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추웠던 지난 12월 화성의 한 목장에선 방역작업이 한창이다. 톱밥 깔짚도 푹신하게 깔았다. 물 온도 18도를 유지하는 열선이 깔린 물통, 최고급 사료도 넉넉하게 준비했다. 40년 넘게 젖소를 키워 온 목장주와 방역 전문가, 50년 경력을 가진 수의사도 출동했다.
이들이 정성스럽게 맞이하는 손님은 다름 아닌 어린 젖소들로 무려 101마리다. 이래봬도 전국의 농장에서 혈통과 건강상태를 확인해 뽑힌 젖소들이다. 젖소들이 극진한 보살핌을 받는 데는 이유가 있다. 비행기를 타고 네팔로 이민을 가기 때문이다.
생우가 비행기를 타고 해외로 나가는 건 우리나라에선 처음 있는 일이다. 더구나 카트만두 공항 사정으로 젖소는 화물기가 아닌 여객기에 태워야 한다. 젖소 승객이 처음인 항공사 운송담당자들도 긴장을 놓을 수 없다. 적절한 기내 온도와 습도를 맞추기 위해 젖소가 뿜어내는 이산화탄소와 산소 양을 따지고 무게를 계산해 젖소 승객 수를 결정한다. 젖소를 실은 케이지 제작도 관건이다. 해외 동영상을 분석하고 끊임없이 테스트를 하며 수정작업을 이어갔다.
네팔은 세계 최빈국에 속한다. 전체 인구의 약 80%가 농촌에서 살고 있는데 대부분 우유를 짤 소를 키우고 있다. 네팔에서는 그만큼 낙농업이 중요한 산업이다. 전국에 약 750만 마리의 젖소가 있는데 문제는 우유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이런 이유로 2021년 네팔 정부는 우리나라에 젖소를 요청했다. 네팔의 토착 젖소와 비교했을 때 우리 젖소의 연간 마리당 산유량은 10배 이상 높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젖소를 주목한 데에는 또 다른 이유도 있다. 불과 70년 전에는 우리도 낙농 불모지였다. 목초지가 부족한 환경에서 빠르게 성장한 '한국형 젖소'가 네팔에서 쉽게 적응할 수 있을 거라고 본 것.
우유를 팔아 생계를 이어가는 신둘리 마을 주민들은 우리 젖소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열한 살 스리자나 팅은 새벽 4시에 일어나 우유를 짠다. 우유를 팔아 번 돈은 우리 돈으로 15OO원 정도. 선생님이 꿈인 스리자나 팅은 더 많은 우유를 만들어 줄 한국 젖소가 큰 선물이다. 신둘리 마을은 벌써부터 들썩이고 있다.
한국 젖소의 우유 생산량은 세계5위로 낙농 선진국으로 꼽힌다. 그 시작에는 '노아의 방주 작전'이 있었다. 젖소 떼를 몰고 초원이 아닌 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넌 목동들이다. 6.25 전쟁이 끝나고 폐허가 된 한국에 이들이 왔었다. 미국의 비영리기관인 헤퍼 인터내셔널이 주도한 가축 보내기 프로젝트에 참여한 이들이었다.
헤퍼 인터내셔널은 1952년부터 1976년까지 3200여 마리의 가축을 한국에 보냈는데 여기에 젖소 897마리도 있었다. 항해하는 목동은 약 300여명이 동원됐다. 수송선 마다 20여 명이 동승해 약 7주간 가축들을 돌봤다. 목동 역할을 했던 넬슨 목사는 당시 상황을 일기로 남겼다. 당시 기록을 공개한다. 낙농업의 시작 젖소를 데려온 항해하는 목동 이야기를 만나보자.
원조 받는 젖소 수혜자였던 이재복 씨는 당시 젖소 두 마리를 받아 목장을 시작했다. 현재는 아들이 목장을 이어 받아 젖소 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두 마리 젖소가 네 마리가 되고, 다시 여섯 마리가 되면서 자식을 먹이고 공부시킬 수 있었다는 이재복 씨. 아들 농장에서 가장 건강한 젖소를 기부했다.
40년 젖소를 키운 목장주는 네팔 근로자와의 인연을 소중하게 여겨 가장 아끼는 젖소 5마리를 선뜻 내놓았다. 어머니의 유산을 기부한 딸도 있다. 남몰래 선행을 이어온 어머니 발자취를 따라 뜻을 이어가기로 한 것. 50마리 젖소를 기부했다.
쿠키를 만들어 판 돈을 모은 고등학생들, 그리고 멀리 미국에서도 클라우드 펀딩에 참여했다. 농가와 기관들도 동참을 했다. 101마리 젖소는 이렇게 모아졌다.
8시간 비행을 마치고 화물차로 10시간을 달려 온 네팔 신둘리 마을. 대이동을 마친 젖소들이 마을 공터에 우르르 쏟아졌다. 마을 주민들과의 첫 대면식은 그야말로 난리법석이다. 밧줄로 만든 굴레고삐를 젖소에 끼우느라 달리고 넘어지고 생각보다 덩치가 크고 빠른데다가 힘도 좋은 한국 젖소가 당황스러우면서도 만족감이 크다. 살림 밑천이 될 젖소들이기에 웃음꽃이 떠나질 않는다.
한국 젖소가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데는 목장주들의 노력과 '한국형 씨수소' 개발이 큰 역할을 했다. 젖소 검정원들이 한 달에 한 번 목장을 방문해 신체적 발달 상태와 우유의 품질, 생산성을 확인하고 비교해 보증씨수소를 선발한다. 보증 씨수소 한 마리 몸값은 약 7억 원.
일년에 다섯 마리를 뽑는데 이들 중에는 국제유전능력평가에서 인정을 받은 소들도 있다. 'BTS'라는 이름의 보증씨수소는 우유생산형질이 세계 0.04% 안에 든다.
낙농선진국이 된 우리는 이제 70년 전 미국에서 받은 '나눔의 가치'를 네팔에 전한다.
유일하게 수원국에서 공여국이 된 것. '물소기를 주기보다는 물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치자'는 헤퍼 인터내셔널의 철학도 고스란히 담았다. 젖소 101마리 뿐 아니라 젖소 사육에 대한 교육도 이어갈 예정이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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