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민 세력전이설·홍준표 조기등판설 솔솔…윤 대통령 ‘직진’ 고수 땐 국민 피로감 커져
대통령실은 리더십 훼손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과감한 경질 인사를 하지 않으면서 직진 작전을 통해 정치적 책임을 최소화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역효과가 만만치 않다. 야당의 반발에다 일부 보수언론까지 돌아서는 역풍을 부르며 과연 불을 끄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물음표가 따라붙고 있다.
#휘청거린 여권, 유승민에게 기회 올까
‘여권 내 야당’을 자처해온 유승민 국민의힘 전 의원은 이태원 참사 이후 그 강도를 더 높이고 있다. 유 전 의원은 11월 10일 페이스북 글을 통해 현재 진행되고 있는 광범위한 수사와 관련해 윤 대통령을 겨냥 “용산경찰서가 잘못한 부분에 대해선 응당한 책임을 물어야 하나 이걸로 꼬리를 자르고, 일선에서 사력을 다해 뛴 경찰관들과 소방관들에게까지 책임을 떠넘긴다면 과연 어느 국민이 납득하겠냐”고 질타했다.
유 전 의원은 11월 8일에도 페이스북 글에서 윤 대통령이 주재한 이태원 참사 관련 회의에서 경찰에 대해 질책성 발언을 쏟아낸 것을 두고 “법률적으로는 맞는지 몰라도 인간적, 윤리적, 국가적으로는 잘못된 말” “대통령의 말씀은 검사의 언어, 검사의 생각”이라면서 윤 대통령을 맹폭했다.
유 전 의원은 10월 31일에는 국민 안전 주무부처 장관이자 부적절한 말로 물의를 빚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해 파면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고, 11월 2일 외신 기자회견에서 농담을 해 논란을 만들어낸 한덕수 국무총리를 겨냥해서도 경질해야 한다는 취지의 의견을 보이면서 “저런 사람이 총리라니”라고 직격했다. 유 전 의원은 11월 2일 건국대학교에서 강의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서는 윤 대통령의 즉각적 사과를 촉구하면서 공개적으로 윤 대통령 책임론을 거론했다.
이태원 참사 이전만 해도 유 전 의원이 쓴소리를 하면 “또 하는구나” 정도로 평가절하하던 여권 내부는 최근엔 조금씩 술렁이는 모습이 목격된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유 전 의원의 지지율이 꾸준히 높게 나오는 상황에서 이태원 참사로 인해 여권에 고강도 위기가 찾아왔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러다가 친윤 세력 위주의 당 세력 구도가 다른 모양새로 전이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아직 작기는 하지만 솔솔 새어나오고 있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있지만 친윤 세력 내에 '강한 당 대표 후보'가 없다는 점도 유 전 의원에게 힘을 보태는 형국이다. 대통령직인수위원장 출신이면서 친윤으로 분류돼 온 안철수 의원조차 최근엔 조금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안 의원은 11월 8일 페이스북에 “우리 여당은 문재인 정부 때와는 달라야 한다”며 경찰 지휘부와 이상민 장관의 책임론을 재차 제기했다. 이 장관에 대해선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부담이 되지 않도록 사태 수습 후 늦지 않게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래야 국민 앞에 떳떳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윤심에 의해 좌지우지될 것으로 보였던 차기 당권 획득이 예측 불허 상태로 빠지면서 세력전이설을 더욱 키우고 있다. 이태원 참사 국가애도기간이 끝나면서 국민의힘은 다시 전당대회 준비에 착수할 것으로 보이는데 여러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상위 후보군이 예상 밖으로 흐르고 있다.
인지도가 높은 안철수 의원, 나경원 전 의원이 상위권에 들어가는 것은 이해가 되는데 유승민 전 의원이 가장 앞서고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옛 국민의힘) 대표까지 일부 여론조사에서 상위권에 오르고 있는 부분은 당 내부를 헷갈리게 만들고 있다. 숨어있던 보수 지지세력이 다시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는 대목이다.
정치는 바람이기 때문에 세력전이설이 언제든 통할 수 있다는 당 내부 인사들의 경험담도 나온다. 지난해 6월 전당대회에서 정치적 기반이 없는 0선 이준석 전 대표가 돌풍을 일으키면서 정치고수들인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 나경원 전 의원을 쓰러뜨린 것은 예상 밖 바람이었다. 그런 차원에서 유승민 바람도 나타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논리적으로 얘기하면 임기 초반 대통령의 힘을 뒤집고 여당에서 새로운 힘이 등장한다는 것은 한국적 정치 상황에서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여권의 대위기를 부른 이태원 참사가 발생했다는 점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공간이 생겼고 이 공간 속에서 권력의 전이가 일어날 여지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지 않겠느냐. 그 공간을 차지하는 것이 과연 유승민이냐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유 전 의원의 당 대표 등극 가능성은 변수가 너무 많아 더욱 예측하기가 어렵다.” 국민의힘 한 초선 의원은 매우 조심스럽게 얘기했다.
#홍준표 총리? 실현 가능성 없는데 왜
홍준표 대구시장이 운영하는 온라인 소통채널 ‘청년의꿈’ 청문홍답(청년이 물으면 홍준표가 답한다)에 11월 8일 재미있는 글이 하나 올라왔다. ‘윤석열 대통령이 한덕수 총리 후임으로 홍 시장을 택한다면 수락하겠는가’라는 제목이 달린 글이었다.
이 글의 작성자는 “물론, 현재의 대구시장직이 얼마나 막중하고 엄청난지는 누구보다도 홍 시장님께서 실감하시겠지만 다른 인물이 없다”며 “‘역시 홍 시장님뿐이다’라며 맡길 경우를 말씀드린 것이다. 대구 시민이 서운해 하겠지만, 그들도 대한민국 국민이니 넓은 마음으로 양해할 것”이라고 적었다. 이에 홍 시장은 “그렇게 해선 안 된다. 한 총리께서 잘하고 계신다”고 답하며 야권에서 이태원 참사 수습책으로 제기하고 있는 총리 책임론을 막아섰다.
여권 내부에서는 이 문답을 두고 홍 시장이 한덕수 총리 보호론을 들고 나왔다는 해석이 주류를 이루긴 했다. 하지만 홍 시장이 위기에 빠진 윤석열 대통령을 보좌해 줄 국무총리로 등판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나왔다. 차기 대권을 희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홍 시장의 조기등판설이다.
조기등판설 선행 모델은 멀리 볼 것도 없이 문재인 정부 초대 총리인 이낙연 전 국무총리다. 이 전 총리는 전남도지사 직을 수행하던 중 문 전 대통령 지명을 받아 1987년 제도적 민주화 이후 역대 최장수 총리가 됐다. 지난 대선 당내 경선에서 이재명 현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패해 대권 본선 도전의 기회를 놓쳤다. 하지만 이 전 총리는 총리 재임 기간 확실한 대통령 수업을 한 동시에, 영남 출신으로서 민주당 전통 지지층인 호남에 대한 호소력이 부족했던 문재인 전 대통령의 정치적 기반 문제를 확실하게 보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경남도지사를 역임하고 대구시장을 하고 있는 홍 시장 역시 국무총리가 된다면 서울 출신으로 지역적 정치 기반이 없는 윤 대통령의 동맹군이 될 수 있다. 국민의힘의 최대 지지기반인 영남의 확실한 지지를 윤 대통령이 업고 갈 수 있게 되면서 툭하면 지지율이 급락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중앙정치에 대해 꾸준히 메시지를 발신하고 있는 홍 시장의 행보도 이러한 소문을 더욱 키우고 있다. 홍 시장은 지난 10월 19일 국민의힘 상임고문에 위촉되면서 중앙정치에 대해 평가할 수 있는 정치적 명분도 획득했다. 그는 위촉된 당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아무래도 지방자치단체장이 되면 중앙정치에 관여하는 것은 부적절한 경우가 있기 때문에 당이 잘못된 방향으로 나갈 때도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며 “상임고문이 되면 그런 시비 없이 중앙정치에 관여할 수 있는 통로가 생긴다”고 했다.
그러나 홍 시장의 조기등판설에는 실현 가능성에 제약을 가하는 요인이 너무 많다. 무엇보다 강한 리더십을 표방하는 홍 시장에게 윤 대통령이 권력을 분할해 줄 가능성이 전혀 없고, 경제가 어려워 위기에 빠진 대구의 회생을 공약하고 시장이 된 홍 시장 역시 대구를 떠날 명분이 없다는 분석이다. 대구의 한 국회의원은 “(홍 시장 총리설은) 실현 가능성 없는 얘기다. 그러나 이런 얘기가 나오는 것 자체가 당의 위기를 보여주는 것이어서 당의 분발과 쇄신을 위해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직진으로 돌파구…역풍은 없나
야권은 물론, 여권 일부의 정치적 책임론 제기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실은 수사를 통한 책임 규명이 우선이라는 ‘직진 입장’을 보이고 있다. 원칙론이지만 그 속내에는 정치적 타격을 최소화해서 대통령 리더십 훼손을 최대한 줄여보겠다는 의도가 깔린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여권에 따르면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함께 윤 대통령의 최측근인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을 경질할 경우, 강력한 바람막이 한축이 사라진다는 점에서 내주기 어려운 카드다. 또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을 최근에야 임명하는 등 취임 6개월이 돼서야 가까스로 장관 진용을 모두 갖췄는데 또 개각을 해야 한다면 국정 동력에 다시 난맥상이 생긴다.
하지만 예산국회가 열리고 있는 상황에서 야권의 끈질긴 정치적 책임론 제기와 이에 따른 국정조사 시동은 직진론이 과연 맞느냐는 의문도 열어놓고 있다. 윤석열 정부에 우호적이라 할 수 있는 보수언론도 연일 정치적 책임론을 제기하며 인적 쇄신론을 주문하고 있는 점 역시 대통령실에는 큰 부담이다. 여권 일부에서는 “정치는 장군멍군이고 국민여론을 봐야 하는데 이 지점에서 내줄 것은 내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대통령실 쪽에서는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반드시 한다. 그런데 정치적으로 밀리면 도대체 어디까지 밀려날지 모른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동남아 순방에서 MBC를 전용기 탑승 대상에서 전격적으로 제외한 조치도 직진 전술의 연장선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러 정치적 반발을 정면충돌로 극복해나가면서 파찰음 역시 동시에 커지는 ‘직진의 딜레마’에 빠질 경우, 국민들의 피로도가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번지는 중이다.
최경철 매일신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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