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엽은 “개막전에 나갈 생각을 하면 가슴이 뛴다”며 친정팀 복귀에 대한 셀렘을 감추지 못했다. 사진제공=삼성 라이온즈 |
―일본에 있을 때보다 훈련량이 엄청 많아졌을 것 같다. 오랜만의 강훈련이라 힘든 부분이 많았을 텐데, 어떤가?
▲그래도 괌에서 훈련했을 때보단 낫다. 다른 팀이랑 연습게임을 하니까 더 좋은 것 같다. 특히 일본으로 옮겨와선 야간훈련이 고참 선수에 한해 자율훈련으로 바뀌었다. 덕분에 조금 숨통이 트였다. 훈련량이 많다는 걸 익히 알았지만, 오랜만에 이렇게 훈련을 하니까 처음엔 조금 힘들긴 힘들더라. 그래도 오고 싶었던 팀에서 뛰고 있기 때문에 고생이 고생 같지 않고 즐겁기만 하다.
―8년 만에 돌아온 삼성, 이전과 비교했을 때 어떤 변화가 있다고 생각하나.
▲선수층이 많이 젊어졌다. 이전의 삼성은 훌륭한 선수 구성에 비해 성적을 내지 못하는 모래알 같은 팀이었다. 그래서 내가 처음 삼성에 입단했을 때,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대선배들, 즉 이만수, 류중일, 이종두 선배님처럼 기라성 같은 선배님들이 계셔서 많이 어려웠고, 가까이 다가서기 힘들었다. 그런데 지금은 팀의 주축 선수들 대부분이 젊은 층이다. 그들한테는 내 존재가 이전의 류중일, 이만수 선배님처럼 어려운 대선배로 느껴질 것이다. 그래서 후배들한테 살갑게 대하려고 노력했다.
―이승엽 선수가 훈련을 시작하면서 후배들에 대한 두려움을 토로했다고 들었다. 사실인가.
▲삼성이 일본팀과 연습경기를 하면서도 지는 법을 모르더라. 너무 잘하는 걸 보고 삼성의 오치아이 코치한테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것이냐’라고 물었다. 난 일본에서 돌아오기 직전에 2할을 쳤던 선수다. 그런데 지금 우리 선수들은 모두 2할 이상의 타자들만 수두룩하다. 내가 이들보다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니까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금은 내가 뒤처져 있는 상태다. 그러나 시즌이 시작되면 지금과는 다른 양상이 되지 않을까 싶다. 내가 그냥 지켜보고만 있는 사람이 아니지 않나.
▲ 사진제공=삼성 라이온즈 |
▲어휴, 정말 기분 좋다. 만 8년 만에 이 유니폼을 입었는데, 지금도 조금 설렌다. 역시 나한테는 이 파란색이 딱이다. 제일 잘 맞는 것 같다. 지금도 개막전에 나갈 생각을 하면 가슴이 콩닥콩닥 거릴 정도의 흥분감이 느껴진다. 대구는 내 고향이고 한국시리즈 우승에다 홈런 신기록도 세운 곳이다. 나도, 또 팬들도 대구구장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사실에 달뜬 마음을 갖고 계실 것 같다.
―대구구장에 다시 ‘잠자리채’가 등장할 수도 있겠다(2003년 이승엽은 56홈런을 몰아쳐 ‘아시아단일시즌 최다홈런 신기록’을 작성했다. 당시 대구구장 외야스탠드에는 신기록 홈런볼을 잡기 위한 ‘이승엽 잠자리채’가 대거 등장해 장관을 이뤘다).
▲하하, 그 정도로 많은 홈런을 칠 수 있다면 너무 행복하겠다. 사실 올 시즌 삼성 유니폼을 입고 뛸 줄은 몰랐다. 어느 순간 친정팀 복귀에 대해 마음을 접어야 했던 일이 생겼다. 뉴스를 통해 ‘삼성에는 이승엽이 뛸 자리가 없다’는 메시지를 접하고 나름 상처를 받기도 했다.
―2010년 선동열 감독이 삼성을 맡고 있을 때 나온 얘기로 알고 있다.
▲지금 그 얘기를 다시 꺼내고 싶진 않다. 오고 싶어도 올 수 없는 현실 앞에서 많이 힘들었다. 그러다 류중일 감독님이 오시면서 나한테 기회가 생기게 됐다. 고맙고 감사한 마음뿐이다.
▲ 2월 20일 일본 오키나와현 아카마 야구장에서 전지훈련을 가진 이승엽이 후배들 앞에서 주루플레이 시범을 보이고 있다. 사진제공=삼성 라이온즈 |
▲흠, 팀워크였다. 내가 후배들과 나이 차이가 많이 나다 보니 서로 잘 어울려서 좋은 팀워크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하는 문제였다. 막상 선수단에 합류해보니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시간이 더 걸릴 것만 같았다. 야구, 생활면에서 많은 거리감이 느껴졌다. 그런데 전지훈련 동안 그런 어색하고 서먹서먹한 감정들이 모두 사라졌다. 후배들과도 격의없이 지내는 사이가 됐다.
―지난해 삼성은 어마어마한 성적을 이뤘다. 정규리그, 한국시리즈, 그리고 아시아시리즈에서까지 우승을 거머쥐었다. 그로 인해 이승엽 선수가 가질 부담이 더 커졌을 것 같다.
▲어휴, 너무 잘한다. 빈틈이 없어 보일 정도로. 연습량과 선수들 훈련 태도를 보면서 삼성이 어떻게 해서 우승을 해냈는지 알 수 있게 되더라. 이런 팀에 내가 들어와서 더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우승을 하지 못한다면 굉장한 부담과 스트레스가 될 것이다. 올시즌 어떻게 해서든 삼성이 우승을 해야 한다. 좋은 성적으로 시즌을 마무리해야 내년부터 정말 야구를 즐기면서, 편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 생활 8년 동안 얻은 것과 잃은 게 있다면 무엇인가.
▲일본에서 생활하는 동안 참는 법을 많이 배웠다. 혼자 지내면서 내 자신을 돌아보고, 내 부족함을 곱씹었던 시간들이었다. 한국에선 거의 실패를 모르고 살았다. 2군에서 생활한 적도 없었다. 그러다 일본에서의 8년은 나에게 야구인생의 희로애락을 제대로 느끼게 해줬다. 가끔 그 시간들을 돌이켜보면, 내 자신이 대견해진다. 잘 참아온 것 같아서. 잃은 것이라면 성적이다. 프로는 성적으로 말해주는 건데, 일본에서는 개인 성적을 많이 까먹었다. 그로 인해 ‘이승엽’이란 선수의 명성도 떨어졌다. 하지만 다시 8년 전으로 돌아가서 진로 문제로 고민하는 상황이라면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그 선택이 일본이든, 미국이든 말이다. 야구를 하면서 실패를 경험하고 좌절을 맛보았던 부분은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은퇴 후, 지도자 생활을 하게 될 경우 엄청난 도움을 주리라고 본다.
―오키나와에서 이전 소속팀이었던 오릭스와 연습경기를 치렀다. 물론 경기에는 나가지 않았지만 삼성 유니폼을 입고 오릭스 선수들을 만난 심정이 어떠했는지 궁금하다.
▲(웃으면서) 진짜 묘하더라. 지난해 2월 19일, 오릭스 소속 선수로 삼성과 연습경기를 치렀다. 그런데 딱 1년 만에 반대의 상황에 처해서 오릭스를 상대했다. 한편으로는 그들이 반가웠고, 한편으로는 1년 전 내 모습이 생각나서 순간 마음이 복잡해졌다. 작년에 삼성과의 경기를 마치고 오릭스 선수단 버스에 올라 숙소로 향하는데 마음 속에서 뭔가 울컥 하는 게 느껴졌었다. 언제쯤 난 삼성에서 뛸 수 있을까를 생각하기도 했다. 지난 8년 동안 2, 3월이 나한테는 가장 힘든 시간들이었다. 앞으로 1년을 또 일본에서 생활하며 지내야 한다는 생각에 그 마음을 다잡는 게 어려웠다.
―지금은 오릭스에 이승엽 선수 대신 이대호 선수가 뛰고 있다.
▲하하, 대호는 지금 아무 것도 모른다. 새로운 도전을 꿈꾸고 있는 상태라 내가 갖고 있는 마음을 전혀 알 수가 없다. 거기서 생활해봐야 한다. 왜 한국에 대한 그리움이 생기는지, 하루 빨리 돌아가고 싶은 마음만 드는지를.
―일본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가게 됐을 때, 가족들의 반응은 어떠했나.
▲아무래도 아내한테는 내가 힘들어 하는 모습을 많이 보일 수밖에 없었다. 몇 년 전부터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얘기를 많이 했었는데, 그때는 눈도 깜짝하지 않던 사람이 삼성과 계약했다고 하니까 너무 좋아하는 거다. 그래서 내가 이전에는 한국 가자고 해도 반응도 없다가 왜 이렇게 좋아하느냐고 물었다. 아내가 하는 말이 남편이 마음 약해서 흔들리고 있는데, 자기까지 한국 운운하며 남편을 부추기는 건 옳지 않은 행동이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하더라. 난 정말 많이 놀랐다. 아내가 그렇게 생각하는지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 난 아내가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다. 엄마의 정신력은 위대하고 대단하다는 걸 새삼 절감했다.
인터뷰 내내 호탕한 웃음을 터트리며 밝은 표정으로 질문에 답을 해가던 이승엽에게 ‘일본파’들인 박찬호, 김병현, 김태균의 활약에 대해 얘기를 풀어가다가 오릭스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한화 박찬호와의 맞대결 상황을 던진 후 어떤 결과가 나올지에 대해 물었다. 이승엽다운 대답이 흘러나온다.
“찬호 형과의 대결이요? 와, 정말 드라마 같은 장면이 연출되겠네요. 분명히 둘 다 최선을 다해서 승부를 벌일 겁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지켜봐야 알겠지만, 솔직히 말씀드려서 제가 이겼으면 좋겠어요. 하하.”
오키나와=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