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꽃뱀 타짜 조폭까지 동원해 사기도박을 벌인 일당이 검찰에 적발됐다. 사진은 영화 <타짜>의 한 장면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다. |
배 씨 일당은 사기도박을 의심받자 꽃뱀을 이용해 피해자를 강간 혐의로 허위 고소까지 한 것으로 드러났다. 조폭과 꽃뱀, 타짜까지 동원된 그야말로 종합선물세트 사기도박단의 범행 전모를 파헤쳐봤다.
배씨 일당의 범행에는 타짜를 동원한 사기도박판에 조폭이 들러리로 가담하고 꽃뱀까지 등장한다.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사기도박단의 수법에 피해자 A 씨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천안·아산 지역을 거점으로 활동하며 사기도박판을 벌여온 배 씨 일당이 조직된 것은 2010년 12월 무렵이었다. 이들은 모두 이 지역 토박이들로 소위 ‘한 다리 건너면 다 안다’는 지역 선·후배 사이였다. 또 이들은 모두 도박판에서 서로 얼굴을 마주친 적이 있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오고가며 안부를 전하던 이들은 배 씨의 제안으로 뭉치기 시작했다. 사기 전력이 있던 배 씨와 이 씨가 ‘한 탕’을 위해 ‘선수’들을 모집한 것이다.
배 씨는 우선 이 지역에서 소문난 ‘타짜’이자 평소 알고 지내던 윤 씨를 섭외했다. 그리고 추가로 딜러이자 ‘꽃뱀’ 역할을 할 김 씨도 섭외했다. 김 씨는 과거 도박판에서 이 씨를 만난 인연으로 합류하게 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배 씨 일당은 각자 역할을 맡아 조직적으로 움직였다. 배 씨 일당이 가장 신경을 썼던 부분은 밖으로 얘기가 새어 나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손님 모집은 주로 배 씨가 도맡아 했다. 대부분 극비리에 주변에 아는 사람을 통해서만 손님을 받았다. 서울에서 한 번, 지방에서 한 번, 서울과 지역을 돌아가며 아는 사람들을 통해 손님을 모집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배 씨 일당은 또 의심을 피하기 위해 한 번 온 사람을 두 번 이상 참가시키지 않는 치밀함과 보안에도 각별히 신경을 썼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렇게 조직된 환상의 사기도박단이 궁극적으로 노린 미끼는 A 씨였다. 이 지역 출신이었던 배 씨 일당은 A 씨가 상당한 재력의 유산 상속자인 것을 알고 의도적으로 접근했다. 배 씨는 우선 A 씨와 친분이 있는 사기단 멤버를 통해 A 씨를 소개받았다. 배 씨는 “집을 구한다”며 A 씨의 건물에 전세로 들어갔다. 이후 A 씨와 같은 건물에 살며 친분을 쌓아가던 배 씨는 점점 속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배 씨는 A 씨에게 “음식점을 운영하는데 가게에서 아는 사람들과 내기 게임을 한다. 관심 있으면 같이 하자”며 사기도박판에 끌어들였다. 주로 ‘홀덤’과 ‘바둑이’로 불리는 카드 게임이 벌어진 가운데 배 씨 일당의 사기도박 수법은 다양했다. 일명 ‘탄’(카드가 순서대로 나오도록 미리 맞춰 놓는 것)을 제작해 손기술로 패를 조작하는 기본적인 방법에서부터 특수 콘택트렌즈를 끼고 카드 뒷면의 패를 알아보는 방법까지 동원됐다.
결국 이런 사실을 모른 채 도박판에 참여했던 A 씨는 돈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너무나 당연한 결과였다. 그러나 처음에는 그 액수가 얼마되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잃어버린 돈을 찾기 위해 계속해서 도박에 참여하게 되자 푼돈이었던 것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급기야 A 씨는 유산으로 물려받은 땅까지 팔아가며 도박자금을 마련했다. 이런 식으로 지난해 3월까지 A 씨가 배 씨 일당의 사기에 농락당해 빼앗긴 돈은 약 6억 원에 달했다.
결국 자꾸 자신만 돈을 잃게 되자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A 씨는 배 씨 일당의 사기도박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A 씨는 배 씨 일당에 대해 몰래 수소문을 하고 다녔다. 그런 와중에 A 씨는 배 씨 일당 중 한 명으로부터 사기도박의 전모를 전해들을 수 있었다.
이에 A 씨는 배 씨를 찾아가 따져 물었고, 이때부터 두 사람의 진흙탕 싸움이 전개됐다. 모든 사실을 파악한 A 씨가 돈을 돌려 달라고 요구하자 배 씨는 “증거 있냐”며 버텼다. 이에 A 씨는 배 씨에게 ‘사기도박 혐의’로 경찰에 고소하겠다고 맞섰다. 이런 와중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지난해 5월 오히려 배 씨가 A 씨를 김 씨에 대한 강간혐의로 경찰에 고발한 것이다. 배 씨 일당의 사기도박에 빠져 있을 때 김 씨와 원치 않은 성관계를 맺었던 게 화근이었다. A 씨는 피해자인 자신이 졸지에 강간범으로 몰리자 억울함을 알리기 위해 검찰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양측의 주장이 팽팽한 가운데 결국 검찰수사에서 배 씨 일당의 사기도박 전모가 드러났다. 검찰은 A 씨의 진정서와 배 씨의 계좌 추적을 통해 배 씨 일당의 사기도박 증거를 찾아냈다. 또 배 씨와 김 씨의 통화내역을 조사한 결과 강간사건이 사전에 계획·조작됐음이 드러났다. 모텔에 간 김 씨가 배 씨에게 보고하는 통화내역 기록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당시 배 씨 일당은 많은 돈을 잃은 A 씨가 자꾸 의심의 눈초리를 보이자 이를 무마하기 위해 김 씨를 이용한 ‘꽃뱀’ 작전을 펼쳤던 것으로 전해졌다.
또 검찰은 배 씨 사기단에 이 지역 폭력조직 ‘신미도파’ 조직원 두 명도 연루된 사실을 추가로 밝혀냈다. 폭력조직원들은 사기도박에 들러리로 참여하는 등 간접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또 판돈을 키우기 위해 위조수표를 도박에 사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한편 도피 중인 공범 이 씨는 배 씨가 경찰수사를 받게 되자 “경찰에 손을 써 주겠다”며 배 씨로부터 2000만 원을 받아 간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사기도박에 꽃뱀을 이용한 무고죄, 위조수표 사용까지 배 씨 일당의 범행은 마치 범죄종합선물세트를 보는 듯했다”고 말했다.
이훈철 기자 boazh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