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팍팍한 시기에 6월 말 넥슨이 문화체육관광부와 1200억 원 규모의 게임 전문 투자 기금 출범을 발표했다. 이는 닫혀가는 한국 게임 산업의 성장판을 다시 여는 귀한 마중물이다. 산업의 맏형 격인 대기업이 정부와 함께 산업 투자의 결단을 내린 점은 무척 고무적이다.
그러나 자본 수혈만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이 평탄해질 리 만무하다. 거대 플랫폼이 쳐놓은 '디지털 통행세'라는 독점적 굴레를 끊어내지 않으면 백약이 무효다. 과거에는 공장과 자본이 산업을 주도했다면, 이제는 데이터와 플랫폼을 선점한 빅테크 기업이 주도한다. 그들이 포식자처럼 시장의 룰을 쥐락펴락한다. 이대로 방치하면 우리 기업과 국민은 영구적인 디지털 종속을 피할 수 없다. 일회성 투자를 넘어 무너진 디지털 주권을 되찾고, 생태계를 복원할 근본적 처방이 절실한 시점이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구글은 2019년 7월부터 2026년 3월까지 약 6년 9개월 동안 넥슨, 엔씨소프트, 넷마블, 컴투스, 펄어비스 등 국내 게임 5사와 GVP(Game Velocity Program)라는 은밀한 계약을 체결했다. 구글은 30%의 앱 내 결제 수수료를 징수하고, 이를 유튜브 광고비나 클라우드 이용권 등으로 제공하는 변칙적 리베이트를 운영했다. 그들만의 폐쇄적인 거래에서 오간 관련 매출만 약 14조 1600억 원에 이른다.
바깥세상은 어떠한가. 미국은 대체 결제 수수료가 실질적으로 0%이며 유럽은 17% 수준으로 조정되었고, 일본조차 MSCA법(Mobile Software Competition Act, 스마트폰 소프트웨어 경쟁촉진법)을 시행하여 작년 12월부터 구글과 애플 모두에게 20%~10%의 외부 결제 수수료를 강제 적용함으로써, 한국보다 훨씬 적은 수수료를 부담하고 있다. 그런데 유독 한국 시장에서만 30%의 족쇄가 굳건하다. 이는 단순한 폭리를 넘어 명백한 디지털 차별이요, 주권 침해다.
기울어진 운동장 바깥으로 밀려난 중소 게임사와 소비자는 그 청구서를 고스란히 떠안았다. 이로 인해 공정 경쟁에서 배제된 중소 게임사와 소비자는 불공정한 환경 속에서 막대한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다. 지난 4년간 발생한 누적 피해액은 약 10조 원에 이른다. 불공정 구조는 중소 개발사의 생존을 직접 위협하고, 결국 소비자 가격 인상을 초래하여 국가 경제 전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대형 게임사를 직접 제재 명단에서 제외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거대 플랫폼의 무소불위 권력 앞에서는 덩치 큰 대형사조차 철저한 '을(乙)'이자 피해자였음을 국가 기관이 인정한 셈이다.
그러나 과거 불가피했던 선택이 미래의 침묵을 정당화하는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지금은 과거를 들춰 도덕적 책임을 묻기보다, 산업 전체가 연대하여 피해를 극복하고 시장 질서를 바로잡아야 할 결정적 시기다.

이번 협상은 철저한 비밀 유지와 보복 금지 약정 등 실효성 있는 안전장치를 갖추고 있기에, 어떠한 영업상 불이익이나 부담 없이 권리를 회복할 기회다. 대형 게임사들은 더 이상 눈치 보는 방관자로 머물러선 안 된다. 중소 게임사, 소비자와 굳게 연대하여 플랫폼 독점에 맞서는 상생의 선봉장으로 나서야 한다.
나아가 진정한 동반성장을 이루려면, 중소 게임사가 경쟁력을 제고하고 온전히 자립할 수 있는 실질적인 해결책이 제시되어야 한다. 협상에 따라 반환될 배상금 중 일부를 마중물 삼아 민간 주도의 상생 기금을 조성하는 논의가 그 첫 단추가 될 것이다.
이 기금을 통해 영세 개발사가 독립적인 마케팅과 데이터 분석을 가능케 하는 필수 솔루션을 보급하고, 서버 인프라 및 R&D(연구개발) 지원을 대폭 늘려야 한다. 빅테크 플랫폼에 종속된 생태계의 체질을 개선하기 위해 물고기를 주는 것을 넘어 그물 짜는 방법을 제공하자는 의미다. 아울러 이 기금은 게임 과몰입 예방과 소비자 보호 등 건전한 게임 문화 확립에도 쓰여야 한다.
디지털 주권 회복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다. 글로벌 빅테크기업의 불공정 규칙에 종속된 상태를 벗어나, 우리 스스로 시장의 올바른 규칙을 세우고 창작자와 소비자의 권리를 되찾는 실천이다. 대형 게임사는 과거 GVP 참여 사실로 인하여 과도하게 위축되거나 법적 책임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의 선택이다. 집단조정 참여는 특정 기업을 향한 공격이 아니라, 지속 가능하고 건강한 생태계를 만들기 위한 상생의 행동이다.
넥슨, 엔씨소프트, 넷마블, 컴투스, 펄어비스 등 대형 게임사는 물론 중소 게임사까지 아우르는 한국 게임 산업계 전체가 굳건히 연대하여 대한민국 디지털 주권의 확립과 동반성장을 위한 용기 있는 실천에 나서주기를 기대한다.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디지털주권회복시민위원회 명예위원장 journalist@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