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삼성 전원 재계약…몸값 상한선으로 새얼굴 연령 하향 조정, 기존 선수 몇몇은 빅리그 노크 가능성
올겨울에도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한 외국인 선수 이동이 스토브리그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충분한 실력을 인정 받아 이전보다 더 높은 금액에 재계약을 해낸 선수가 있는 반면 특별한 장점을 보여주지 못했거나 성적이 기대에 미치지 못 해 짐을 싸는 선수도 나왔다. 이들의 빈자리는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새 외국인 선수들이 다시 채우고 있다.
#누가 남았나
프로야구 원년에 창단한 롯데 자이언츠와 삼성 라이온즈는 올해 함께한 외국인 선수 삼총사와 전원 재계약했다. 두 팀 모두 가장 안전하면서도 현명한 선택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굳이 이들보다 더 좋은 외국인 선수를 물색하는 모험을 감행하는 대신, KBO리그의 야구와 한국 문화에 적응을 마친 선수 여섯 명과 안전한 동행을 이어가기로 했다. 외국인 선수가 KBO리그에서 성공하려면, 화려한 경력과 이름값이 아닌 '적응'이 1순위 필수 조건이어서다.
올 시즌 8위 롯데는 원투펀치인 댄 스트레일리와 찰리 반즈, 외야수 잭 렉스가 모두 잔류했다. 스트레일리는 지난 8월 대체 선수로 KBO리그로 복귀할 당시, 이미 2023시즌 연봉 100만 달러를 포함한 다년 계약을 한 상태였다. 반즈는 125만 달러를 받고 잔류했고, 스트레일리처럼 시즌 도중 대체 외국인 타자로 합류한 렉스는 130만 달러에 부산 생활을 연장했다.
올해 외국인 선수 농사만큼은 풍년이었던 7위 삼성도 마찬가지다. 지난 7일 데이비드 뷰캐넌(160만 달러), 호세 수아레즈(130만 달러), 호세 피렐라(170만 달러)와 동시에 재계약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리그 최강의 외인 트리오를 그대로 보유하게 된 셈이다. 특히 뷰캐넌은 4년 연속 삼성 유니폼을 입게 돼 다린 러프(2017~2019년)를 넘어 역대 구단 최장수 외국인 선수로 기록됐다. 뷰캐넌은 올 시즌 11승 8패, 평균자책점 3.04를 기록했고, 승운(6승 8패)이 따르지 않은 수아레즈도 30경기에서 평균자책점 2.49를 기록하면서 제 몫을 했다. 또 피렐라는 올 시즌 득점 1위이자 타율·홈런·타점·안타·출루율 2위에 오르면서 명실상부한 리그 최고 외국인 타자로 활약했다.
LG도 올해 31승을 합작한 켈리, 플럿코와 내년 시즌 재계약에 성공하면서 우승 재도전의 발판을 마련했다. 4시즌 통산 58승에 빛나는 '꾸준함의 상징' 켈리는 연봉 180만 달러에 5번째 도장을 찍어 LG 구단 최장수 외국인 선수가 됐다. 올 시즌 LG에 처음 합류했던 플럿코도 15승을 올린 공을 인정받아 140만 달러에 재계약했다.
KT 위즈는 투수 웨스 벤자민과 타자 앤서니 알포드가 나란히 대체 외국인선수 성공 신화를 썼다. 둘 다 전임자들의 이탈로 시즌 도중 뒤늦게 합류했지만, 빠르게 리그에 적응하면서 KT의 포스트시즌 진출에 힘을 보탰다. 그 결과 벤자민은 130만 달러, 알포드는 110만 달러에 기분 좋게 사인했다.
KIA 타이거즈 팬들 역시 내년에도 광주 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ㅅ 세리머니'를 마음껏 할 수 있게 됐다. 초반 부진을 털고 효자 외국인 타자로 등극한 소크라테스 브리토가 11월 초 일찌감치 110만 달러에 재계약을 완료한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해결사 역할과 견실한 중견수 수비를 동시에 해내며 KIA 타선의 중심을 든든히 지켰다. 팬들의 '떼창'을 유발하는 응원가 열풍을 일으키며 많은 팬의 사랑도 받았다.
#새 얼굴은 누구?
KBO리그 신규 외국인 선수의 몸값 상한선은 100만 달러다. 처음 제도가 시행될 때만 해도 정상급 외국인 선수를 데려오기 힘들 것이라는 우려가 지배적이었다. 최근 상황은 예상과 다르다. 체력이 좋고 장래가 유망한 20대 젊은 마이너리거들이 한국에 와서 많은 경기에 출전하며 기량을 끌어올린 뒤 메이저리그(MLB)에 재진입하는 '역수출'에 성공하고 있다. 트리플A에서 일단 가능성을 입증한 유망주들이 KBO리그에서 잠재력을 터트려 다시 MLB의 눈도장을 받게 되는 구조다. 이 때문에 구단들도 과거와 달리 빅리그 경력보다는 현재 몸 상태, 구속과 구위, 스태미너 등에 포커스를 맞춰 새 외국인 선수를 선발하고 있다.
기존 투수 두 명(로버트 스탁, 브랜든 와델)과 모두 결별한 두산은 1996년생인 딜런 파일과 65만 달러라는 비교적 저렴한 금액에 계약했다. 파일은 앞서 언급한 최근의 추세에 부합하는 선수다. 일단 나이가 26세로 어리고, MLB 등판 경험 없이 마이너리그에서만 통산 102경기(선발 90경기)에 나와 34승 29패, 평균자책점 4.04를 기록했다.
그러나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는 게 두산의 평가다. 최고 시속 152㎞의 직구와 정교한 커브, 슬라이더, 체인지업 등을 구사한다. 두산 관계자는 "변화구 3개를 모두 결정구로 사용할 정도로 뛰어난 제구력을 갖추고 있다"고 전했다. 두산은 KBO리그와 수준이 비슷한 트리플A에서 딜런이 보여준 구위와 이닝 소화능력에 기대를 걸고 있다.
이뿐만 아니다. 두산은 지난 4년간 한솥밥을 먹은 외국인 타자 호세 미구엘 페르난데스를 내보내고 1993년생 내야수 호세 로하스를 새로 영입했다. 몸값 상한선 100만 달러를 꽉 채운 로하스는 MLB(2시즌 통산 83경기 출전) 성적이 썩 좋지 않지만, 트리플A에서 장타력을 보여줬고 내야 여러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다.
올해 우승팀 SSG 랜더스가 새로 영입한 커크 맥카티(77만 5000 달러), KT가 오드리사머 데스파이네의 대체자로 선택한 투수 보 슐서(74만 달러), 키움 히어로즈의 새 외국인 투수 아리엘 후라도(100만 달러) 등도 비슷한 사례다. 27세인 맥카티와 28세인 슐서는 둘 다 올해 처음으로 MLB 마운드를 밟았다. 26세의 후라도는 2018시즌 빅리그에 데뷔해 3시즌 통산 45경기에서 12승을 올린 경력 덕에 다른 두 투수보다 몸값을 좀 더 받았다. 미국 언론은 "후라도는 키움에서의 활약을 발판 삼아 MLB에 재도전할 것"이라고 내다보기도 했다.
물론 100만 달러 상한선이 베테랑 선수들의 KBO리그행에 무조건 걸림돌이 되는 것도 아니다. 여전히 MLB에서 제법 이름을 날린 뒤 KBO리그로 오는 선수도 적지 않다. 올겨울 새로 오는 외국인 선수 중 가장 이름값이 높은 LG 외국인 타자 아브라함 알몬테가 그렇다.
1989년생인 우투양타 외야수 알몬테는 지난 6일 총액 80만 달러에 LG와 사인했다. 2013년 시애틀 매리너스에서 빅리그에 데뷔한 뒤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캔자스시티 로열스,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보스턴 레드삭스 등 7개 구단을 거치면서 10시즌을 MLB에서 뛰었다. 주전보다는 백업으로 주로 나선 탓에 성적은 통산 455경기 타율 0.235, 홈런 24개, 118타점, 도루 24개가 전부다. 그래도 여러 팀이 끊임없이 그를 데려갔을 만큼 다재다능하다. 다만 2016년 2월 도핑테스트에서 금지약물 성분이 검출돼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선수 자신은 "의도적으로 금지약물을 복용한 적이 없다"며 부인했다.
KIA가 100만 달러를 채워 데려온 숀 앤더슨도 MLB 야구팬에게는 꽤 익숙한 선수다. 그는 2019시즌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서 빅리그에 데뷔해 미네소타 트윈스, 볼티모어 오리올스,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토론토 블루제이스 등에서 4시즌 통산 63경기에 등판했다. 통산 성적은 3승 5패, 평균자책점 5.84. 큰 키에서 내리꽂는 최고 시속 154㎞의 직구와 슬라이더, 투심패스트볼, 커브, 체인지업 등의 다양한 변화구가 강점으로 꼽힌다.
#KBO리그는 좁다
반대로 몇몇 선수는 과거 메릴 켈리, 에릭 테임즈, 크리스 플렉센, 브룩스 레일리, 아드리안 샘슨이 그랬듯 KBO리그에서의 활약을 발판 삼아 다시 MLB 진출을 꾀할 가능성이 보인다. 꼭 MLB가 아니라도 제리 샌즈, 데이비드 허프, 멜 로하스 주니어, 라울 알칸타라처럼 더 많은 돈을 받고 일본 프로야구에 진출하는 선택지도 존재한다. MLB는 야구선수 모두가 뛰고 싶어 하는 최고의 무대고, 일본 구단들은 한국 구단들과의 '머니 게임'에서 백전백승이다. 선수들 역시 원소속팀의 재계약 제안과 새로운 도전 사이에서 갈등을 거듭할 수밖에 없다. '용의 꼬리'가 될 것이냐, '뱀의 머리'가 될 것이냐의 고민이다.
지난 4시즌 동안 키움의 에이스로 마운드를 지킨 에릭 요키시는 MLB 복수 구단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 미국 휴스턴 지역 언론은 "휴스턴 애스트로스, LA 에인절스, 시애틀이 요키시에게 관심을 보인다. 빅리그 복귀를 위해 한국을 떠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요키시는 2019년 키움에 입단해 4시즌 동안 118경기에서 51승 33패 평균자책점 2.71을 남긴 특급 왼손 투수다. KBO리그의 많은 감독이 '상대팀 선발로 나왔을 때 가장 까다로운 투수' 중 한 명으로 주저 없이 요키시를 꼽는다.
키움은 일단 요키시와의 재계약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요키시의 에이전트 측에 재계약 요청 서류를 전달했고, 초조하게 선수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요키시와의 재계약이 불발될 경우 키움은 후라도와 짝을 이룰 에이스급 외국인 투수를 새롭게 물색해야 한다.
NC 다이노스 에이스 드류 루친스키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미국 언론이 11월부터 꾸준히 루친스키의 MLB 복귀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다. 루친스키는 최근 MLB 자유계약선수(FA) 랭킹 33위에 이름을 올렸고, MLB 선수 이적 소식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트레이드 루머스'는 아예 2년 900만 달러라는 구체적인 계약 규모를 점치기도 했다. 미국의 유명 야구 기자 존 모로시 또한 자신의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루친스키가 몇몇 MLB 구단의 관심을 받고 있다"고 썼다.
루친스키는 당초 MLB에서 크게 빛을 보지 못한 투수였다. 그러나 2019년 NC 유니폼을 입고 KBO리그에 데뷔한 뒤 4시즌 통산 121경기에서 53승 36패, 평균자책점 3.06, 탈삼진 657개를 기록하는 리그 최정상급 투수로 자리매김했다. 2020년 NC의 창단 첫 통합 우승을 이끈 주역이기도 하다. 올해도 강했다. 외국인 선수 최고 몸값(200만 달러)을 받으면서 31경기에서 193과 3분의 2이닝을 소화하고 10승 12패, 평균자책점 2.97, 탈삼진 194개라는 정상급 성적을 올렸다. NC는 일단 보류선수 명단에 루친스키를 포함하며 재계약 의지를 드러냈다. 그러나 MLB의 러브콜이 구체화한다면, 루친스키의 잔류는 불투명하다. 주전 포수이자 타선의 핵심 양의지를 이미 두산으로 보낸 NC 입장에선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올해 SSG의 통합우승을 이끈 윌머 폰트도 시즌이 끝난 뒤 해외 진출을 이유로 구단에 재계약 불가 방침을 알렸다. 폰트는 KBO리그 2년 차인 올해 28경기에서 13승 6패, 평균자책점 2.69로 활약하면서 SSG의 통합 우승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SSG 구단은 당연히 폰트를 재계약 대상자로 분류했지만, 폰트는 해외 진출을 결심하고 KBO리그에서의 2년 생활에 작별을 고했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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