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 들킨 피싱 조직원 “사진 보내든가, 고소하든가” 가스라이팅…신종 수법 등장
한 보이스피싱 조직원이 돈 일부를 주겠다며 보낸 메시지다. 최근 보이스피싱 조직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선량한 시민 주머니를 노리고 있다. 그런데 최근 보이스피싱이 반인륜적인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는 경우가 있어 주의를 필요로 한다.
2022년 10월 3일 30대 직장인 여성 A 씨는 한 오픈채팅방에 초대된 뒤 ‘부업’, ‘고수익’을 주제로 한 광고 글을 받게 됐다. 이 글을 클릭하면서 A 씨의 지옥이 시작됐다. 당시 광고 글은 “100만 원에서 3000만 원을 투자하면 60분에서 90분 만에 14배 고수익을 올려준다”는 내용이었다. A 씨는 “가족들 생계를 책임지고 있어 빠듯한 형편에 어려워하던 차에, 호기심이 갑자기 생겨 광고를 보게 됐다”고 말했다.
처음 A 씨는 가벼운 마음으로 상담이라도 들어보고자 했다. A 씨는 상담원에게 “어떤 형식으로 투자가 되나. 설명 들어보고 싶다”고 했다. 이에 보이스피싱 조직원인 상담원은 “간단히 설명하면 럭키 스타십트루퍼스(Lucky Starship)란 사이트에 회원가입하고 초기 게임비용으로 100만 원에서 3000만 원 정도 충전해 놓으면 저희가 로그인하고 대리 작업해드린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초기 게임비용과 수수료 정도만 가져가고 수익금은 받아 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A 씨는 “보통 100만 원을 넣으면 얼마 정도 가져가나”고 묻자 이에 상담원은 “최소 8배인 800만 원 정도인데 보통 14배 정도 수익이 나는 편”이라고 했다. A 씨는 “불법 게임 사이트라서 문제 되거나 하지 않나”고 했고, 상담원은 “개인 정보를 받지도 않고, 기존 회원들이 몇 백 명 있다. 걱정 안 해도 된다”고 안심시켰다.
일단 A 씨가 100만 원을 입금하자 상담원이 작업을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약 1시간 30분 뒤 상담원이 다시 말을 걸었다. 상담원은 “수익금은 2250만 원이다. 진행 중인 보너스 게임 만나서 수익이 많이 났다. 수수료 2000원씩 3번 차감하고 2359만 4000원을 출금하면 된다”고 했다.
무려 24배 정도 수익에 깜짝 놀란 A 씨는 “최대 14배라고 하지 않으셨나요?”라고 묻자 상담원은 “고객님이 운이 좋다. 보너스 게임 만나기 힘들다”고 응대했다. 100만 원으로 엄청난 금액을 번 줄 알았던 A 씨는 “지금 바로 출금할 수 있나. 환전 신청 어떻게 하나”고 다급하게 물었다. 상담원은 “전액 출금 신청하면 받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A 씨가 출금하기 위해 입력해둔 K 은행이 I 은행이라고 바뀌어 있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출금이 안 됐고, 출금팀 직원은 ‘출금 오류가 떴다’고 말했다. 출금팀 직원은 “수정하기 위해 전산팀에 요청했지만 수정이 힘들다. 요즘 고객 포인트 오출금이나 피해 보는 부분이 발생하고 있어서 수정할 수가 없다”는 이상한 답변을 내놨다.
출금팀 직원은 “본인 인증과 보증금을 내야 한다. 보증금은 출금 후 48시간 내 자동 반환 처리 된다”며 “보증금은 출금 가능 금액의 30%로, 전액 출금하기 위해서는 750만 원을 입금해야 한다”고 했다. 마음이 달았던 A 씨는 “곧바로 입금하겠다”고 했고, 직원은 “350만 원, 400만 원으로 나눠 입금하라”고 했다. 직원은 여기에 “본인임을 인증하기 위해 계좌번호와 주민등록증 사진을 찍어 보내라”며 개인정보를 빼내기 시작했다.
A 씨는 주변에 돈을 구해 750만 원을 입금했지만, 여전히 출금은 되지 않았다. A 씨는 “친구에게 빌린 돈이라 얼른 줘야 하는데 잠도 못 자고 있다”며 처리를 부탁했다. 출금팀 직원은 “회원 등급이 낮은데 출금하려고 해서 계정이 잠겼다. 잠금을 풀려면 등급을 높여야 하는데 1000만 원 충전하면 등급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A 씨가 1000만 원을 더 구해 입금하겠다고 하자 직원의 태도가 변하기 시작했다. 당황과 초조로 여러 번 물었던 A 씨에게 직원은 “안내해 드린 대로 돈만 넣어라. 기다리라고 좀”이라며 반말까지 섞기 시작했다. 이미 850만 원을 지불한 A 씨는 보증금과 홈페이지에서 본 가짜 돈인 2400만 원을 받기 위해 ‘을’이 되기 시작했다. 정중한 상담 직원 행세를 했던 보이스피싱 조직원은 “친구였으면 개팼을 것 같다. 기다려라”라는 말까지 했다.
보이스피싱 상담 직원은 다소 이해할 수 없는 말과 함께 A 씨를 또 한 번 속이기 시작했다. 상담 직원은 “A 씨 출금 액수가 고액이라 증권사 차명계좌로 6000만 원을 발급해둔 상태다. 현재 수익 금액과 보증금 포함 총 4110만 원을 보유한 상태인데 1890만 원을 추가로 입금해 6000만 원을 채워줘야 받을 수 있다”면서 “이미 6000만 원이 발급된 상태기 때문에 입금만 하면 바로 돈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A 씨가 이해할 수 없는 말에 반박하거나 추가 질문을 하면 상담 직원은 “빨리 입금해야 한다. 내가 A 씨를 위해 다른 고객 제쳐놓고 상담하고 있으며, 전산팀에 말해놓은 상태”라고 엄포를 놨다. ‘다 때려 부수고 그냥 나가겠다’는 등 자꾸 독촉하는 직원 흐름에 휩쓸려 A 씨는 330만 원, 380만 원, 420만 원 등 몇 차례에 걸쳐 1600만 원을 입금했다. 보이스피싱 조직원이 요구한 1890만 원에서 291만 원 남은 상태에서 조직원은 “전산팀 직원이 답답하다. 처리가 안 돼 내일로 미뤄졌다”고 말했다. 보이스피싱 팀이 A 씨를 다음 날 또 작업하기 위해 출금 신청 상태에서 진행하지 않고 남겨둔 상태로 보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다음날이 되면서 주변에 이런 사실을 밝힌 A 씨도 보이스피싱에 당했다는 점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상담팀 직원이 291만 원을 요구하자 A 씨는 “돈 돌려주세요. 많이 안 바랄 테니 1000만 원만 돌려달라”고 간절히 빌었다. 이에 상담팀 직원은 돌변해 “6000만 원을 주겠다. 대신 받을 경우 3000만 원 각서나 차용증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상담팀 직원은 A 씨에게 “차용증만으로는 믿기 힘들다. 안 주면 찾아갈 수 있게 당신 주소를 불러달라”고 말했다.
이어 상담팀 직원은 “나도 보이스피싱 조직 알면 죽는다. 목숨 걸고 하는 거다. 대신 차용증 들고 상체를 탈의하고 사진을 찍어 보내라”라고 요구했다. 이에 A 씨는 욕을 하며 “상체를 왜 탈의하냐”고 했고, 상담팀 직원은 “나도 확실하게 해야지. 일수 업체에서는 300만 원, 500만 원만 빌려도 신용 안 좋으면 모든 걸 받는다. 3000만 원 걸려 있는데 나도 보험 정도는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대화 방법은 앞서 가스라이팅 수법과 상당히 비슷했다. 상담팀 직원은 “사진 찍어서 보내든, 고소하든 맘대로 하라. (안 보내면) 아무것도 없다. 기회를 준 거다”라며 “관리자가 4시 전에 돌아오니까 그전까지 안 되면 나도 못 한다. 알아서 판단하라”고 말했다. 서초동에서 보이스피싱 관련 상담을 많이 한 법조계 인사는 “이런 방식은 본 적이 없다. 신종 수법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행히 A 씨는 주변에 상담하고 가스라이팅에서 깨어난 뒤라 걸려들지 않았지만, 이 같은 수법에 걸려들었다가는 'n번방'과 같은 협박에 시달렸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보이스피싱 조직은 어차피 6000만 원을 줄 생각이 전혀 없다. 만약 A 씨가 사진을 보냈을 경우 보이스피싱 조직은 미리 주민등록증을 받아둔 데다 현재 사는 주소까지 알아둔 상태기 때문에 사진으로 협박하는 방식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
A 씨는 “보이스피싱 조직이 갑자기 차용증을 요구하다가 나체 사진을 달라고 하는 흐름이 많이 해본 솜씨였다. 이들에게 걸려들면 나체 사진으로 협박 당해 엄청난 돈을 뜯긴다고 해도 고소조차 하지 못할 것”이라고 토로했다.
차용증은 나체 사진을 얻어 내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기 때문에 차용증에 적힌 이름 등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다만 대포통장을 통해 이들 조직을 따라가다 보면 꼬리가 밟힐 수도 있다. 전직 수사기관 관계자는 “보이스피싱 조직은 해외에 체류하며 대포통장을 이용하는 등 철저히 자신을 숨겨 수사하기 까다롭다. 그런데도 최근 해외에서 인터폴과 공조를 통해 체포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A 씨는 경찰서에 고소장을 접수해둔 상태다. A 씨는 “궁지에 몰린 심리 상태로 나체 사진을 준 피해자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들을 꼭 잡아, 추가 피해자들을 지옥에서 구출해줬으면 한다”고 호소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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