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과 공공기관장 임기 맞추기 공감대 형성…임기 보장 정무직 포함 여부 여·야 입장차
현행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공기업과 준정부기관 기관장 임기는 3년이다. 공공기관장의 자율경영과 독립성, 공정성 등을 위해 기관장은 임기를 보장 받는다. 기관장이나 임원은 임명권자가 해임하거나 직무수행의 현저한 지장, 직무태만 등 사유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 임기 중 해임되지 않는다.
정권교체 때마다 공공기관장 임기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이유다. 대통령 임기와 일치하지 않다 보니 새로운 정부와 전 정권에서 임명된 공공기관장의 ‘불편한 동거’가 파열음을 냈다. 기관장 스스로 그만두거나 아니면 압박에 의해 자리를 내줘야 했던 사례가 적지 않다.
때론 인위적인 물갈이 시도가 이뤄지기도 했다. 2008년 3월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 ‘기관장 자진 사퇴’를 요구하고 나선 게 대표적이다.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 안상수 당시 의원은 “국정의 발목을 잡는 이전 정부 세력들은 그 자리에서 사퇴하는 것이 옳다”고 했다. 이전 정부 인사들이 각계 요직에 남은 점을 비판하며 공공기관장 사퇴를 압박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산하 기관장들에게 일괄 사직서를 받은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 받았다. 이른바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이다. 김 전 장관을 포함해 신미숙 전 청와대 균형인사비서관 등은 산하 공공기관 임원 15명에게 압력을 행사해 13명으로부터 사표를 받았다. 이들은 ‘일종의 관행’이라고 항변했으나, 대법원은 2022년 1월 “적법한 직무 범위를 벗어났다”며 직권남용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이런 장면들은 윤석열 정부에서도 볼 수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된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과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이 대표적이다. 두 위원장은 윤석열 정부 출범 후 국무회의 참석에서 배제됐다. 기관 업무보고 역시 서면으로 이뤄진다.
김태규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은 1월 8일 “정무직 공무원의 구성에 신·구 정권의 인사가 뒤섞이면서 조직이 어정쩡한 것은 부인하기 어려운 현실”이라며 전 정부에서 임명된 전현희 위원장 사퇴를 촉구했다. 전 위원장 임기는 올해 6월까지다. 전 위원장은 1월 5일 “임기는 국민과의 약속, 어떤 압력이 있더라도 소임 다할 것”이라며 완주 의지를 밝힌 바 있다.
방통위 내부 역시 뒤숭숭한 분위기다. 문재인 정부 방통위의 TV조선 재승인 의혹 등과 관련해 검찰이 전방위적인 수사에 나서면서다. 한 위원장은 1월 11일 “방통위를 대상으로 한 모든 감사, 감찰 등이 위원장의 중도 사퇴를 압박하기 위한 것이라면 이는 즉시 중단되어야 할 부당한 행위”라고 반발했다. 한 위원장 임기는 오는 7월 31일까지다.
정권 교체 때마다 이런 혼란들이 반복되자 정치권에선 대통령 임기에 맞춰 공공기관장을 임명해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됐다. 새로운 정부 국정철학을 실현하고, 국정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정무직인 장관직처럼 기관장도 교체를 해야 한다는 논리다. 반면 공공기관의 독립적 운영을 보장해야 한다는 반론이 나온다. 낙하산 인사가 더욱 판칠 것이란 우려, 현행법상 임기가 정해져 있는 기관장을 강제로 몰아내선 안 된다는 목소리 등도 뒤를 잇는다.
2023년 1월 17일 기준 공공기관(350개) 기관장과 임원 3080명 중 문재인 정부 당시 임명된 인사는 2655명으로, 86%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 전 대통령은 임기를 6개월 남기고 공공기관장 59명을 무더기로 임명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당시 야당이던 국민의힘은 ‘알박기 인사’라고 공격했다.
2022년 2월 김제남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이 한국원자력안전재단 이사장에 임명된 것을 두고도 여야가 공방을 벌였다. 탈원전주의자로 알려진 김 이사장의 임명이 조직 철학과 맞느냐는 것이었다. 탈원전을 강하게 비판하며 출범한 윤석열 정부와 김 이사장이 엇박자를 낼 것이란 우려도 곳곳에서 나온다.
현재 정치권에선 대통령과 공공기관장 임기를 일치시키는 ‘공공기관 알박기 인사 방지법’을 논의하고 있다. 여야는 2022년 12월 각 당 정책위의장과 원내수석부대표, 국회 행정안전위 간사로 구성된 ‘3+3 정책협의체’를 구성했다. 하지만 적용 대상, 시기 등의 입장 차로 난항을 겪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임기가 보장된 정무직 기관장은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상혁 방통위원장이나 전현희 국민권익위장은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모든 공공기관장에 적용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1월 6일 “지금 정권이 출범한 지 8개월이 지나고 있는데 전 대통령 임기 6개월 남기고 임명한 (공공기관장) 59명 알박기를 그대로 둔 채 (현 대통령과) 임기 일치를 하자고 이야기 하는 건 낯 뜨거운 일”이라고 비판했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우상호 의원은 2022년 7월 특별법을 조속히 제정해서라도 임기제 공무원들의 임기를 대통령과 맞출 필요가 있다고 했는데, 한쪽에서는 정무직은 제외하자고 한다. 정무직은 방송통신위원장, 권익위원장을 포함한다. 정무직이야말로 대통령과 임기를 같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설상미 기자 sangmi@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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