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류중일, 선동렬, 김기태, 한대화, 양승호, 이만수, 김시진, 김진욱 감독. |
#삼성 류중일-2005년 선동열
2002년 이후 삼성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끈 이들은 역설적이게도 초보감독들이었다. 2005년 선동열 감독과 2011년 류중일 감독이다.
수비코치 출신의 류 감독이 삼성 사령탑이 됐을 때 기대보단 걱정이 많았다. 주변에선 류 감독에게 “목표를 소극적으로 밝혀야 팀 성적이 부진해도 이해를 받을 수 있다”라고 조언했다. 그러나 류 감독은 시즌 전부터 당당한 표정으로 “목표는 우승”이라고 밝혔다. 시즌 운영도 초보와는 거리가 멀었다.
한 번 믿은 선수는 끝까지 기용했다. 젊은 선수들에게 적극적으로 기회를 제공했다. 베테랑이라고 무조건 내치지도 않았다. 투수진의 보직도 확실히 했다. 공격야구를 표방하면서도 수비야구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결과는 초보감독의 우승이었다. 따지고 보면 2005년 선동열 감독도 그랬다. 오승환, 권오준 같은 신진 세력에게 기회를 줬다. 김재걸과 김대익 같은 베테랑도 적절히 활용했다. 수비야구와 확실한 보직으로 나뉜 튼튼한 투수진을 중심으로 ‘지키는 야구’를 주창한 것도 바로 이때였다.
공통점은 또 있다. 선 감독이 전임 김응용 감독이 만든 선수단을 중심으로 우승을 차지했다면, 류 감독은 선 감독이 닦아놓은 팀을 기반으로 우승을 맛봤다는 것이다. 선 감독은 2년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과연 류 감독은 어떨까.
#SK 이만수-1991년 이광환
감독은 감독이지만, 역사에 기록되지 않는 감독이 있다. 감독대행이다. 1982년 프로야구 출범 이후 감독대행은 35번이나 출현했다. 그러나 이 가운데 ‘대행’ 딱지를 뗀 건 13번에 불과했다. 확률이 37%에 되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2011년 시즌 도중 감독대행을 맡았다가 시즌 종료와 함께 사령탑에 오른 SK 이만수 감독은 운이 좋았다. 성적이 좋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SK는 준플레이오프에서 KIA, 플레이오프에서 롯데를 꺾고, 한국시리즈까지 올랐다.
한국시리즈 우승에 빛나는 전임 감독과 전혀 다른 야구를 지향하고, 미국의 자율야구를 선호한다는 측면에서 이 감독은 1991년 LG 이광환 감독과 비슷하다. 당시 이 감독은 1990년 팀에 우승컵을 안긴 백인천 감독이 1991년 10월 갑자기 물러나자 감독대행이 됐다. 그리고 이듬해 LG 사령탑으로 승격했다.
혹독한 훈련과 철저한 감독 중심의 야구를 펼쳤던 백 감독과 달리 이 감독은 선수가 주체적으로 훈련하고 경기를 풀어나가는 이른바 ‘자율야구’를 주창했다.
LG는 이 감독이 자신의 야구를 펼칠 수 있도록 3년을 기다렸다. 이윽고 1994년. 이 감독은 구단의 인내를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보상했다. 5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에 성공한 SK가 얼마나 이만수 감독의 안착을 기다릴지 미지수다.
#롯데 양승호-2004년 김경문
롯데는 훌륭한 경주마였다. 그러나 기수, 즉 감독은 그렇지 못했다. 채찍을 휘두를 때와 당근을 줄 때를 아는 기수가 필요했다. 그래서 2007년 영입한 이가 제리 로이스터 감독이었다. 로이스터 감독은 채찍보단 당근을 우선시했다. 선수들에게 창의적 야구를 주문했다. 롯데는 달라졌다. 포스트 시즌에 진출했고, 사직구장은 늘 만원을 이뤘다.
그 뒤를 양승호 감독이 이어받았다. 지난해 양 감독은 로이스터의 장점을 계승했다. 정규시즌 2위에 오르는 성과를 냈다. 그러나 올 시즌부터는 다르다. 양 감독은 롯데의 장점보단 단점에 주목했다. 스프링캠프에서 훈련량을 늘렸다. 다른 팀에 떨어지는 수비력과 이대호가 빠진 타선의 약화를 막기 위해 훈련에 훈련을 거듭했다.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뚜껑을 열어봐야 한다.
2004년 두산 김경문 감독이 좋은 예다. 2002년까지 두산을 이끈 김인식 감독은 ‘한국의 로이스터’였다. 단점을 줄이는 야구보단 장점을 극대화하는 야구를 선호했다. 아기자기한 작전야구 대신 선이 굵은 공격야구를 주창했다.
2003년 두산 사령탑에 오른 김경문 감독도 그걸 계승했다. 하지만, 한계가 있었다. 단점을 줄이지 못하면 한국시리즈 우승은 영원한 꿈이라고 판단했다. 그때부터 강력한 카리스마로 선수단을 이끌었다. 빅볼은 확대 발전시키되 기동력 야구를 추가해 공격의 질을 높였다. 여기에 탄탄한 수비야구와 불펜진 강화를 통한 지키는 야구를 도입했다. 결과는 좋았다. 늘 상위권을 유지했다. 하지만, 김경문 감독은 결국 우승컵을 안지 못했다.
#KIA 선동열-2002년 김응용
아들은 아버지의 식성을 닮는다. 타고난 미각 때문이 아니다. 후천적이다. 아버지의 입맛에 따라가는 것이다. 야구도 그렇다. 선수는 감독을 보며 지도자의 꿈을 키운다. 감독의 단점은 극복의 대상, 장점은 차용의 대상이 된다. 선동열 감독은 그런 의미에서 김응용 감독의 모든 걸 흡수했다. 경기 중 더그아웃에서 끊임없이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것도 닮았다. 감독의 카리스마로 팀을 좌지우지하는 것도 판박이다. 화려한 작전보단 선 굵은 야구를 지향한 것도 비슷했다.
하지만, 선 감독은 올 시즌 KIA 사령탑을 맡으며 변신을 시도 중이다. 감독의 카리스마를 내세우기보다 선수 옆으로 다가서고 있다. ‘소통의 야구’를 펼치겠다는 의도다. 2002년 김 감독도 그랬다. 해태 시절의 강력한 카리스마를 내려놨다. 삼성에 맞는 부드러운 리더십으로 변신했다. 요즘 선 감독이 듣는 “사람이 저렇게 변할 수 있느냐”는 소릴 김 감독은 10년 전에 들었다. 결과는 대성공. 그해 김 감독은 삼성을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끌며 전무후무한 ‘V10’을 달성했다.
선 감독이라고 예외가 될 순 없다. 스프링캠프서부터 KIA는 긍정적으로 변하고 있다. 선수단에 활기가 넘친다. 젊은 선수들은 스스럼없이 감독을 찾아가 기술적 조언을 부탁한다. ‘사람이 하루아침에 변하면 좋지 않은 일이 생긴다’지만, 야구는 하루빨리 변해야 성공한다. 선 감독은 역시 영민하다.
#두산 김진욱-1987년 성기영
“김진욱 감독만 스타일을 모르겠다.” 모 감독의 말이다. 그도 그럴 게 김 감독의 1군 지도자 경험은 4개월 남짓이다. 지난해 6월 1군 투수코치 경력이 전부다. 2007년부터 2011년까지 5월까진 2군 투수코치로 있었다. 이전엔 아마추어 지도자였다.
프로 1군 감독이 된 이후로도 김 감독은 별다른 색깔을 나타내지 않는다. 그저 “야구는 선수가 한다”며 “팀 색깔도 선수가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야구계 관계자들의 평은 반으로 나뉜다. “소통을 중시하는 김 감독이 미국식 야구를 펼치려는 것”이라는 호의적 평과 “김 감독이 1군 경험 부족과 비전 부재를 애매모호한 이야기로 물타기한다”는 부정적 평이 그것이다.
일부에선 이토 쓰토무 수석코치의 영향력을 고려해 “시즌 초 팀 성적이 부진하면 김 감독의 영향력이 줄어들 수도 있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김 감독과 비슷한 예가 있었다. 1987년 롯데 성기영 감독이다. 성 감독은 롯데 감독 부임 전 아마추어 지도자로 활약했다. 프로 경험이 전무했다. 게다가 당시 수석코치는 일본인 도이 쇼스케였다. 도이는 성 감독 선임 전 강병철 감독이 사임했을 때 롯데 사령탑이 유력했던 이였다. 그러나 당시 “일본인 감독은 아직 한국정서에 맞지 않는다”는 야구인들의 반대로 감독에 오르지 못한 채 수석코치직을 계속 맡았다. 감독급 수석코치였던 셈이다.
아마추어 출신 감독과 감독급 수석은 처음부터 공생하기 어려웠다. 늑대와 양에게 같은 들판에서 서로 자유롭게 살라고 말하는 것과 같았다. 결국 성 감독은 경질됐고, 롯데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팀이 됐다. 김진욱 감독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LG 김기태-2004년 이순철
2002년 이후 LG의 가을은 쓸쓸했다. 이 기간엔 홈구장 잠실을 비워주고 TV 앞에 앉았다. 9년 연속 포스트 시즌 진출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올 시즌 신임사령탑에 오른 LG 김기태 감독에게 거는 기대는 그래서 크다. 43세의 젊은 수장에겐 부담이다.
성적도 성적이지만, 팀 관리도 큰 짐이다. 전통적으로 LG는 사건 사고가 많은 팀이다. 그라운드 밖의 사건이 팀 성적에 발목을 잡기 일쑤였다. 올 시즌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 시즌 전부터 선발투수 2명이 경기조작에 휩싸여 퇴단했다. 가뜩이나 ‘가는 FA’ 잡지 않고, ‘오는 FA’ 쳐다만 봤던 LG의 전력 약화는 당연해 보인다.
2004년 LG 이순철 감독도 그런 처지였다. 당시 초보사령탑 이 감독은 6위에 그친 팀 성적을 끌어올리려 노력했다. 43세의 젊은 감독 이순철은 모래알 같던 팀워크를 진흙처럼 하나로 묶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현실은 6위였다. 그해 병역비리로 9명의 선수가 전력에서 이탈했고, 외국인 선수와 FA 영입 선수들은 담합이라도 한 듯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이 감독의 불행은 2006시즌까지 이어졌다.
김 감독은 사석에서 이 감독을 “존경하는 선배”라고 말한다. 그가 존경하는 선배의 뒤를 따를지, 아니면 선배의 불행을 극복할지 두고볼 일이다.
#한화 한대화-2010년 김성근
한대화 감독의 별명은 ‘야왕’이다. 2010년 꼴찌, 2011년 7위에 그친 감독에겐 과분한 찬사다. 하지만, 지난해까지의 한화 전력을 살피면 한 감독의 별명은 차라리 위로에 가깝다.
그러나 올 시즌 한화는 더는 약팀이 아니다. 에이스 류현진이 살아났다. 메이저리그 에이스 출신의 박찬호도 입단했다. 지난해까지 일본에서 뛰었던 강타자 김태균도 건강하게 돌아왔다. 세 선수가 제 역할을 한다면 한화는 강력한 4강 후보다.
하지만, 계약 마지막 해인 한 감독에겐 그것이 부담일 수 있다. 만약 팀 성적이 부진하면 “이렇게 좋은 선수들이 뛰는데도 이 정도밖에 못하느냐”는 질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된다면 한 감독은 남 좋은 일만 하고 팀을 떠날 수 있다. 지금껏 약체 한화의 리빌딩을 충실히 진행했지만, 그 성과를 후임 감독이 차지할 수 있다는 뜻이다.
2010년 SK 김성근 감독이 좋은 예다. 2007년 SK 사령탑에 오른 이후 김 감독은 약체팀을 강팀으로 만들었다. 4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었다. 그러나 2011년 시즌 도중 불명예 퇴진했다.
올 시즌 가장 중요한 건 한 감독이 쫓기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대개 계약 마지막 해 감독들은 재계약 조바심에 쫓겨 자폭하거나 ‘돌격 앞으로!’만 외치다 사라졌다.
#넥센 김시진-1987년 강태정
프로야구 사상 이처럼 비운의 감독도 없다. 2006년 어렵사리 현대 감독이 됐지만, 2007년을 끝으로 팀을 떠나야 했다. 주인이 현대에서 히어로즈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2009년 다시 히어로즈 감독으로 돌아왔으나, 이번엔 주력선수들이 다른 팀으로 팔려가는 걸 지켜봐야 했다. 팀 성적은 암울했다. 하위권을 도맡다가 2011년엔 꼴찌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김 감독처럼 행복한 감독도 없는 게 사실이다. 성적이 밑바닥을 헤엄쳐도 경질 압박을 받지 않는 유일한 사령탑이다. 오히려 계약이 연장됐다.
언뜻 1987년 청보 강태정 감독을 보는 듯하다. 당시 강 감독은 허구연 감독의 대타로 감독대행을 맡다가 정식 감독으로 승격했다. 청보가 그에게 바란 건 화려한 성적이 아니었다. 구단이 팔릴 때까지 잡음 없이 팀을 이끌어주는 것이었다. 당연히 선수단 지원도, 격려도 기대할 수 없었다. 이해 청보는 7위에 그쳤다. 하지만, 강 감독은 비난받지 않았다. 구단으로부터 되레 “수고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도 그럴 게 그해를 끝으로 청보는 태평양에 팔렸다.
중요한 건 이거다. 강 감독은 자기 할 일은 충실히 했으나, 아무도 그를 기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올 시즌 넥센은 이택근과 김병현을 수혈했다. 팀 전력이 어느 때보다 강화됐다. 김 감독의 능력을 이제야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게 된 셈이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