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개월 전 피살 동거녀 노래방 도우미로 밝혀져…업계 종사자 “강남 유흥업소 마약 공포에 이어 또…”
“너무 충격적이다. 이미 그분은 2022년 8월에 세상을 떠났는데 아무도 그 사실을 최근까지 모르고 있었다는 게 가장 충격이다. 이기영이 또 다시 택시기사를 살인하고 숨겨 놓은 시신이 발견되면서 겨우 그 분 사망 소식이 경찰을 통해 확인됐는데, 그 일이 아니었다면 아무도 몰랐을 죽음이었을 거다. 너무 안타깝다. 생각해보면 나도 비슷한 처지다. 내가 그렇게 죽어도 세상이 그 사실을 전혀 모를 수도 있다.”
서울 강북 지역에서 노래방 도우미로 일하는 한 40대 여성의 이야기다. 애초 취재진은 일산 지역 노래방 업주나 도우미 등을 통해 이기영이나 피해 여성 등을 아는 이들을 접촉하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가장 큰 충격이 휩쓴 지역인 까닭인지 이기영 사건에 대해 취재에 응하는 이가 거의 없었다. 대신 유흥업계 관계자들을 통해 소개 받은 서울 강북 지역의 노래방 도우미에게 어렵게 업계의 반응을 접했다.
혹자는 젊은 시절 룸살롱 접대여성 등으로 유흥업계에 입문해 나이가 들면서 서서히 밀려나 30대 후반이나 40대가 되면 노래방 도우미가 된다고 얘기하지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은 달랐다. 유흥업계와는 전혀 다른 일을 하다 일이 잘 안 풀려 생활고로 고민하다 노래방 도우미가 된 여성이 훨씬 많다고 한다.
앞서의 노래방 도우미는 “돌아가신 분에 대해 전혀 몰라 뭐라 얘기하기 어렵지만 여러 사연이 있어 이쪽 일을 하게 됐을 것”이라며 “이쪽 일을 하다 보면 정말 외롭다. 가족은 물론이고 가까운 지인들에게도 내가 하는 일에 대해 말하기 힘들다. 그러다 보니 하나둘 연락이 끊긴다. 그래서 의지할 사람이 생기면 올인하게 되는데 그분 역시 그랬다가 화를 당한 게 아닌가 싶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2022년 한 해 동안 유흥업계 종사 여성들에게 충격적인 일이 거듭됐다. 2020년 봄부터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대유행)으로 유흥업소와 노래방 등의 영업이 사실상 중단됐다. 다른 일을 찾거나 코로나19가 끝날 때까지 무작정 버티거나, 아니면 불법 영업 유흥업소를 전전해야 했다. 불법 영업을 하는 업소에 나가면 코로나19 감염 위험을 각오하는 건 기본, 거듭되는 단속의 공포와도 싸워야 했다.
서슬 퍼런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가 끝난 2022년 봄부터 유흥업계는 빠르게 정상화됐다. 다시 일을 하게 됐지만 7월에 ‘강남 유흥업소 사망사건’이 발생하면서 유흥업계 종사 여성들 사이에선 마약 포비아(공포증) 현상이 나타났다.
강남의 한 룸살롱에서 근무 중인 접대여성은 “술집에서 일하려면 손님이 주는 술을 마시는 게 기본이다. 옛날에는 가게 매출을 위해 일부러 손님에게 술을 더 권하며 같이 많이 마시라고 강요받았다고 하는데 요즘엔 그렇지 않지만 기본적으로 술자리인 만큼 술을 주고받는 건 기본”이라며 “누군가 손님이 몰래 마약을 탄 술잔을 건네 마시고 사망했다는 얘기는 정말 큰 충격이었다. 우리 일의 근간이 무너지는 사건인데 그렇다고 손님이 주는 술을 안 마실 수는 없지 않은가”라고 탄식했다.
유흥업계에서는 눈에 보일 만큼 우리 사회에 마약이 급속도로 확산되는 걸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손님이 잔에 몰래 마약을 타서 주는 일 역시 흔하지는 않지만 요즘에도 종종 벌어진다고 한다. 앞서의 접대여성은 “‘강남 유흥업소 사망사건’에선 양이 너무 과해 사망에 이르렀을 뿐, 마약을 최음제 정도로 생각해 접대여성을 흥분시키겠다는 심산으로 술에 마약을 몰래 타는 경우가 꽤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 “죽을 수 있다는 공포감은 몇 달 지나면서 가라앉았지만 나도 모르게 마약을 복용해 마약 투약 혐의로 경찰에 잡혀갈 수도 있다는 공포감은 늘 존재한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택시기사와 전 동거녀를 살해한 이기영 사건이 터졌다. 이기영에게 살해당해 아직 시신조차 찾지 못하고 있는 전 동거녀가 노래방 도우미로 알려지면서 유흥업계에서 파장이 상당하다. 게다가 이기영이 사망한 여성 외에도 노래방 도우미 등 유흥업계 여성들 여럿과 가깝게 지내왔다는 소식까지 전해지면서 충격이 배가되고 있다.
서울 모처에서 단란주점을 운영 중인 업주는 “보도방을 통해 노래방이나 단란주점에 오는 도우미들 가운데 동거남이 있는 경우가 많다. 이기영 같은 살인범은 흔치 않겠지만 피를 쪽쪽 뽑아 먹는 나쁜 남자들이 참 많다”면서 “유흥업계 여성들이 꽃뱀 행각을 벌였다는 사건사고 기사가 가끔 보도되는데 그건 정말 극소수의 이야기이고 오히려 나쁜 남자인 걸 모르고 가까워져 의지하려다 더 힘겹게 지내는 유흥업계 여성들이 정말 많다”고 실태를 알려줬다.
아무래도 최근 가장 큰 화제는 이기영의 추가 범행 여부다. 경찰 역시 이 부분에 수사가 집중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추가 범행의 정황이나 증거 등은 드러나지 않았다. 앞서의 노래방 도우미는 강력하게 추가 범행 가능성을 수사해야 한다고 얘기한다.
그는 “돌아가신 분을 보면 세상을 떠나고 5개월가량 아무도 몰랐다. 사망 사실을 알고 유전자를 확보하려는 경찰이 그분 가족을 찾는 데에도 며칠 걸렸다는 기사를 봤다”면서 “이쪽에 그렇게 주위와 연락 끊고 지내는 분들이 많다. 같이 일하는 우리도 누가 안 나오면 그런가보다 하고 지나갈 뿐이다. 행여 그분처럼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아무도 모르는 여성분이 또 있지 않을지 너무 걱정된다”고 토로했다.
김은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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