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성근 감독은 새로운 야구인생 도전과 SK 감독직 사퇴에 대한 속내를 숨김없이 털어놨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먼저, 프로 2군 팀들과 연습경기를 치르면서 승수를 올리고 있다. 선수들에게 큰 동기부여가 될 것만 같다.
▲일본 전지훈련 동안 일본 독립리그, 실업팀과의 연습 경기에서 7승3패를 거둔 덕에 어느 정도 선수들 실력이 올라왔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 획기적인 변화가 왔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러나 LG 2군을 상대로 1승1패를 거두는 모습에 내가 잠시 착각했던 게 아닌가 싶다. 고양원더스의 현주소를 읽을 수 있었다는 게 솔직한 심정일 것이다.
―단순히 2군팀과 상대해서 패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렇게 생각하셨을 것 같진 않다.
▲야수는 훈련과 노력을 통해 어느 정도 만들어 갈 수 있다. 그러나 투수는 연습을 통해 바뀌기가 어렵다. 타고난 부분이 존재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 팀의 투수난은 심각하다. 2군 벽을 실감했고, 앞으로 해야 할 숙제들이 더 많아진 듯한 느낌이 든다.
―3개월 만에 이 정도의 성장을 이룬 건 대단한 거 아닌가. 너무 욕심이 많으신 것 같다.
▲지난 12월 14일, 선수들과 처음 대면한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지금까지 항상 어려운 길을 걸어왔듯이 고양원더스를 맡는 부분도 그 연장선상이라고 생각했다. 해왔던 대로 가르치면 되겠지 했는데, 막상 선수들을 보니까 걱정이 앞서더라. 어떻게 하나? 이 선수들을 데리고 뭘 할 수 있을까? 이렇게 해서 정말 팀을 만들 수 있는 걸까? 하는 의문부호들이 끊이질 않았다. 한마디로 선수답지 않은 선수들이 너무 많았다. 내가 야구를 쉽게 본 것 같다. 만들면 될 것이라고 믿었던 부분들,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던 부분들이 ‘착각’이란 단어와 맞물리는 것 같다.
―프로야구팀 감독 출신이 독립리그팀을 맡는다는 게 쉬운 선택은 아니었을 것이다.
▲내가 어디서 어떤 모습을 하고 있어도 내가 하는 건 야구다. 만약 독립리그가 아닌 대학팀에서 감독직 제안이 들어왔다면 그 또한 받아들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난 야구 속에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위치와 모습이 뭐 그리 중요한가. 그리고 김성근의 이미지에는 프로의 화려함보다는 음지에서 슬프게 꽃을 피우는, 지금의 자리가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여쭤봐서 죄송하지만, 감독직에서 12번째 해임됐고, 지금 13번째 감독을 맡고 있다. 어느 지도자도 이런 인생역정은 없다.
▲보통 서너 번 잘리면 갈 데가 없는데 김성근은 질기게 감독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까 신기할 것이다. 하지만 거꾸로 생각해보자. 12번 잘리고 13번째 팀을 맡고 있다는 건 그만큼 김성근이란 사람을 인정해 준다는 얘기가 아닐까. 팀을 나올 때마다 야구보다 야구관계자들을 통해 상처를 입었다. 야구계의 움직임에는 불가사의한 게 너무 많다.
―김 감독이 프로를 떠나면서 프로야구를 지도하는 감독들의 평균 연령대가 한층 젊어졌다.
▲그래서 더 좋다는 소린가(웃음). 이런 말이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김응용과 김인식이 현장을 떠나니까 정말 서운하더라. 한동안 그 허전함 때문에 기운이 빠져 힘이 안 날 때도 있었다. 그러면서 서서히 긴장감 같은 게 생겼다. 내가 야구 지도자로서 제일 고참이라는 생각, 아니 프로 스포츠를 통틀어 감독으로는 제일 연장자니까 모든 면에서 모범을 보이고 싶었다. 어느 사회나 세대교체는 필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새로움만 추구하고 경험의 중요성을 간과하다보면 건강한 사회가 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오기가 생겼다. 젊은 친구들한테 절대 지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 나이 먹었다고 버림받을 존재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김응용 전 삼성 라이온즈 사장이 현장에 계셨을 때 두 분을 라이벌 관계로 묘사하곤 했었다. 당시 그런 표현들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계셨나.
▲‘음지’를 대변했던 나로선 ‘양지’에 머물고 있는 김응용이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그런 점에서 난 야구를 통해 그를 이기고 싶어 했고 김응용은 그런 날 압도하려 했다. 나한테 김응용이란 감독은 어떻게 해서든 간에 이기는 방법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끔 만들어준 고마운 존재다. 동갑내기이지만 서로 스타일이 다르다보니 가깝게 지내진 못했다. 반면에 김인식은 후배라서 그런지 더 살갑게 말 붙이고 그러며 지낸 것 같다.
―김 감독의 얘기를 듣다 보면 삶의 99%가 야구로만 채워져 있는 것 같다.
▲지난겨울, 일본에서 지인들을 만났을 때 나한테 ‘미친 사람’이라고 하더라. 즉 야구만 아는 순수한 마음을 갖고 미치게 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난 야구에 미친 사람이다. 그런데 야구만 알고 있다 보니 시기와 질투의 시선과 평가들이 많았다. 건방진 얘기로 들리겠지만 내가 낮은 곳에 있었다면 비바람을 맞지 않았을 것이다. 높은 곳에 있다 보니 이런저런 역풍에 시달렸던 게 아닌가 싶다.
―SK 감독직에서 물러난 후 간간이 당시의 심정을 토로하신 인터뷰를 접할 수 있었다. 어느 팀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해임 스토리였다는 생각이 든다.
▲SK 팬들이 김성근 야구를 좋아했던 이유 중에는 그 안에 ‘사람’과 ‘감동’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하는 야구는 참고 참고 또 참고 하는 야구다. 사람들이 잊어버렸던 그 부분을 내가 팀을 이끌며 찾아냈다는 생각에 날 좋아하는 팬들이 많았다. 그러다보니 팬들의 반발도 기대 이상으로 컸을 것 같고 후임 감독이 그 자리를 맡기가 힘들지 않았나 싶다.
―솔직하게 물어보겠다. 처음에는 감독 스스로 SK와 재계약하지 않겠다고 밝히면서 시즌 마칠 때까지 벤치를 지키겠다고 말했다. 그러다 구단 고위관계자와 면담 후 갑자기 자진 사퇴 발표를 해버렸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그런 말’까지 듣고 내가 계속 해야 하나 싶었다. 그래서 갑자기 떠나기로 결심한 것이다. 사실 전날 밤까지도 그런 생각은 없었다. 아침에, 면담 후 순간적인 충동으로 발표를 했다. 그 사람들이 김성근을 우습게 봤다는 생각에 참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들은 날 계속해서 내보내려 했다. 그런데 성적이 좋으니까 쉽게 그럴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 말’이라는 것은 김성근 감독의 재계약 여부를 ‘이만수 2군 감독에게 물어봐야 한다’는 말 말인가?
▲그렇다. 내가 SK와 2007년 처음 계약을 맺을 당시, 구단으로부터 유일하게 들어온 조건이 ‘이만수’였다. 이만수를 코치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좋았다. 후배이고 제자이니까 같이 갈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처음부터 SK에선 후임 감독을 정해 놓고 날 받아들인 것이다. 난 SK 구단에 역이용 당했다. 그런 점들이 기업에, 구단에 회의를 느끼게 할 만큼 배신과 상처로 다가왔다. 한국 프로야구의 문제점 중 한 가지가 프런트가 현장 위에 군림하려는 부분이다. 프런트는 현장이 무조건 복종하길 바란다. 심판한테도 고개 숙이길 원하고 KBO한테도 무릎 꿇기를 채근한다. 그런데 그게 김성근한테는 통하지 않았다. 구단이란 존재는 선수단한테 해줄 거 해주고, 성적이 안 나면 감독을 내보내면 되는 것이다.
―사퇴 후 일부러 SK 선수들을 만나시지 않았다고 들었다. 왜 그런 건가?
▲나는 감독과 선수로 만날 때는 엄하게 대하지만 그 팀을 떠나면 선수들과 친구같이 술도 한잔 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SK 선수들과는 그런 자리를 만들지 않았다. 워낙 민감한 상황이라 행여 날 만났다는 사실이 구단 관계자들 귀에 들어가면 선수들에게 피해가 갈까 싶어 애써 회피했다. 구단에선 내가 데리고 있던 코치들도 다 내보냈다. 물론 스스로 그만 둔 코치들도 있었다. 헤어질 때 차 한 잔 안 마시고 뿔뿔이 흩어졌다고 하더라. 정말 슬펐다. 지금은 애써 하고 싶은 말을 하지 않고 있다. 입 다물고 있다가 언젠가는 다 말할 날이 올 것이다. 거짓말이 난무했던 상황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
▲ 지난 14일 연세대와 시범경기를 하고 있는 고양원더스. 선수들이 더그아웃의 지시를 받고 있다. 박은숙 기자 |
▲우리나라의 부정부패가 스포츠에까지 미친다는 게 충격적이다. 건전성을 상실한 스포츠는 죽은 거나 마찬가지다. 김성근 야구가 더럽다고 손가락질 해도 난 룰을 벗어난 적이 없었다. 나도 아마추어 선수 시절에는 일본에서 고스톱을 쳤다. 그러나 프로 입문 후에는 딱 끊었다. 돈은 정당한 방법으로 벌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 방법으로 돈을 버는 건 범죄다.
―올 시즌 일본에서 활약했던 선수들이 한국 프로야구에서 뛰게 됐다. 개인적으로 기대하는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
▲먼저 이승엽은 잘할 것이라고 믿는다.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는다면 주위에서 기대하는 만큼의 성적을 올릴 것이다. 박찬호도 10승 정도는 쉽게 하리라 본다. 김병현도 몸만 아프지 않다면 큰 일을 낼 것이다. 이대호가 일본으로 건너갔는데, 일본 지인들 말에 의하면 시즌 중반 즈음 한 차례 고비가 올 것이라고 예상하더라. 하지만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고 있는 선수라 잘 극복하리라 믿는다.
김성근 감독은 인터뷰 말미에 이런 일화를 털어 놓는다. 부산KT 전창진 감독이 고양원더스 훈련장까지 찾아와선 김 감독을 만나고 돌아갔다는 것이다.
“전 감독이 내 팬이라고 하더라고. 직접 뵙고 싶어서 왔다고 말하는데, 그 사람 인간미가 넘치는 거 하며 막걸리 같은 타입이라 나하고 잘 맞을 것 같아. 축구대표팀 최강희 감독도 날 만나보고 싶어 한다는데, 감독이 감독을 좋아한다니까 기분은 좋더라고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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