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시장-법조기자로 만나, 화천대유 특혜의혹 넘어 “공산당 같은 XX” 녹취록까지…사실상 악연의 역사
11월 24일 대장동 의혹 ‘키맨’으로 꼽히는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 씨가 출소했다. 이날 새벽 0시 3분 서울구치소를 나온 김 씨는 “소란을 일으켜 여러모로 송구스럽다”며 “성실히 재판에 임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이어진 취재진 질문에는 답을 하지 않고 현장을 떠났다. 출소에 앞서 김 씨 측은 “어떤 언론과도 인터뷰하지 않겠다. 어디서도 따로 얘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천명하며 침묵의 자물쇠를 채웠다.
대장동 의혹 관련 핵심 당사자인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본부장과 남욱 변호사가 구치소를 나오자마자 ‘메가톤급 폭로’를 이어가는 것과 정반대의 행보다. 지난 10월 유 전 본부장은 “김용(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에게 돈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유 전 본부장 폭로 이후 검찰 수사 칼날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최측근을 본격적으로 겨누기 시작했다.
남욱 변호사는 11월 21일 대장동 의혹 관련 재판에 참석해 “천화동인 1호 지분에 대해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 측 지분으로 알고 있었다”는 폭탄발언을 내놨다. 앞서 지난해 남 변호사는 “천화동인 1호가 이재명 (당시) 경기지사와 관련이 없다”는 취지로 말한 바 있다. 자신의 발언을 백팔십도 뒤집은 셈이다.
두 사람이 폭로전을 개시한 이유는 동일했다. 유 전 본부장은 “내 죗값만 받을 것”이라는 의지를 피력했다. 남 변호사 역시 “남이 내 징역을 대신 살아주지 않는다”고 폭로 이유를 설명했다. 유 전 본부장과 남 변호사 폭로 이후 ‘태풍의 눈’으로 부상한 것은 김만배 씨의 입이다. 대장동 개발사업과 관련해 모든 것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본 화천대유 대주주가 폭로전에 가세할 경우 무게감 자체가 다를 것이란 분석이 정치권 안팎에서 나왔다.
김 씨가 유 전 본부장, 남 변호사와 다르게 침묵하는 것을 두고, 정치권 일각에선 언론인 출신 김 씨가 소통창구를 재판정으로 일원화해 ‘추가 잡음’을 차단하려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언론인 출신 한 여권 관계자는 “김만배 씨가 언론인 출신이라는 점을 다시 상기하게 됐다”며 “소통채널을 일원화하면서 모든 발언을 통제 범위 안에 두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개인적인 언론 접촉을 피하면, 김 씨가 법정에서 하는 말의 파급력이 보다 강해질 수 있다”며 “김 씨가 대장동 의혹 관련 어떤 스탠스를 취하고 있는지는 향후 재판에서 확인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김만배 씨의 향후 법정 발언 방향성에 물음표가 생기는 상황에서, 김 씨와 이재명 대표의 과거 인연이 재조명되고 있다. ‘대장동 의혹’이라는 메가톤급 이슈에 얽힌 두 사람의 인연은 사실상 악연으로 굳어지는 모양새다.
지난해 10월 18일 경기도청에서 경기도를 대상으로 한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가 열렸다. 민주당 대선후보로 선출된 이재명 대표는 당시 경기지사 신분으로 국감에 자리했다.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은 이 자리에서 대장동 의혹 관련 질의를 이어가던 중 “김만배 씨 잘 아느냐”고 물었다. 이에 이재명 대표는 “김만배 씨는 언론에 보도된 것처럼 저를 인터뷰한 적이 있어서”라고 답변했다.
김 씨는 경제지 법조팀장을 지낸 언론인 출신이다. 2014년 7월 김 씨는 언론인 신분으로 성남시장 재임 중이던 이 대표를 인터뷰했다. 인터뷰 주제는 ‘보수도시서 성공한 성남시장’이었다. 김 씨와 이 대표는 당시 인터뷰를 통해 성남시정, 정치 입문계기, 세월호 사건을 보는 관점, 앞으로의 포부 등 정치인생 전반에 걸친 폭넓은 대화를 나눴다.
두 사람이 대담한 뒤 7개월 후인 2015년 2월 6일, 경기도 성남시 소재 한 사무실에 중소기업이 문을 열었다. 바로 화천대유자산관리였다. 화천대유는 자본금 1000만 원을 기반으로 설립됐다. 김 씨는 화천대유 실소유주였다.
화천대유가 문을 연 지 일주일 뒤인 2월 13일 성남시는 대장동 개발사업 입찰공고를 냈다. 대장동 개발사업 시행사로는 성남도시개발공사가 대주주로 있는 특수목적법인 ‘성남의뜰’이 선정됐다. 화천대유는 성남의뜰 지분참여자이자 자산관리회사로 대장동 사업에 뛰어들었다.
대장동 사업에 뛰어든 뒤 화천대유는 천문학적 수익률을 기록했다. 2020년 말 기준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화천대유 누적 분양 매출은 1조 981억 원이었다.
조용히 진행될 것 같던 개발사업은 이재명 대표가 성남시장-경기지사를 거쳐 대권주자로 올라서며 특혜 의혹이 불거졌다. 대장동 개발사업 당시 화천대유에 거액을 몰아줘 뇌물로 사용한 것 아니냐는 것이 의혹 핵심 쟁점이다.
김만배 씨의 ‘그분’ 발언이 논란을 더욱 부채질했다. 지난해 10월 대장동 의혹의 또 다른 핵심인물인 정영학 회계사의 녹취록이 공개됐다. 2019~2020년쯤 녹음된 것으로 추정되는 녹취록에서 김 씨가 “(화천대유 자회사) 천화동인 1호는 내 것이 아닌 걸 다들 알지 않느냐”며 “그 절반은 ‘그분’ 것”이라고 말한 내용이 담겨 있었던 것.
이에 김 씨는 2021년 10월 12일 검찰 조사를 받고 나온 뒤 “천화동인 1호는 의심할 여지없이 화천대유 소속”이라면서 “화천대유는 내 개인법인”이라고 강조했다. 천화동인 1호 실소유주가 자신이라고 주장한 셈이다. 역설적으로 출소한 김만배 씨가 ‘천화동인 1호’ 관련한 입장을 뒤집을지 관심이 쏠린다.
하지만 김만배 씨가 기존 발언을 뒤집고 대장동 의혹 관련 이재명 대표와의 연관성을 폭로하기 위해서는, 기존에 이 대표에 대해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현한 대목에 대한 설명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2021년 9월 녹취된 음성파일 내용에 따르면 김 씨는 천화동인 1호부터 18호까지 판매 계획이 무산됐다는 점을 언급하며 “성남시가 너무 자기들에게 유리한 공모 조건을 만들었다” “성남시가 3700억 원 선배당 받겠다고 하면서 (투자를 계획했던) 법조인들이 ‘우리는 그러면 안 해’ 해서 내가 많이 갖게 됐다. 원래 천화동인은 다 팔 계획이었는데”라고 토로했다.
이어 김 씨는 3700억 원 규모 선배당금과 별도로 성남의뜰에 운영비를 제공했다는 점을 언급하며 “이재명은 난놈”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특히 김 씨는 대장동 땅값 상승과 더불어 이재명 대표 요구사항이 많아진 점을 거론하면서 “내가 욕을 많이 했다. X같은 XX, XXX, 공산당 같은 XX 했더니 성남 시의원들이 찾아와서 ‘그만 좀 하라’고”라며 욕설을 하기도 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는 10월 23일 해당 음성파일 내용과 관련해 SNS에 글을 올렸다. 최측근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이 대장동 개발 특혜 수혜 사업자들로부터 약 8억 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된 시점이었다.
이 대표는 김 씨 비속어 발언을 거론하며 “그들이 과연 원수 같았을 이재명에게 대선자금을 줬겠느냐”며 “자신들이 다 가졌을 개발이익을 공공개발한다며 4400억 원이나 빼앗고 사업 도중 1100억 원을 더 뺏은 이재명이 얼마나 미웠겠느냐”고 반문했다. 김 씨가 이 대표 관련 불만을 토로한 것을 토대로 ‘특혜 의혹’을 부인하는 취지였다.
현재 ‘화천대유발 대장동 의혹’은 이 대표 최측근 인사 두 명을 구속시키는 나비효과를 불러일으켰다. 정진상 민주당 당대표실 정무조정실장과 김용 전 부원장은 대장동 일당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구속 수사를 받고 있다.
11월 25일 천화동인 4호 실소유주 남욱 변호사는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대장동 배임사건 공판 증인으로 출석해 유 전 본부장 변호인 측 질의를 받았다. 유 전 본부장 측 변호인은 남 변호사에게 “김만배 씨가 이재명 당시 시장과 친분이 있어 민간개발업자들을 위해 로비할 수 있다고 생각했느냐”고 물었다.
이에 남 변호사는 “김만배 씨가 이재명 시장과 친분이 있다고 듣지는 못했다”면서도 “이 시장과 친분이 있는 다른 유력 정치인들과 친분이 있어서 그분들을 통해 이 시장을 설득하는 역할을 부탁드리기 위해서 김 씨에게 (로비를) 부탁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 씨와 친분이 있고 이재명 시장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치인이 누구라고 들었느냐”는 질문에 남 변호사는 “이광재 전 의원, 김태년 의원, 이화영 전 의원이라고 들었다”며 “김 씨가 2011년에서 2012년 세 분을 통해 이재명 시장을 직접 설득하겠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김 씨가 실제로 그런 활동을 했는지 확인하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는 이재명 대표가 대장동 개발을 공영개발로 추진하겠다고 공표했을 시점이다. 대장동 의혹 관련 핵심 관계자들은 대장동 개발을 순수 민간개발로 돌리려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 씨 또한 출소 이후 이날 공판에 출석했다. 김 씨는 포토라인에서도 다시 한 번 침묵으로 일관했다. 추후 공판 과정 김 씨 입에서 이 대표와의 과거 인연에 ‘새로운 실마리’를 내놓을지 정치권의 귀추가 주목된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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