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원축구 지도자들은 박봉에 시달리는 데다 학교 측의 지원금도 부족해 비리 유혹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사진은 합성. |
#되기도 어렵고…
모고교를 이끌었던 A 감독과 K리그 프로구단 B 감독은 현역 시절, 한 팀에서 오랫동안 함께 뛰었던 선후배 관계였다. 하지만 지도자 인생은 다소 엇갈렸다. 나란히 K리그의 한 시대를 풍미했던 두 사람이지만 그들에게 도래한 제2의 축구 인생은 많이 달랐다. A 감독은 최근까지도 아마추어에 몸담았고, B 감독은 승승장구해 지금은 축구를 잘 모르는 일반인들도 쉽게 알아볼 정도가 됐다. 국가대표 출전 경력만을 놓고 보면 오히려 A 감독이 훨씬 앞서 있었는데도 현재의 처지는 180도로 바뀌었다.
최근 A 감독은 지방의 모 대학에서 공석 중인 축구부 감독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 대학은 꾸준히 전국대회에서 상위권에 입상해온 ‘준 명문’으로 통하고 있다. A 감독은 공개 모집에 응시했고, 응시자 중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걸로 알려졌다. 그런데 변수가 발생했다. 대학 고위관계자와 인연을 맺고 있었던 프로팀의 B 감독이 A 감독의 상황을 잘 알면서도 축구인 C 씨를 추천했기 때문이다. 결국 마지막 면접에서 A 감독은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음에도 탈락했고, B 감독의 추천을 받은 C 씨가 선발돼, 현재 선수단을 이끌고 있다.
이를 뒤늦게 알게 된 A 감독은 망연자실했다. 선수 시절 호형호제하며 두터운 선후배 관계를 이어갔던 두 사람이 은퇴 후 서로의 처지가 달라지면서 점점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됐고, 선배의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B 감독은 그 사실조차 외면하면서 A 감독에게 인간적인 배신감과 상실감을 안겼던 것이다.
둘의 관계를 잘 알고 있는 한 원로 축구인 D 씨도 이러한 소문을 잘 알고 있었다.
“모르고 보면 (프로축구와 아마추어 축구가) 전혀 상관없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솔직히 프로 사령탑들의 입김은 아마추어 축구계에서 생각보다 강하다. B 감독과 소속 구단이 A 감독 대신 C 씨를 밀고 있다는 소문은 들었는데, 어디서부터 진짜이고, 어디까지 가짜인지는 잘 모르겠다. A 감독과 B 감독의 관계가 나쁘다는 얘기까진 듣지 못했다.”
#유지하기도 어렵고…
앞서 거론된 일은 비단 해당 학교와 A, B감독에게만 국한된 사례가 아니다. 비슷한 사례들이 비일비재하다는 후문이다. 그리고 여기서 주목할 점이 있다면 프로 감독들의 입김이 왜, 어떻게 해서 아마추어 축구한테까지 미치는지의 여부다.
결국 선수 수급과 인맥이다.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서는 선수 수급 능력이 필수조건이다. 선수 부족으로 인한 수요를 채워줘야 하는 (선수) 공급자 입장에 놓인 아마추어 감독들로서는 프로 감독에게 잘 보일 필요가 있다. 나쁘게 보여 봤자 자신에게 득이 될 게 하나도 없다. 여기에 따른 피해는 고스란히 자신에게 돌아간다. 학원 축구의 특성상, 졸업반 선수들을 얼마나 프로 팀과 실업축구 내셔널리그 팀으로 보내느냐에 따라 지도자들의 능력이 평가되는 경우가 많다. 바꿔 말해 축구계에서 ‘검은 커넥션’이라 불리는 뒷거래가 벌어질 소지가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복수의 축구인들과 에이전트들, 그리고 구단 관계자들은 이를 굳이 부인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화두는 자연스레 생존으로 옮겨진다. K리그에서는 많이 사라졌지만 아마추어 무대에서는 경기 출전부터 선수 확보(스카우트)까지 모든 부분에 돈이 필요한 구조라고 한다. 심지어 돈을 얼마나 주느냐에 따라 출전 여부가 가려진다는 충격적이고 믿기 어려운 소문도 존재해 왔다.
비단 대학 감독들만 그럴까. 하위 무대로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불편한 소문들은 더욱 무성해진다. 학력을 유달리 중시하는 풍토에서 상급 학교 진학은 학부형들과 선수들에게 아주 간절한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나온 얘기가 스카우트 비용이다.
90년대 후반까지 서울의 유명 대학 감독으로 활동하고, 청소년대표팀 지도자로 명성을 떨치다 행정 직책으로 프로구단에 몸담기도 했던 축구인 E 씨는 예나 지금이나 개괄적인 흐름은 달라지지 않았다고 단언했다.
“내가 대학 감독으로 있을 때, 어떤 고교 선수 부모가 찾아왔다. 자신의 아들을 내가 이끈 대학 축구부에 입학시켜달라고 하더라. 지금도 상당한 액수이지만 당시에는 훨씬 큰 금액이라 할 수 있는 수천만 원을 제시하며 입학 사례금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숫자 ‘0’을 뒤에 더 덧붙여주면 그 학생을 받아준다고 했다. 고개를 떨구고 돌아서는 학부모의 뒷모습이 너무 안쓰러웠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그런 비슷한 일이 어디에선가 벌어지고 있다.” 모두가 다 그렇지는 않아도 항상 유혹의 그림자가 따라다닌다는 의미다. 마치 외판원처럼 프로(혹은 상급학교) 사령탑들에게 최대한 자주 얼굴을 비춰야 하는 아마추어 지도자들의 치열한 삶 외에도 어려움은 또 있다.
당장의 생활도 급하다. 여기에는 좋지 못한 처우가 배경에 있다. 축구인들이 파악하는 대학 지도자들 월급은 300만~400만 원선이라고 한다. 연봉이 5000만 원을 넘는 경우가 드물다. 당연히 고교 감독들의 처우는 이보다 못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제자 한 명이라도 더 좋은 곳에 진학시키려면 돈을 들여야 한다. 굳이 어디에 하소연할 필요가 없는 당연한 관례다. 대개 별도 판공비가 없는데다 학교 측의 지원금은 항상 부족하기 마련. 여기서 스카우트비가 자주 축구계에서는 거론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결국 부족한 자금을 메우기 위해선 학부형들에 손을 벌려야 하고 이 과정에서 나쁜 이야기들이 오고 간다는 의미다. 비리 유혹에 쉽게 놓일 수 있는 서글픈 구조다. ‘되기도’ 어렵지만 직함을 계속 ‘유지하기도’ 어려운 아마추어 지도자들이다.
#유혹에 흔들리고…
사실 아마추어 지도자들은 기분 나쁜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기도 하다. 승부조작 등 스포츠계의 불미스러운 부분에서 아마추어 축구가 안전지대에 놓여있지는 않다는 사실이다. 작년 5월 이후 K리그를 한바탕 휘몰아친 승부조작과 불법 스포츠 베팅 사태로 인해 아마추어 스포츠도 노심초사하고 있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종종 아마추어 무대를 둘러싸고 부정적인 뉴스들이 가끔 등장할 때가 있다. 상급학교 입학을 빌미 삼아 학부모들로부터 불법 금품을 수수한 몰지각한 지도자들이 경찰과 검찰의 수사를 받거나 구속되는 사태가 등장해 충격을 던져주곤 한다. 이름값 높은 학교들도 자주 등장하고 있으니 잘 알려지지 않은 음지까지 구석구석 살피면 상황은 더욱 암울하다.
하지만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는 게 안타까운 현실이다. 어릴 적부터 이러한 세태를 당연하게 받아들여 온 선수들은 성인이 된 이후에도 불법 행위를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게 되고, 결국 악순환의 반복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승부조작과도 어느 정도 연관이 있다고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승부조작 사건 당시 직간접적으로 접촉했던 연루 선수들은 상당수가 그러한 행동이 잘못이 될 것이라는 걸 상상하지도 못했다고 한다.
그라운드 안팎에서 선수들의 생활, 불법 커넥션 등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몇몇 에이전트들은 “부모와 지도자들의 문제가 크다. 금전 거래가 직·간접적으로 이뤄지는 걸 보면서 성장한 선수들은 도박 등 용돈벌이를 하는 불법 행위에 대해 전혀 문제를 느끼지 않을 수도 있다. 돈을 쉽게 생각한다고 해야 하나? 돈 거래와 도박 등이 불법 행위라는 걸 인식시켜야 하는데, 유감스럽게도 요즘 국내 아마추어 축구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라고 꼬집었다. 학원 축구 지도자들도 일종의 교육자라고 했을 때, 제대로 인성 교육을 시키지 않고, 모범이 되지 않는 행위를 하는 이들을 겨냥한 다소 냉혹한(?) 평가일 수도 있다.
뿐만 아니다. 정말 승부조작도 종종 벌어지곤 한다. 작년 모 고교축구대회 도중 승부조작이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한바탕 파문이 일어난 적이 있었다. 어떤 금전적인 연계가 이뤄졌는지는 자세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축구인들이 옛 시절을 회상하면서 밝혀왔던 ‘상대, 선후배를 위한 아름다운(?) 행위’가 버젓이 벌어지곤 한다. 요즘 용어로는 이를 ‘담합’이라 일컫는다. 그리고 어쩌면 지금 이 순간도 벌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진학에 목매고…
상급학교 진학은 금전 싸움이라는 얘기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심지어 특정 선수를 데려오기 위해 은밀한 커넥션이 일어나기도 한다. 비유가 다를지 모르지만 먹이사슬처럼 상위 집단으로 올라갈수록 강자가 되는 건 당연지사. 철저한 피라미드 구조로 진학이 얽혀있어 상위 레벨로 올라가려면 약자는 자연스레 도태된다. 여기서 약자라 함은 진학이 어려울 정도로 실력이 부족하거나 돈이 없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초등학교에서 중학교까지는 무난한 이동이 이뤄지는데, 중학교부터 고등학교, 이어 대학교까지 가려면 상당히 어렵다고 한다.
아마추어 감독들은 해마다 여름만 되면 골머리를 앓는다. 졸업반 학생들의 진로를 결정해줘야 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마치 수시 입학처럼 졸업생들 대부분의 진로는 가을 이전에 결정된다고 한다.
곳곳에서 ‘잘 봐 달라’는 인사 청탁도 쇄도하고 있다. 하위 레벨 학교 지도자들은 상급 학교 지도자들을 찾아 구석구석 현장을 누벼야 한다. 간혹 좋은 선수 한 명과 그렇지 못한 B레벨 선수 몇 명을 묶음 형태로 한꺼번에 입학시킬 수 있는 기회까지 닿는 터라 어느 한 곳도 소홀하게 할 처지가 아니다. 이를 ‘덤 얹어주기’ ‘끼워 팔기’로 부른다. 당연히 형님 아우 하던 일부 지도자들 사이에서는 ‘좋은 게 좋다’는 식의 인간적인 거래도 이뤄진다. 물론 그네들 입장에서다. 외부에서 보면 ‘커넥션’에 초점을 둘 수밖에 없다. 몇몇 축구인들에게 넌지시 물어본 결과, 그렇지 않으면(‘인간적 거래’가 뒤에 있지 않는다면) 이적료 개념으로 수천만 원을 상회하는 스카우트 비용이 들 때도 있다고 한다.
물론 모두가 그런 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일부 몰지각한 미꾸라지들로 인해 전체가 욕을 먹고 있는 상황임은 틀림없어 보인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