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메가엑스·이달의 소녀도 정산 둘러싼 논란…‘연 1회 회계내역 상세 공개’ 법 개정 추진키로
이 논란의 사실상 시발점이 됐던 가수 겸 배우 이승기와 그의 전 소속사 후크엔터테인먼트 간 법적 분쟁은 현재진행형이다. 2022년 연말 이승기는 총 137곡의 음원 수익이 정산되지 않는 등 후크엔터의 불공정 계약과 편법 회계 처리로 활동기간 동안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했다고 주장하며 후크엔터 권진영 대표와 재무담당 이사를 업무상 횡령 및 사기 혐의로 고소했다.
이승기 측에 따르면 후크엔터는 이승기가 소속 연예인으로 활동한 18년 동안 음원 수익 발생 사실을 은폐했고, 심지어 이승기의 광고 모델료 가운데 일부를 편취하는 방식으로 횡령한 정황도 포착됐다. 소속 연예인으로 활동하는 기간 동안 정산 자료를 요구했을 때도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공개하지 않거나 오히려 이승기를 '마이너스 가수'라고 부르며 윽박질러 지레 요구를 포기하도록 했다고도 주장했다.
지난해 이 같은 불공정 계약이 문제가 된 사례는 아이돌 그룹에서도 발생했다. 먼저 보이그룹 오메가엑스는 소속사인 스파이어엔터테인먼트 대표로부터 상습적인 폭언과 욕설, 성희롱 등의 피해를 입은 사실을 폭로하며 전속계약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당시 추가로 폭로된 내용에 따르면 스파이어엔터 측은 수익에 대해 멤버들에게 고지하지 않았고, 제대로 된 정산 역시 이뤄지지 않았다. 이들의 계약서는 표준전속계약서와 동일하지만 절대적 갑 위치에 있는 대표와 이사 등 경영진이 계약 이상의 것을 요구하면 거부할 수 없었다는 게 오메가엑스 측의 주장이다. 이에 서울동부지법 제21민사부는 계약 해지 요건이 충분하다고 판단해 오메가엑스가 제기한 가처분 신청을 인용, 오메가엑스는 본안 판결이 나올 때까지 소속사의 제재 없이 독자적인 활동이 가능하게 됐다.
인기 멤버 츄와의 분쟁으로 촉발된 걸그룹 이달의 소녀 불공정 계약 논란도 지난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광고 모델과 고정 방송 활동으로 충분한 수익을 낼 것이라 짐작케 했던 츄가 소속사인 블록베리크리에이티브로부터 정산을 제대로 받지 못했고, 이 배경에는 초기 계약의 불공정한 조항이 있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다. 츄와 먼저 계약 분쟁이 발생하자 결국 ‘멤버 퇴출’이라는 강경책을 선택했던 블록베리크리에이티브는 이후 나머지 멤버들과 연이어 계약 해지 가처분 소송을 맞닥뜨려야 했다.
1월 13일 서울북부지법 민사1부는 이달의 소녀 멤버 9명이 블록베리크리에이티브를 상대로 제기한 전속계약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에서 희진·김립·진솔·최리 4명의 신청을 인용하고, 하슬·여진·이브·고원·올리비아 혜 등 5명의 신청을 기각했다. 함께 한 소송에서 결과가 갈린 것은 앞선 4명의 멤버들의 경우 츄와 마찬가지로 불공정 계약으로 볼 여지가 있는 초기 계약을 유지한 반면, 5명은 최근 1~2년 사이 멤버들에게 비교적 유리한 조항이 추가된 계약으로 변경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블록베리크리에이티브와 이달의 소녀 간 문제가 된 계약 내용도 정산 관련 조항이 불공정으로 지적된 것으로 파악됐다. 츄의 경우 활동으로 매출이 발생할 경우 이를 소속사와 츄가 7 대 3으로 나눈 뒤, 활동 및 제작 비용은 거기서 다시 5 대 5로 나눠 책임지는 식으로 계약서가 작성됐다. 만일 매출 10억 원과 활동비 6억 원이 발생했다면 매출에서 활동비를 뺀 금액을 기준으로 정산하는 게 아니라 매출에서 먼저 소속사 7억 원, 츄 3억 원을 나눠 가진 뒤 활동비 6억 원에 대해 다시 5 대 5 비율을 적용해 소속사와 츄가 각각 3억 원을 지불하는 식이다. 이렇게 되면 소속사는 활동비를 제하고도 4억 원이 남지만 츄는 1원도 가져갈 수 없게 된다. 활동을 할수록 연예인은 적자를 면치 못하고 소속사만 배불리는 구조인 셈이다.
이제까지의 계약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와 공개적인 제재와 규제를 맞은 것은 대부분 중대형 연예기획사에 한정되는 경우가 많았으나, 올해부터는 소형 기획사에 대해서도 전면적인 실태 조사에 착수함에 따라 그동안 묻혀 있던 폐단이 추가로 드러날 것이란 예측도 나온다.
특히 정산 문제와 관련해, 표준계약서에 이미 ‘가수는 대중문화예술용역과 관련된 자료나 서류 등을 열람·복사해 줄 것을 기획업자(소속사)에 요청할 수 있고, 기획업자는 이에 응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긴 하지만 의무 규정이 아니었기 때문에 소속사의 주먹구구식 회계처리에 악용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따랐었다. 이에 문체부는 1년에 한 번 이상 소속 연예인에게 회계 내역을 고지하도록 법 개정을 추진할 방침을 밝혔다.
한 연예매니지먼트 단체 관계자는 “소속사 대부분이 표준계약서 조항에 따라 수익 정산 시 정산 자료를 공개하고 있긴 하지만 연예인이 그 상세내역을 정확히 알게 되는 경우는 드물다. 소속사가 제작비용이 얼마가 들었다고 주장하면 항목별 정확한 금액을 알지 못하는 연예인으로서는 소속사의 주장을 전적으로 신뢰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며 “법 개정이 된다면 투명한 정산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하지만 내부 회계 자료의 불투명성이 문제 되는 소속사도 많은 만큼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이 담긴 개정안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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