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지역에서 "큰 손"으로 불린다는 정 할머니(가명). 탁월한 투자 감각과 선구안으로 몇 십억 짜리 부동산을 소유했을 뿐만 아니라,지역 내 기부천사로 유명하다고 했다. 그런데 6년 전 친동생들과 생긴 오해로 잠적을 한 뒤 돌연 연락두절이 되었다.
정 할머니 동생들은 "경북 북부 노인 보호기관 쉼터에서 연락이 왔어요. 정양숙(가명) 아냐고. 우리 언니인데 우리가 언니를 못 찾았는데 요새 개인정보보호 때문에 언니를 찾을 수가 없거든요. 숨으면"이라고 말했다.
동생들에게 6년 만에 안부를 전해준 곳은 다름 아닌 노인보호전문기관이었다. 정 할머니가 아들로부터 학대를 받아 보호조치가 취해졌다는 것. 젊은 시절 재혼가정을 꾸리긴 했지만 남편과 사별 후 자식없이 몇 십 년을 혼자 살아왔다는 정 할머니.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동생들이 정 할머니의 가족관계증명서를 확인해 보니 정말 자녀 란에 낯선 이름이 기재되어 있었다. 남잔 정 할머니와 같은 아파트에 살던 이웃 할머니의 사위 오 아무개 씨(가명)였다. 평소 혼자 지내는 정 할머니에게 음식을 가져다주며 싹싹하게 굴곤 했다고 한다.
정 할머니는 "(오 씨가) 날 보고 양자해달라고 하더라고요. 내가 동생이 여섯 명이나 있는데 니를 왜 양자를 하노? 그랬더니 나를 시청 있잖아요. 거기 그냥 시청 볼 일이 있는데 같이 가자고 그래가지고 갔거든요. 그땐 내가 많이 좀 흐릿할 때래요. 치매가 심해가지고"라고 말했다.
할머니의 휴대전화 속에는 흐릿한 기억을 대신해줄 자료들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입양 절차가 이루어지던 그날 정 할머니를 창구와 먼 의자에 앉혀놓고 할머니의 주민등록증과 인감도장을 가져가 스스로 양자가 된 오 씨. 게다가 양자가 되기 전 자신의 지인에게 정 할머니의 땅을 판 뒤 6000만 원을 가져가는가 하면 할머니에게 성적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
오 씨가 정 할머니의 양자가 되려고 한 진짜 목적과 계획은 무엇이었을지 치매 노인에게 양자 행세를 한 남자의 흔적을 추적해본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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