작했다. 올림픽 2년 뒤 열린 2014 브라질 월드컵에 나섰으나 만족스러운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후에는 좀처럼 A대표팀에 선발되지 못했다.
"결국 방황의 시기가 길어진 것이 문제였던 것 같다. 대표팀에서 발전된 모습을 보여드렸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당시 월드컵을 준비하면서 '논란의 선수'가 되기도 했다. 소속팀에서 상황도 안 좋았고 부상을 안고 있기도 했다. 팬들에게 죄송한 마음뿐이다."
올림픽 동메달을 획득하고 월드컵 무대까지 경험한 그는 현재 월드컵 본선을 앞둔 대표팀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윤석영은 "이번 선수 구성이 굉장히 좋다고 생각한다. 부정적 시각도 있고 불안요소도 있지만 충분히 가능성 있다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그는 대표팀 선수 중 특별히 자신과 포지션이 같은 김진수를 언급하기도 했다. "진수는 정말 잘하는 선수다. 그동안 아픔도 있었는데 이번 대회에서 부디 부상 예방 잘했으면 좋겠다"며 "16강 이상 성적 거두길 바란다"고 했다.
그는 현 대표팀 사령탑인 파울루 벤투 감독 체제를 경험하기도 했다. 벤투 감독 부임 이후 첫 대표팀 소집에서 선발돼 친선전에 출전했다. "현재 선수들이 벤투 감독을 많이 신뢰하는 것이 느껴진다. 외부 목소리보다 내부에서의 결속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선수들이 감독을 신뢰한다는 것은 건강한 팀이라고 본다. 나 또한 벤투 감독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다만 이강인을 써보지 않은 것은 개인적으로 아쉽다"는 농담을 더했다.
#강원 FC에서의 자부심
올림픽 동메달리스트 윤석영은 10년 전 동메달을 목에 걸게 해준 일본과의 올림픽 3, 4위전을 포함해 자신의 '인생 경기'가 3개 있다고 전했다. 나머지 2경기는 모두 현 소속팀인 강원 FC에서 치른 경기였다.
"2019년 0-4로 지고 있다가 뒤집은 경기와 지난해 승강플레이오프 2차전이다. 모두 지고 있다가 극적으로 역전한 경기들이다. 정말 팀이 하나로 뭉쳐 포기하지 않았기에 얻을 수 있는 결과였다. 당시 경기장 위에 모든 선수가 죽어라 뛰었다."
최종 6위로 마무리한 이번 시즌 강원의 성적 또한 윤석영에게는 자부심이다.
"시즌이 시작될 때 우리가 강등될 것이라는 평가도 있었다. 그런 평가에 연연하지 않고 우리가 세운 1차 목표가 6위 이내였다. 그런 목표를 달성했고 더 높은 곳에 도전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쉽게 달성한 결과가 아니다. 시즌 초반 팀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어려움이 있었지만 결국 이겨냈다. 또 많은 것을 배운 시즌이다."
그는 강원 팬들에 대한 감사함도 전했다. "정승용이나 한국영 등 구단에서 오래 뛴 선수들은 '강원 팬들이 정말 좋다'고 말한다. 실제 경험해보니 정말 우리가 어려울 때도 절대적인 응원을 해주신다. 항상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10년 전 스태미너 넘치는 모습으로 올림픽 메달을 따내던 선수들은 현재 소속팀을 이끄는 베테랑이 됐다. 윤석영은 "돌아보니 어느덧 팀 내 고참 선수가 돼 있더라"라며 "'그만할 때 됐다'는 소리는 듣고 싶지 않다. 은퇴하는 순간까지 '필요한 선수'라는 평가를 받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려면 또 다음 시즌 준비를 위해 움직여야 한다. 겨울 동안 잘 준비해서 건강한 모습으로 2023시즌에 뵙겠다"고 덧붙였다.
강릉=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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