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누리당 비대위를 이끌며 ‘창조적 파괴’를 요구했던 김종인 전 비대위원. 그 과정은 혹독했지만 총선 과반의석 확보라는 열매를 땄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4·11 총선 결과를 어떻게 보나.
▲총체적으로 본다면 박근혜 선대위원장의 승리로 볼 수 있다. 지난 12월 27일 비상대책위원회가 발족한 뒤 내가 ‘창조적 파괴’를 하지 않으면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없을 거라고 말했었다. 일반 기업도 때로는 브랜드를 바꾸고 새로운 상품을 내놓고 하지 않는가. 새누리당으로 당명을 바꾸는 등 그래도 과거 한나라당의 모습을 바꾸기 위해 노력한 점들이 어느 정도 성과를 발휘했다고 본다. 하지만 박근혜 선대위원장은 앞으로 대권을 향해 가야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총선에서보다 훨씬 더 현 정권과의 차별화를 해야 할 것이다. 이 정권에 대한 심판론을 안고 간다면 대선에서도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다.
―투표는 했나. 지역구가 어느 곳인지.
▲종로구다. 종로구도 공천을 잘못한 대표적인 곳이다. 내가 홍사덕 씨 공천 준다고 했을 때 ‘이 사람 안 된다’고 했다. 종로가 그렇게 만만한 데가 아닌데 어느 날 낙하산 타고 온 것 같이 그런 공천을 하면 되겠나. 조윤선 의원과 같이 새로운 인물을 공천했다면 승산이 더 있었을 것이다. 홍사덕 의원은 상품으로서 너무 낡았다.
―과반의석을 확보했지만 수도권에서의 패배는 박 위원장에게 큰 과제라는 평가다.
▲선거를 냉정하게 분석해보면 투표율이 높지 않았음에도 수도권에서 많은 의석을 잃었다는 건 박 위원장이 풀어야 할 숙제다. 박 위원장도 자신이 좀 더 냉정하게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을 것이다. 박세일 씨가 이끌던 ‘국민생각’이 출범했을 때만 해도 박 위원장에게 계속 무시하라고 얘기했지만 그러지 못하더라. 과감성을 보이지 못했던 것이 수도권 패배의 원인이었다. 수도권 민심을 가져오지 못한다면 대선에서도 어렵다는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
―비대위 활동을 하는 동안 상당한 잡음도 있었다. 박 위원장에 대해서도 비판을 했었는데.
▲비대위와 공천에 대해 반발하는 이들에 대해 박근혜 위원장이 상당한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혹시 그 친구들이 나가고 당이 쪼개지지는 않나 하는 걱정이었다. 나는 절대 그 사람들이 못 나갈 거라 봤다. 무슨 명분이 있어야 하지 않나. 이명박 대통령이 국민들로부터 외면받고 있는데 무엇을 추구하겠다고 나갈 수 있겠는가. 그래서 난 박근혜 위원장이 그 점을 걱정하지 않았으면 했는데 상당히 염려가 많더라.
김종인 전 비대위원은 비대위 활동 중 아슬아슬한 순간을 여러 번 넘겼다. 새누리당 정강·정책에서 ‘보수’라는 표현을 삭제하자는 주장을 내놔 거센 공격을 받기도 했다. 뻔한 논란이 예상되는 대목에서 그가 ‘과격한’ 주장을 한 이유가 궁금했다.
“의도적으로 했던 발언”이라고 뒤늦게 ‘속내’를 밝힌 김 전 의원은 “새누리당이 서울시장 선거에서 패배한 이유는 20~30대가 등을 돌렸기 때문이다. 그 세대의 사고에는 보수라는 말이 그다지 즐거운 말이 아니다. 또 보수라는 말을 꼭 정강·정책에 넣어야 할 필요는 없다. 그런데 그 말을 했더니 나 개인에 대한 인신공격도 하고 물러나라고 난리가 났었다. 그 사람들은 생리적으로 그런 말을 할 수밖에 없고 내가 그거에 신경 쓸 거 같았으면 애초 들어가지도 않았을 것”이라는 추가 설명을 덧붙였다.
이어 그는 “결국 보수라는 말은 그냥 두기로 하고 그 외의 상당 부분을 고쳤는데 난 하도 보수라는 말에 집착하기에 나머지 부분도 문제 삼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예상 외로 쉽게 만장일치로 통과되는 것을 보고 참 이율배반적인 사람들이구나 하고 느꼈다”며 그 이후 더 큰 실망감을 느꼈다고 밝히기도 했다.
―비슷한 시기에 민주통합당 박영선 의원도 공천 문제점을 제기하며 최고위원직을 사퇴한 바 있다.
▲박영선 의원과는 오래전부터 잘 아는 사이다. 민주통합당에서는 그만 한 정치인도 없다고 본다. 공교롭게도 그때 함께 관두며 ‘언제 밥이나 먹자’고 통화했는데, 오늘 아침에 당선 축하한다는 전화는 해주었다(웃음).
―선거전 막판 민간인 사찰문제와 김용민 후보 막말 파문 등이 결정적 여파를 미쳤다고 보나.
▲민간인 사찰 문제는 박근혜 위원장의 책임이 아니라 이명박 대통령의 책임이라는 것을 대한민국 유권자들도 다 안다. 또 박 위원장이 이 문제에 대해 비켜서는 노력을 했기 때문에 그다지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민주통합당이 선거에 지고 나니까 김용민 막말 파문도 악재로 들고 있는데, 그건 개인 스스로를 망친 데는 기여했지만 선거에까지 영향을 미쳤다고 보진 않는다.
―그렇다면 민주통합당이 예상 밖의 낮은 의석수를 얻은 원인이 무엇이었다고 보는지.
▲민주통합당 지도체제의 문제다. 한명숙 대표는 그저 당내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대표지 정치적으로 지향하는 목표가 뚜렷하지도 않고 대권주자도 아니다. 한 대표의 말에는 일반 국민에게 주는 메시지가 없다.
―한명숙 대표의 사퇴론이 불거지고 있는데(한 대표는 인터뷰 다음 날인 지난 13일 사퇴했다).
▲한명숙 대표로서는 대선을 치르기 어렵다. 한 대표는 대표가 된 뒤 당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어떤 세력에 의해 끌려 다니는 모습을 보였다. 예를 들어 초기에 임종석 사무총장을 임명했던 일 등 내부 불화를 야기하는 인사로 ‘한명숙 리더십’에 신뢰를 보내는 사람이 없다. 국민들도 저 당은 대체 누가 끌고 가는지 의문이 들 것이다.
―대선 주자로 박근혜 위원장에 대해선 ‘서드(3rd) 베스트’라고 평한 바 있었다.
▲대선주자로 퍼스트, 세컨드는 없다. 그나마 현재 주자 중 지난 4년 동안 대선을 열심히 준비해온 이는 박근혜 위원장밖에 없다고 본다. 같이 유세를 나가도 박근혜와 한명숙이 대중들에게 미치는 강도는 전혀 다르다.
―박근혜 위원장은 종종 남의 말을 잘 듣지 않고 몇몇 측근들의 말에 좌우된다는 평가를 듣곤 한다.
▲그것은 박근혜 위원장이 대선 가도에서 크게 바꿔야 될 점이라고 본다. 본인도 이번 선거를 하고 난 뒤에 내가 어떻게 변화해야 할 것인가를 느꼈을 것이다.
김종인 전 비대위원은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과도 남다른 인연을 갖고 있다. 청춘콘서트를 통해 안 원장과 교류를 두터이 했던 그는 한때 안 원장의 멘토로 알려지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해 10·26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를 계기로 안 원장과 ‘결별’하게 된다. 당시 안 원장에 대해 큰 실망감을 느꼈다는 게 김 전 위원의 전언. 그는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하기로 했다가 한순간 말을 바꾸는 것을 보고 리더로서의 자질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고 비판했다.
―안철수 원장이 총선 과정에서 적극적인 행보를 보였는데 대선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나.
▲안철수 원장이 이번 총선에 미친 영향력은 아무것도 없다고 본다. 작년에 청춘콘서트를 몇 번 같이 해봤지만 당시에서 더 나아간 게 없다. 그저 알쏭달쏭하고 애매모호한 얘기들로만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한다. 그저 누가 모셔다가 대통령 만들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은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대선을 겨냥한 사람은 그런 자세로는 안 된다.
―안철수 원장이 야권주자를 밀어주는 ‘킹메이커’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킹메이커로서도 적극성이 있어야 하는데 안 원장은 절대 손해를 보려고 하지 않는다. 기업가들의 전형적인 유형이다. 그게 바로 기업 경영과 국가 경영의 다른 점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국민들로부터 외면 받게 된 이유도 그 사람의 기본적 사고가 ‘회사 CEO’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비대위에서는 사퇴했으나 새누리당 총선 승리에 일정 부분 ‘공’을 세운 김종인 전 비대위원에게 “박근혜 위원장이 대선에서도 도움을 요청하면 도울 것인지”를 물었다. “꼭 필요하다면 피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긍정도 부정도 아닌 답변을 내놓는 김 전 비대위원의 속내에는 비대위를 통해 느꼈던 고충이 남아있는 듯했다.
“비대위 때는 약속한 게 있어서 내가 욕을 들어먹으면서까지 들어가서 했지만 박 위원장 주변에 잘난 사람들이 너무 많아 솔직히 또다시 그 소용돌이 속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은 별로 없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
김종인이 본 야권 주자들
안철수 ; 그건 정치가 아닙니다
“처음에도 주변에서 한번 같이 보자고 해서 만났었지만 처음부터 대선주자로서 잠재력이 있다고 보진 않았다. 적어도 한 나라를 이끌어 가겠다는 사람이라면 국민에게 자신을 완전히 오픈시키고 보다 책임 있는 발언을 해야 한다. 적당히 되면 되고 말면 만다는 식으로 하면 안 된다.”
문재인 ; 노무현 더 이상 안 통해
“문재인 이사장도 이번 선거 결과에 대해 자기 나름의 생각이 있을 것이다. 더 이상 유권자들에겐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환상이 남아 있지 않다. 그걸 가지고 무얼 해보려 한다면 착각일 것이다.”
김두관 ; 가장 잠재력 높은 주자
“대선주자에 대해 야권에서는 현재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어느 날 갑자기 다크호스로 떠오르기엔 김두관 지사가 가장 잠재력이 높다고 본다. 본인이 대권 의지를 표명하고 전면에 나선다면 가장 경쟁력이 높을 수 있다.” [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