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거의 여성·노인 폄하 발언으로 입방아에 오른 민주통합당 김용민 노원갑 후보가 지난 6일 오후 서울 노원구 월계동의 한 경로당을 방문했다. 기자들의 질문에는 답변하지 않았다. 연합뉴스 |
방송국 PD에서 시사평론가, 인터넷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의 연출가를 거쳐 민주통합당 총선 후보가 된 김용민 후보(서울 노원구·37)의 거침없는 행보에 급제동이 걸렸다. 8년 전 인터넷 라디오 방송에서 ‘쏟아낸’ 막말들이 공개됐기 때문이다. 지난 2일 공개된 6분 38초 분량의 동영상에서 김 후보는 차마 지면에 옮기지 못할 정도로 심한 성적 농담과 욕설을 늘어놓았다. 새누리당에서는 즉각적인 사퇴를 요구했고 민주통합당 지도부와 일부 나꼼수 애청자들까지 우려를 표명했다. 총선 정국을 뒤흔들며 김용민 막말 파문을 잉태했던, 지난 2004년 인터넷 라디오 방송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지난 1990년대 말부터 IT(정보기술)란 단어가 우리 사회 전반을 휩쓸기 시작했다. 1990년대 말에 출범한 인터넷 라디오 방송 역시 인터넷 지식기반 산업 붐을 타고 탄생했다. 기존 방송영역과 비교해 ‘잽’이 되지 않던 인터넷 라디오 방송에 전성기를 가져다 준 두 가지 키워드는 ‘노무현 대통령’과 ‘구봉숙 트리오(김구라, 황봉알, 노숙자 세 방송인을 일컫는 말)’였다.
2002년 16대 대선을 앞두고 당시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후보를 지지하던 사람들은 직접 인터넷 라디오를 운영하며 지지방송을 내보냈고 당선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그 가운데 ‘노무현 라디오’는 노 대통령이 당선 이후 가장 먼저 인터뷰에 응하면서 화제가 됐다.
노무현 라디오는 2003년 2월 ‘라디오21’로 이름을 바꾸고 한국 최초의 상업 인터넷 라디오 방송으로 자리매김했다. 라디오21은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때 24시간 생방송을 하며 동시접속자 4만 명을 달성하기도 했다. 당시 라디오21의 방송국장이기도 했던 민주통합당 김용민 후보는 한 인터넷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캐나다 영국 브라질 독일 미국 등 한인이 있는 곳에서는 다 전화가 왔다. 너무 많이 와서 전화기 3대를 묶어 토론을 했다. 전화비가 많이 나오는데도 불구하고 기다리며 방송 연결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만큼 우리 방송에 열정을 표했던 분도 있었다”고 탄핵 당시 방송 상황을 전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4·11 총선정국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일부 성인방송의 ‘막말 방송’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2000년 초반만 해도 국내에는 라디오21 외에도 450여 개 인터넷 방송이 존재했고 채널수만도 5000여 개가 넘었다. 지금까지 명맥을 유지해 오고 있는 라디오21 방송국의 한 관계자는 “2004년 17대 총선이 끝나고 참여정부 이후 새로운 콘텐츠와 청취자 층을 발굴하는 과정에서 일부 프로그램이 성인 방송용으로 제작됐다. 지금 들었을 때는 다소 발언 수위가 높을 수도 있겠지만 당시 청취자들은 가볍게 듣고 넘겼다”고 설명했다.
다른 인터넷 방송과 마찬가지로 라디오21 역시 입담 좋은 김구라를 영입해 수위를 높여나갔다. 당시 구봉숙 트리오 방송을 찾아서 들었다는 강재욱 씨(30)는 “인터넷 방송 역시 시사, 음악, 영화 등 다양한 장르가 존재했지만 그중 최고 인기는 구봉숙 트리오가 진행하는 토크 프로그램들이었다. 이후 김구라가 지상파로 가고 ‘구봉숙 트리오’가 와해되면서 마니아층이 급격하게 줄었던 기억이 난다”고 밝혔다. 그 뒤 인터넷 라디오 방송의 인기는 DMB와 스마트폰이 발달하면서 급격하게 시들해져갔다.
김용민 후보는 그 뒤 라디오 PD와 시사평론가로 활동을 해왔지만 이렇다 할 인기를 얻지 못했다. 그러다가 지난해 이명박 대통령과 MB정부를 풍자하는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나꼼수)>를 만들며 다시 한 번 급부상했다. 김 후보는 라디오21 탄핵방송 때 국장을 역임하면서 쌓은 노하우를 나꼼수 연출에 십분 활용했다고 한다. 이를 통해 그는 수백만 명의 ‘나꼼수빠’를 만들어냈지만 선정성과 편향성은 내내 논란거리였다.
이번 막말 논란이 빚어진 프로그램에 관해 라디오21 측은 “당시 인터넷 라디오 방송의 특성상 다소 수위가 높은 이야기들이 오고가는 것이 흔했다”며 더 이상 언급을 피했다. 김용민 후보의 방송이 성인을 위한 인터넷 방송이었다는 점을 감안해도 2004년 당시 그는 SBS 전망대, 경인방송 라디오 등의 ‘지상파’에도 출연하며 시사평론가로서 활동하던 시기였다. 김 후보가 인터넷 라디오라는 ‘언더문화’에서 활동하며 ‘그들만의 언어’로 막가는 표현을 한 것이 아니라 기존의 ‘방송권력’에도 출연을 하면서 막말을 쏟아낸 점이 의아스럽기는 하다.
한 민주통합당원은 “대다수 민주통합당 지지자들은 나꼼수가 야권에 가져다 준 영향력을 인정하고 고마워한다. 하지만 김 후보가 국회의원이 되어도 좋다는 뜻의 고마움은 아니다. 논란이 벌어진 즉시 사퇴했어야 맞다”고 비판했다. 반면 기자지망생인 김나현 씨는 “당시 인터넷 라디오의 통념과 속성을 이해하지 못한 촌극”이라며 “한 지역구 후보의 자질에 관한 문제이기에 노원구 유권자들의 판단에 맡기면 되는 일”이라고 말했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
“유영철 풀어 부시 죽이면…”
‘김용민 막말’으로 논란이 된 <김구라 한이의 플러스 18>은 2004년 10월 13일부터 2005년 1월 31일까지 총 17회에 걸쳐 방송됐다. 이 방송은 당시 인터넷 방송에서 최고의 주가를 달리던 김구라가 진행을 맡은 성인용 토크프로그램이었다.
이번에 막말로 논란이 된 부분은 ‘김용민의 시사 아이디어’라는 코너로 당시 사회 이슈들과 정책 현안들에 관해 PD인 김 후보가 직접 해법을 이야기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2004년 10월 13일 첫 방송에서 MC인 김구라는 김용민을 “하꼬방(판자집) 조직의 31세 최연소 방송국장”으로 치켜세우며 고교등급제, 국내 테러 위협, 노인들의 시청 집회 근절 방안에 대한 아이디어를 물었다. 이 때 김 후보가 내놓은 해법은 이런 식이었다.
“(고교등급제와 관련해) 일단 강북과 강남의 학력 격차를 해결하기 위해 한강 유람선에서 수업을 듣게끔 하면 된다. 수업 시간에 집중 안 하는 학생은 물에 빠뜨리기도 하고”, “(국내 테러 위협과 관련해) 국내에서 더 강하게 나가야 한다. 테러범 한 명을 잡아서 참수하는 그래픽을 만들어 방송에서 틀어주면 감히 우리를 테러하지 못할 것이다. 또 미국에 직접 테러를 가해 쫄게 만든다. 연쇄 살인범 유영철을 풀어서 부시, 럼즈펠드를 죽이면 테러 조직이 국내에 위협을 가하지 못할 것이다”, “(시청 앞 노인 집회와 관련해) 시청역 지하철을 지하 4층으로 만들고 에스컬레이터를 다 없애버리면 노인들이 올라올 수 없다. 그도 안 되면 시청 광장 앞에 알 카에다 조직을 데려다 놓으면 ‘부시 만세’를 외치던 노인들이 얼씬도 하지 못할 것이다.”
그야말로 말 같지도 않은 우스갯소리로 웃음을 쥐어짜려했던 B급 개그가 8년 뒤 대한민국을 들었다 놓았다 할 줄 그 누가 알았을까.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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