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성현 박현준이 경기조작 혐의를 인정하면서 파문이 일단락될 전망이다. 지난해 프로야구 개막전 두산베어스와 LG트윈스의 경기.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2월 28일 대구지검은 LG 투수 김성현을 프로야구 경기조작 혐의로 긴급 체포했다. 체포 전까지 김성현은 경기조작 가담 여부를 묻는 말에 “절대 그런 일이 없다”며 극구 부인했다. 소속구단 LG에서도 “자체 조사를 벌였지만, 그때마다 김성현이 결백을 주장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김성현의 태도는 변했다.
체포를 앞두고 김성현은 적극 부인하던 태도에서 “곧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는 모호한 말로 자신의 입장을 대신했다. 아니나 다를까. 검찰에 체포되자 적극 부인으로 일관하던 김성현은 순순히 혐의를 인정했다.
검찰에 따르면 김성현은 구속된 브로커 K 씨와 짜고 지난해 두 번에 걸쳐 고의로 1회 첫 볼넷을 기록했다. 검찰 수사결과 경기조작 일자는 지난해 4월 24일 넥센-삼성전, 5월 14일 넥센-LG전이었다. 이때만 해도 김성현은 넥센 소속이었다. 김성현은 두 번의 경기조작 대가로 K 씨로부터 사례금 1000만 원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때만 해도 LG는 박현준에게 일말의 희망을 걸고 있었다. 김성현과 함께 경기조작 가담자로 알려졌던 박현준은 수사 초기부터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검찰이 브로커 K 씨로부터 “경기조작 대가로 박현준에게 600만 원을 줬다”는 진술을 받아냈음에도 박현준은 “경기조작은 고사하고, 브로커를 만난 적도 없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나 박현준은 검찰 조사를 받자마자 혐의사실을 인정했다. 김성현에 이어 박현준에게마저 배신당한 LG는 검찰 최종 수사 발표와 관계없이 두 선수를 전격 퇴단시키는 초강수를 뒀다. 여기서 잠시 주목할 말이 있다. LG 관계자의 말이다. 바로 “김성현과 달리 박현준이 (경기조작에) 가담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LG 관계자의 의문은 두 선수의 가정환경에서 출발한다. 모 야구인은 “과거부터 김성현의 가정형편이 그리 좋지 않았다”고 기억했다. 이 야구인에 따르면 고교 시절엔 야구부 회비를 내지 못할 정도로 집안이 궁핍했다. 반대로 박현준은 부친이 전주에서 작은 공장과 술집을 운영하며 대학 시절까지 순탄하게 생활했다. 김성현이 경제적 이유로 경기조작에 가담했다면, 박현준은 그럴 이유가 없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김성현과 박현준은 어떤 이유로 경기조작에 가담한 것일까. 그 이유를 알려면 두 선수에게 경기조작 가담을 제의한 것으로 알려진 브로커 K 씨의 정체를 알아야 한다.
K 씨는 2004년까지 서울 광문고에서 투수로 뛰었다. 그러다 2005년 광문고 야구부가 해체되면서 제주관광고로 전학 갔다.
K 씨가 전국무대에 이름을 날린 건 2005년이었다. 그해 3월 제주관광고에 성낙수 감독이 부임하면서부터였다. 성 감독은 “K가 체격만 좋았지, 연습량이 부족해 공을 제대로 던지지 못했다”며 “한 달 동안 배팅볼만 던지는 훈련을 시켰다”고 회상했다. 맹훈련으로 거듭난 K 씨는 그해 7월에 열린 봉황대기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팀도 이 대회 16강에 진출하며 창단 이래 가장 좋은 성적을 냈다. 덕분에 제주관광고 선수들은 대학 특기생 자격을 획득했고, K 씨는 이듬해 영남대에 입학했다. 2000년 제주관광고 야구부 창단 이래 첫 대학입학 특기생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K 씨는 영남대 입학 이후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했다. 발가락 부상 탓이 컸다. 영남대 관계자는 “K 씨는 대학 시절 발가락이 아파 거의 등판하지 않았다”며 “성격도 조용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게 슬며시 졸업했다”고 기억했다.
고교 시절부터 말수가 적었던 까닭에 K 씨는 친구도 많지 않았다. 뚜렷한 성적도 없어 그를 주목하는 프로 스카우트도 없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야구계에선 K 씨를 모르는 이가 없었다. K 씨의 대학 후배는 “아마추어 야구계에서 ‘로또 김’을 모르면 간첩이란 소릴 들었다”고 귀띔했다.
‘로또 김’은 K 씨의 아버지가 로또 1등에 당첨됐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었다.
K 씨의 고교 동기생 아버지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2003년만 해도 K는 야구부 회비도 제때 내지 못하는 가난한 선수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 K의 아버지가 아들의 밀린 회비를 일시불로 냈다. 여기다 자가용도 대형 세단으로 바꾸었다. 다른 학부모들이 ‘무슨 일인가’ 싶어 K의 아버지에게 물었지만, 그때마다 K의 아버지는 ‘선친이 물려주신 땅을 운 좋게 팔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러다 술자리에서 K의 아버지가 무심코 ‘로또 1등에 당첨됐다’는 사실을 털어놨다.”
당시 1등 당첨으로 K의 아버지가 손에 쥔 돈은 30억 원가량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로또 1등이 K의 가정에 행운으로만 작용한 건 아니었다. K의 아버지는 1등 당첨 이후 송사에 자주 휘말렸다. 다른 학부모와 동업으로 사업을 시작했다가 관계가 틀어지고, 투자 배분 문제로 이견을 빚다가 결국 법정까지 가게 된 것이었다. 아내와의 관계도 1등 당첨 이후 매우 소원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나 K 씨에게 ‘로또 김’이란 별명은 상처 그 자체로 작용했다.
K 씨의 대학선배는 “K가 ‘로또’ 소리만 들어도 귀를 틀어막았다”며 “아버지의 로또 1등 당첨과 자신을 결부시키는 걸 끔찍이도 싫어했다”고 회상했다. 이 선배는 “주변에서 K를 볼 때마다 ‘쟤는 아버지가 돈이 많아 야구를 그만둬도 아쉬울 게 없다’는 말을 자주 했다”며 “그런 말들이 가뜩이나 부상으로 야구와 멀어지던 K가 더 일찍 야구를 포기하도록 하는 역할을 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K는 영남대 졸업 이후 야구와 담을 쌓았다. 제주와 대구에서 그를 봤다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간간이 ‘아버지로부터 돈을 받아 치킨가게 등을 운영한다’는 소식만이 들릴 뿐이었다.
K 씨가 다시 야구계의 화제가 된 건 지난 2월이었다. 대구지검이 프로야구 경기조작을 수사하며 핵심 브로커로 K 씨를 검거한 직후였다. 지검은 “K 씨가 김성현, 박현준에게 경기조작 가담을 제의하고, 실제로 두 선수와 경기조작을 모의하고서 그 대가로 돈까지 지불했다”고 발표했다.
K 씨가 경기조작의 주범임이 알려지자 그를 아는 야구인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K가 그럴 리 없다”는 게 대부분의 반응이었다. 일부에선 “K도 누군가의 꼬임에 빠져 브로커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동정론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검찰 안팎에선 K 씨가 경기조작을 주도했고, 선수 포섭에도 적극적으로 나선 것으로 보고 있다. 대구의 한 법조인은 “K와 김성현은 과거 함께 동거하던 절친한 선후배 사이였다”며 “K가 브로커였음을 김성현이 이미 알고, K의 경기조작 가담에 적극 협력했을 것”으로 봤다. 돈이 궁했던 김성현이 K 씨와 짜고 경기조작에 참여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박현준은 알려진 것처럼 김성현을 통해 K 씨와 접촉했던 것일까.
아니다. 검찰 내부 소식통에 따르면 박현준은 이미 대학 시절부터 K 씨와 알고 있었다. 김성현을 거치지 않고, K 씨와 박현준이 직접 만나 경기조작을 공모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박현준을 잘 아는 모 야구선수는 “박현준이 의리 때문에 경기조작에 참여하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역시 돈 때문이었을 것”이라는 게 이 선수의 주장이다.
“지난해 박현준의 연봉이 4300만 원이었다. 또래 젊은 샐러리맨보다 많아 보이지만, 프로야구 선수 가운데는 하위권이다. 젊은 선수 중에선 품위 유지 차원에서 외제차를 몰려고, 은행 대출을 받거나 사채를 끌어다 쓰기도 한다. 그런 선수들에게 400만~500만 원 정도의 가욋돈은 꽤 짭짤한 수입이다. 아마 박현준도 ‘아무도 모르게 챙길 수 있는 부수입’에 관심이 갔을 것이고, 그래서 K의 제의를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러니까 가정형편과 상관없이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유혹에 넘어갔다는 뜻이다. 하지만, 유혹의 대가는 너무도 컸다. 두 선수는 소속구단 LG로부터 퇴단 조치됐고, 법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 만약 법정에서 유죄가 선고된다면 KBO로부터 영구제명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두 선수는 국외리그에서도 뛸 수 없다. 미국, 일본, 타이완 등 국외리그에서 뛰려면 KBO의 신분조회를 통과해야 하는데 영구제명은 신분조회에서 심각한 결격사유로 등재되기 때문이다.
K 씨 역시 법의 심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경기조작의 핵심 브로커로 지목된 데다 혐의 내용이 대부분 사실로 드러나 김성현, 박현준보다 더 강력한 처벌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K 씨의 고교 동기는 “친구라도 잘못을 했으면 법의 엄중한 심판을 받는 게 당연하다”면서도 “K의 아버지가 로또 1등에 담첨되지 않았다면 친구의 인생이 이렇게 까진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만약 친구의 아버지가 지금도 어렵게 살았다면 K는 마운드 위에서 집안을 살리기 위해 열심히 투구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의 로또 1등 당첨을 보면서 K는 땀의 대가보다 더 빠른 지름길을 알게 됐다. 그 지름길이 인생을 망치는 악마의 유혹이었다는 걸 진즉에 알았더라면 어땠을까 싶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이번 사건이 남은 인생의 교훈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
▲ 박현준과 김성현. 연합뉴스 |
양치기 소년들 삼진아웃
김성현, 박현준 두 소속 투수의 경기조작 가담 여부에 침묵으로 일관하던 LG가 칼을 빼들었다. 3월 6일 LG는 보도자료를 통해 팬들에게 정중히 사과하며 두 선수의 거취를 공식발표했다. 결론은 퇴단조치였다.
이유는 두 가지다. 먼저 거짓말이다. 김성현과 박현준은 경기조작 가담 여부를 묻는 말에 처음부터 끝까지 “모르는 일”이라고 발뺌했다. 박현준은 검찰에 소환되기 전까지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다. 하지만, 두 선수는 정작 검찰 조사를 받을 땐 ‘언제 그랬냐’는 듯 혐의를 순순히 인정했다. 끝까지 두 선수의 말을 믿고, 보호한 LG로서는 기가 찰 노릇이었다.
두 번째는 경기조작의 중대함이다. 모든 스포츠에서 ‘페어플레이’는 기본 이념이다. 야구는 더하다. 다른 종목과 달리 경기당 4명 이상의 심판이 등장하는 야구는 엄격한 판정과 규칙 준수를 생명으로 한다. 그런 야구에서 경기조작은 야구존립을 위협하는 암세포이자, 엄연한 범법행위다. LG가 두 선수에게 강경조치를 취한 것도 경기조작이 전체 야구계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 때문이었다.
사실 LG는 두 선수가 순순히 혐의를 인정하기 전까지 “소속 선수를 지나치게 두둔한다”는 비판을 들었다. 일부에선 “결과가 뻔한데 LG만 두 선수에게 속고 있다”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그럼에도 LG가 두 선수의 무혐의를 확신하며 언론으로부터 보호한 건 전적으로 선수들의 진술을 믿었기 때문이었다.
LG 관계자는 침통한 표정으로 “박현준의 경우 검찰 청사에 들어가기 전까지 그의 말을 믿었다”며 “구단이 사법기관이 아닌 이상 선수가 혐의를 부인하면 선수 말을 믿을 수밖에 없는 처지”라고 털어놨다.
이번 사건으로 LG는 ‘사고구단’이라는 오명을 또 한 번 듣게 됐다. 하지만, 야구계는 LG의 강경책에 대해선 “이전과 다른 태도”라며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LG는 소속선수들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킬 때마다 엄중하게 책임을 묻는 대신 당장의 성적을 위해 제식구 감싸기에만 급급했다. 2009년 대구지법에서 소속투수 A가 채무변제를 하지 않아 법정구속됐을 때가 대표적이다.
당시 LG는 A에게 잔여연봉을 선지급해 밀린 채무를 갚도록 하고, 조기석방될 수 있도록 애썼다. 주변에서 “과거에도 상습도박으로 팀워크를 저해한 A에게 강력한 경고를 전달해야 한다”고 조언했지만, LG는 A가 석방되자마자 1군 선수로 등록해 경기에 출전시켰다. 그러나 A는 지난해 자살사건에 휘말리며 선수단을 무단이탈했다. 뒤늦게 LG가 A를 방출하긴 했지만, 팀워크는 깨질 대로 깨진 후였다.
야구계는 이번 LG의 초강수를 ‘더는 선수들에게 끌려다니지 않겠다’는 의지로 풀이하고 있다. [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