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매 허용 기한보다 긴 섭취 가능 기한 적용…식품 폐기물 절감 효과 있지만 관리 부실 땐 제품 변질 위험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는 2023년 1월 1일부터 식품 등에 표시되는 유통기한을 소비기한으로 표기하기로 했다. 유통기한은 제조일부터 소비자에게 유통·판매가 허용되는 기한으로 대부분 식품에 적용하고 있다. 소비기한은 표시된 조건에서 보관하면 섭취를 해도 안전에 이상이 없는 기한이다. 유통기한은 식품의 품질 변화 시점을 기준으로 60~70% 앞선 기간으로 설정하고, 소비기한은 80~90% 앞선 수준에서 설정한다. 소비기한이 유통기한보다 길 수밖에 없다.
유통기한은 판매가 허용되는 기한이라 그 기한을 넘겨도 섭취가 가능하지만 소비자가 언제까지 섭취해도 되는지 몰라 유통기한이 경과한 식품은 상태와 상관없이 폐기하는 등의 문제가 있다. 유럽연합(EU) 등 대다수 국가는 소비기한 표시제를 도입하고 있으며 국제식품규격위원회도 소비기한 표시제도를 권고하고 있다. 식품 등 폐기물 감소와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국제 흐름에 따라 식약처는 2023년부터 소비기한 표시제를 시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냉장 보관 기준 개선이 필요한 품목인 우유류는 2031년부터 소비기한 표시를 적용한다. 업계의 준비 등 제도의 안정적 시행을 위해 내년 12월 31일까지 계도 기간을 둔다.
식약처는 소비기한 표시제 시행에 앞서 지난 1일 23개 식품유형 80개 품목의 소비기한 참고값 등을 수록한 ‘식품 유형별 소비기한 설정 보고서’를 마련해 배포했다. 이 보고서의 식품유형별 소비기한 참고값 설정 실험 결과에 따르면 소비기한으로 바뀔 경우 기존 유통기한보다 과자는 36일, 두부는 6일, 빵류는 11일, 어묵은 13일이 늘었다. 이 밖에도 과채음료, 베이컨류, 소시지 등의 식품들이 전반적으로 기한이 늘었다. 식약처는 제품을 판매하고 섭취할 수 있는 기한이 늘어 식품 폐기물이 줄어드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식품업계에서는 소비기한 표시제에 대한 걱정 어린 시선도 많다. 소비기한은 유통기한보다 더 길어 소비기한에 맞춰 제품 유통을 하다 보면 제품이 변질될 가능성이 있다. A 식품업계 관계자는 “식품 품질에 대한 고객 클레임이 가장 걱정된다”며 “기간이 긴 소비기한을 보고 제품을 유통하거나 관리하다 보면 제품이 상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에 부담이 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정부에서 소비기한 표시제 도입 후 문제점들을 확인해 대응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소비기한에 따라 제품을 관리하려면 식품이 변질되지 않도록 온도 등의 보관 환경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이런 시스템을 갖추는 데도 시간적 경제적인 비용이 지출되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B 식품업체 관계자는 “유제품이나 냉장식품은 유통 과정 중에 충분히 변질이 될 수 있어 온도 기준이나 식품 보관 환경을 변화시켜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유통과정에서 제품 관리 시스템을 갖추거나 냉동 냉장고에 문을 설치하는 등의 변화가 생기면 비용이 발생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유통기한은 기한을 며칠 넘겨도 먹는 데 지장이 없지만 소비기한을 넘기면 섭취하는 것이 위험하다”며 “영세 유통업체들은 대용량의 식품이나 관리하기 까다로운 식품의 냉장·냉동 관리를 수월하게 하지 못할 수도 있어 제품이 상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소비기한 도입으로 소비자들이 식품을 구매하는 주기가 길어져 기업이 손해를 볼 수도 있다는 의견도 있다. 이종우 연성대 유통물류학과 교수는 “보통 소비자들은 유통기한을 섭취하면 안 되는 기준으로 알고 있어 유통기한이 지나면 제품을 버리게 되지만 소비기한으로 바뀌면 기간이 길어져서 소비자들이 다시 같은 제품을 구매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며 “제조사나 리테일, 유통업체의 입장에서는 재구매까지 걸리는 시간이 늘어나면 손해를 보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 교수는 “소비기한 표시제 도입으로 소비패턴도 변화할 것으로 보인다”며 “기간이 늘어나니까 소비자들이 양도 많고 가격도 저렴한 대용량을 구매할 가능성이 높다. 기업들도 이런 소비 패턴에 맞춰 대용량 제품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소비기한이 아직 소비자들에게 익숙하지 않아 우려된다는 의견도 있었다. C 식품업체 관계자는 “시행 초기에 소비자들이 소비기한으로 바뀐 것을 모른 채 기한이 지난 식품을 섭취하면 위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권훈정 서울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소비기한은 보관에 있어서 소비자에게 자율성을 주는 셈인데 보관을 체계적으로 할 수 있는 소비자가 많지 않다”며 “유통기한은 판매자가 관리하는 특성이 강해서 관리가 체계적으로 되지만 가정에서는 제품을 보관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는 게 상대적으로 어렵고, 소비자가 소비기한이 지난 제품을 먹을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소비기한 표시제가 도입되기까지 한 달도 채 안 남은 만큼 잘 정착하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이은희 교수는 “소비자들에게 소비기한 표시제를 많이 홍보하는 것이 중요하고, 식약처에서는 위생과 냉장 관리 등 점검을 꼼꼼히 해야 한다”며 “영세한 유통업체에 대해서는 냉장 관리에 지원을 하는 것도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종우 교수는 “불필요한 소비를 막고, 음식 폐기물을 줄일 수 있어 좋은 제도라고 본다”며 “소비자들이 이런 장점들을 잘 알고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고, 기업이나 제조사들은 소비기한에 맞는 용량의 상품을 개발해 제안하면 건전한 시장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식약처 관계자는 “소비기한 관련된 전용 누리집을 올해 3월 개설해 제도에 관한 내용이나 최신 내용을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며 “영업자 대상으로 전국 순회 설명회를 통해 소비기한 표시제를 설명하는 자리도 가졌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소비기한 설정 실험에 대한 기업 부담을 완화할 수 있도록 식품 공전에 있는 200개 식품 유형의 약 2000여개 품목에 대해 소비기한을 설정해 제공했고, 추후에도 품목들을 늘려 정보를 제공할 예정이다”라고 전했다.
이민주 기자 lij9073@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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